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의 눈] 어떤 대한민국을 원하나

한국의 핵물질 추출 사실이 밝혀졌을 때 발각되지 않고 계속 핵개발을 할 수는 없었을까 하고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국회로까지 확산된 간도회복 운동을 보면서 마음으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보낸 이도 많았을 것이다. ‘한국이 핵무장을 하고 만주땅도 차지한다.’ 이 얼마나 즐거운 상상인가. 그런 부국강병의 꿈이 이루어진다면, 누가 한국을 작은 나라라고 깔보고, 업신여길 것인가. 그러나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다. 그런 꿈을 꿀수록 우리는 불행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그런 징후가 있다. 한국의 핵문제가 등장하면서 주변국의 시선이 싸늘해지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 일본,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심각해졌다. 6자회담과 남북대화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감상적 민족주의엔 한계

한국은 어디에 있나.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군비경쟁이 펼쳐지는 곳, 세계에서 핵무기 도미노가 발생하기 가장 쉬운 곳, 민족주의 대 민족주의 충돌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의 한 가운데 서있다. 이곳에서 핵무기나 절대적 힘의 우위 추구는 주변국과의 끊임없는 적대·분쟁을 의미한다. 여기에 우리의 미래는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선언한 대로 한국이 동북아경제 중심이 될 수도 없고, 동북아 평화공동체 만들기를 주도할 수도 없다. 핵무기는 우리의 선택이 아니다. 우리는 미·중·일·러와 협력하고 공존하며 살아가야 할 운명이다.

정부는 핵개발 계획이 없다는데 근거없는 의심만 한다고 불평하고 있다. 누가 믿을 것인가. 한국정부는 1970년대에 핵무기개발을 시도한 적이 있다. 우리 국민은 남북이 공동으로 핵을 개발해 일본을 공격한다는 내용의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4백만권이나 사서 읽고 열광했다. 이 때문인지 2000년 초 우라늄 농축실험 시점에 임동원 특사가 방북했는데 그때 남북공동 핵개발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무궁화꽃 …’에나 나올 법한 추측도 나돈다. 정부가 핵무기 포기의사를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는 한, 핵무기로 구원받겠다는 국민의 정서가 말끔히 사라지지 않은 한 이런 의심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간도회복운동도 ‘무궁화꽃…’과 다를 게 없는, 우리들의 불행한 꿈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해보자. 중국인은 열강의 침탈로 땅을 빼앗긴 한을 안고 있다. 간도도 그 하나였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이 한국인 정신의 뿌리를 흔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중국인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었다고는 왜 생각지 않나. 동북아 근대사는 그만큼 상처로 얼룩진 집단 기억이 있는 곳이다. 한국의 한 중국역사학자는 “간도회복운동이 알려져 중국인 마음에 불을 댕기면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통일을 추구한다. 그런데 핵무장하고 영토확장에 나서는 통일을 누가 지원할까. 중국은 물론 미·일도 영원히 분단국으로 남아 아옹다옹하며 살게 내버려 둘 것이다. 그런데 무려 59명의 의원이 간도회복 결의안에 서명했다. 다수가 열린우리당이다. 정부는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라며 모호한 반응을 보이고 여당은 애국하는 것인 줄 알고 서명하는 위험한 혼돈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동북아공동체 우리의 길

한반도가 동북아 평화발전소가 되고, 한국이 평화 공동체의 주도자가 되고자 한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이 시점에 선언해야 한다.

“우리는 영원히 핵무기를 포기하겠습니다. 이를 위해서 우선 과학자들이 어떻게 정부정책을 어기면서 실험하는 게 가능했는지, 철저히 조사하고 책임을 묻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북방 영토문제를 제기하지 않겠습니다. 우리 사회에 잔존하는 핵무기, 영토확장 등에 관한 민족주의적 환상을 깨기 위해 시민단체와 함께 시민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겠습니다. 핵무기, 영토적 야망은 평화와 공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평화를 선택했습니다.”

<이대근 논설위원>

(경향신문 2004-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