[내 생각은…] 지금 간도문제 꺼내는 건 부적절

최근 우리 국민을 격분하게 했던 '동북공정'은 중국의 '만주 전략'이자 '동북아 전략'으로, 향후 한반도 정세 변화(남북 통일)가 중국 동북(만주)의 사회 안정에 미칠 영향이나 충격, 조선족의 정체성 동요와 이탈 움직임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중국 동북 지역과 한반도의 역사적 상관성을 부정해 동북사회에 대한 통일 한반도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한 역사논리를 개발하고, 북한 탈북자 문제 및 통일 후 불거질지 모르는 영토 문제에 대응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한 대처 방안의 하나로 '간도협약의 무효화'결의가 논의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그 조약의 불법성에 대해 울분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 필자 역시 예외일 수 없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간도협약의 무효화를 제기하는 것이 과연 우리 민족의 발전과 장래를 위해 시의적절한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첫째, 간도라는 '영토'문제 제기는 중국 국민의 '뼈아픈 곳'을 건드려 한.중 관계를 극도로 악화시켜 정치.경제적으로 한반도에 먹구름을 드리울 수 있고, 중국의 역사왜곡 시정을 어렵게 만들 우려가 있다. 근대 이후 중국은 헤이룽강 이북지역, 우수리강 동쪽의 연해주, 발하시호 남동지역 등 한반도 넓이의 일곱 배나 되는 땅(약 151만㎢)을 빼앗겼다. 따라서 필자처럼 중국 근현대사를 전공하고 있는 학자들은 '영토 상실'에 대해 중국 국민이 품고 있는 '한(恨)'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잘 이해한다. 영토 문제 제기는 중국 정부 차원에서 추진된 동북공정과 달리 중국 국민 전체의 반한(反韓)감정을 불러일으켜 역사왜곡과는 상관없이 중국의 강경 대응을 야기할 수 있다.

둘째, 간도 문제 제기는 평화통일 실현에 필요한 중국의 협조를 이끌어낼 수 없게 해 남북 통일을 어렵게 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북핵 문제 해결을 통한 한반도의 긴장 해소 및 남북 교류의 현실화, 이것을 바탕으로 한 남북 통일의 실현은 우리 민족이 비약할 수 있는 발판이자 주변 강대국의 간섭과 횡포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일 수 있다. 남북 통일을 하려면 미국(일본.러시아 포함) 못지않게 중국의 협조가 절실한 실정이다. 통일 과정에서 중국의 협조를 얻어내려면 중국과의 신뢰를 유지하는 게 필수적이다. 영토 문제 제기로 인한 한.중 양국의 관계 악화는 남북 통일 과정에서 중국의 역공을 불러일으켜 분단 상황의 고착화로 이어질 수 있다.

셋째, 중국과 국경을 맞대지 않고 있는 우리가 간도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1962년 중국과 국경조약(朝中邊界條約)을 맺은 바 있는 북한을 배제시킨 채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려 남북 관계를 악화시키는 동시에 역사왜곡 시정을 위한 남북 공조를 어렵게 할 우려가 있다. 더욱이 북한이 중국과 맺은 국경조약을 무시하고 새롭게 간도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통일 과정에서 조중변계조약의 계승을 불가능하게 해 그 조약에서 확보된 백두산 천지의 영유권(북한 54.5%, 중국 45.5%)마저 잃게 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넷째, 국제법적으로 간도협약의 무효화 시효 기한(2009년)을 거론하며 기한 안에 간도를 영토분쟁 지역으로 이슈화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재고할 필요가 있다. 국제법적 판단으로 영토의 귀속문제를 해결한 사례가 거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간도 문제는 국제법적 시효와 관계없이 통일 이후에 제기해도 분쟁지역으로 만들 수 있다. 간도 문제를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자칫 한.중 관계 파탄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는 영토 문제 제기는 통일 이후로 미루는 게 국익에 유리하다.

지금은 냉철한 이성으로 중국 정부에 지방정부 차원의 역사왜곡 행위를 바로잡도록 꾸준히 요구하는 동시에 우리의 역사논리를 강화하고 대내외적으로 홍보해야 한다. 또한 우리 민족의 단결을 바탕으로 정체성을 확립하고 경제 발전과 통일 실현에 진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거시적인 전략 마련과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게 급선무며, 그에 못지않게 우리에게 유리한 국제환경을 조성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상황을 초래해서는 안 된다.

<윤휘탁 고구려연구재단 연구위원>

(중앙일보 2004-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