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에 맞춤법 안맞고 내용도 틀려 집안 고구려유적 설명 엉터리 '빈축'

▲ 지난 9월13일 집안에서 본 환도산성의 한글 설명 비석. 환도산성을 고구려 왕릉으로 잘못 소개하고 있다.
ⓒ2004 오마이뉴스 김태경

중국 집안(集安)과 환인(桓仁)에 있는 고구려 유적이 지난 7월1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뒤 중국 정부가 8월 초 각 유적지마다 한글 설명 비석을 세웠으나 내용이 기본적인 사실과 다르거나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이 수두룩해 빈축을 사고 있다.

더구나 설명 비석의 내용 가운데 기본적인 철자나 맞춤법이 틀린 곳이 많아 어떤 곳은 비석 한 개에 틀린 곳이 10여 군데에 이를 정도여서 중국정부의 성의를 의심케하고 있다.

지난 9월13일 <오마이뉴스> 취재진이 압록강 너머 집안에 있는 환도산성을 찾았을 때 입구에 한글로 된 설명 비석이 취재진을 맞았다. 두께 5㎝의 검은색 평평한 돌에 왼쪽은 일본어로, 오른쪽은 한글로 설명이 새겨져 있었다. 설명비의 오른쪽 상단에는 파랑색으로 '세계문화유산' 마크가 선명하게 그려져있었다.

중국 정부가 집안과 환인의 유적을 대대적으로 정비한 뒤에도 올 7월 이전에는 중국어와 영어로 된 설명 비석만 있었다.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뒤 관광객들에게 완전 개방하면서 올 여름에 이곳을 찾는 한국인과 일본인들을 위해 새로 설명 비석을 만들었다.

중국 정부의 이런 태도는 한국인과 일본인에 대한 배려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의도에도 불구하고 환도산성의 한글 설명은 처음부터 완전히 틀렸다.

"환도 산성은 고구려 초중기의 왕릉입니다"라고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환도산성은 무덤이 아니다. 이 곳은 학자들이 한 때 고구려의 수도로 추정하는 곳으로 전체 길이 6951m에 이르는 산성이다. 현재 6개의 문터 및 부분적으로 높이 5m에 이르는 성벽, 남북 길이 95.5m 동서 길이 86.5m에 이르는 궁전 터가 남아있다.

환도산성이 위치한 산 자락 아래와 통구하와의 사이에 1500여기의 무덤떼가 있다. 그러나 이 곳은 '산성하 무덤떼'로 불리는 곳으로 환도산성과는 엄연히 다른 유적이다. 환도산성의 일본어 설명은 "고구려 초중기의 산성입니다"라고 정확히 기재되어 있다.

이 뿐만 아니다. 환도산성의 한글 설명문은 오자 투성이였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아래 전문의 띄어쓰기도 중국정부가 세운 한글 비석 그대로다. 굵게 표시된 부분이 설명이 틀리거나 오자가 난 곳이다.)

"고구려 초.중중기(→초중기)의 왕릉(→산성) 입니다. 서기 3년에 시건되었으며(→처음 만들어졌으며) 초기의 명칭은위나암성입이다.(→입니다) 서기 198년 산성왕(→산상왕)은 이곳을 왕도로 정한후 환도성이라 명하였습니다.서기342년 환도산성의 주요 건축물은 전쟁으로 인해 회멸(→훼멸. 정확하게는 파괴)되었습니다.산성의 평면도(→평면)는 불규칙 장방형으로 남북길이 6395미터 입니다.성벽의건축구조는 자연의 산세를 충분히 이용 하였으며 성내에는 대형 궁전의 유적과 전망대.국경수비대(→병사)의 거주지 (→등)과 저주지(→저수지) 고분이 있습니다. 그 중 고분은 산성이 페허(→폐허)된 후 건축 되었습니다. 환도산성은 국내성과 함께 상호 수호용으로 완벽한 고구려 도성의특색을 띄고 있습니다"

한글 설명문의 총 글자수는 약 240여자로 70여개의 단어가 사용됐다. 그런데 설명이 틀리거나 오자가 난 곳이 10군데나 된다.

설명 가운데 '국경수비대의 거주지' 운운한 부분도 이해 불가능할 정도였다. 환도산성은 고구려 수도였던 국내성이 위치한 집안 시내에서 북쪽으로 불과 2.5㎞ 떨어진 곳에 있다. 이 곳에 궁정을 수비하는 병사들은 있었겠지만 국경 수비대가 주둔할 이유는 없다. 일본어 설명은 '병사들의 주거지'로 제대로 되어있다.

이런 상황이니 띄어쓰기가 맞을 리가 없다. 한국인에게도 띄어쓰기는 어렵다. 그러나 환도산성 한글 설명문은 한 문장이 끝난 뒤에 오는 문장을 바로 붙여썼다. 그런데 정작 붙여써야 할 곳은 띄어쓰는 등 거꾸로 되어있다.

▲ 집안의 고구려 유적 한글 설명비에 세계문화유산 마크가 선명하다.
ⓒ2004 오마이뉴스 김태경

광개토왕비 등 다른 유적 설명도 엉터리

환도산성의 설명 뿐이 아니다. 집안 시내에 있는 주요 고구려 유적의 한글 설명이 모두 같은 문제가 있었다. 중국인 입장에서 봤을 때 한국어가 외국어이기는 하지만 문제는 심각했다.

광개토왕비의 경우 오자는 물론 문장 자체가 틀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고구려 20 대 장수왕의 보의희(→진(晋) 의희) 10년(서기 414년) 부친의 공덕(→공덕을) 기념하기위해 공적 기념비를세웠습니다. 각력암을 사용해서 만든 웅장한 비석은 높이 6.39미터 넓이(→너비) 1-2미터입니다.사면 둘레에 1775개의 한자가 새겨져 있으며 이중 식별할 수있는 글자수는대략 1590자 입니다. 비문에 새겨진 내용은 고구려 건국신학(→신화) 왕조 초기의 왕계(→왕위 계승 또는 왕위 계통) 호태왕의 경이로운 공적 왕릉 수호제도(→수묘 제도)등과 관련이 있습니다. 현존하는최초의 가장 많은 문자의 고구려 고고학 역사자료 입니다.호태왕 비석의 발견으로인해중세기(→중세) 이후 세인들(→세상 사람)이 잊고있었던 고구려 문명과 그 중심지의 소재(→중심 내용) 동북아 고고유적에서의 중요한위치를 확인하게되었습니다."

일단 설명문의 맨 첫 부분은 "장수왕이 그 부친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 진(東晋) 의희(義熙) 10년, 즉 서기 414년에 광개토태왕비를 만들었다"는 뜻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만든 설명은 처음에 선뜻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광개토대왕비의 비문 내용 가운데는 영락(永樂)이라는 서기 391년부터 412년까지 쓰인 고구려 독자의 연호가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한족 왕조인 동진의 연호로 비의 건립연대를 표기해놓았다. 이는 고구려가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한 독립국가였음을 숨기기 위한 것이다.

광개토대왕비의 의미를 설명한 마지막 부분도 난삽했다. 옆의 일본어 설명 내용으로 볼 때 '광개토대왕비의 발견으로 중세 이후 고구려 문명과 그 중심 내용을 알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이 비석이 동북아 고고유적 가운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글로 새겨진 설명은 이해하기 힘들다.

중국인들이 '장군분'으로 부르는 장수왕릉의 한글 설명문은 다음과 같았다.

"편호(→번호) YM0001 속청(→속칭) "장군분"이라 합니다. 정방형계단식 석실묘로길이 31.58미터 높이 13.1미터입니다. 계단 7급(→7계단 또는 7층) 22개의 돌층으로 묘주위에는 11개의 보호용 거대한 비석(→받침돌)이 세워져 있습니다. 묘실은 제5급계단(→5번째 계단 또는 5층계단) 증간(→중간)에있으며 내부에는 두개의 석관이 안치되어 있습니다.묘실의 상부는 잘다듬어진 거대한 돌로 덮여져있습니다(→덮혀있습니다). 묘 주변에서 연꽃무늬의 와당 부서진 기와 쇠사슬등이발견되어 이곳에 원래의건축물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묘의 북측에는 배분(→딸림무덤)과제사대(→제단)가 놓여져 있습니다(→있습니다)."

역시 중간에 오자는 물론 이해할 수 없는 단어나 문장 형식이 등장한다.

오자난 곳 지운 흔적 역력해

일부 오자가 난 한글 설명문을 고친 곳이 있었다. '춤무덤' '씨름무덤' 등으로 유명한 '우산하 묘지'의 경우 처음에 '우간 귀족묘지'로 새겼다. 설명 내용 가운데 오자가 난 것도 아니고 제목 자체가 틀린 것을 보다못한 현지 재중 동포 가이드들이 집안시 문물국에 문제를 제기하자 '우산 귀족묘지'로 수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금도 처음에 '우간'으로 새겼던 흔적이 역력하다. 광개토대왕비의 경우도 비석의 제목이 '호채왕비석'으로 새겼다가 나중에 '호태왕비석'으로 고친 흔적이 선명했다. 한글 설명이 틀렸다는 문제제기가 나오자 전체를 다 뜯어고치지 못하고 일단 제목이 틀린 부분만 고친 것으로 보인다.

우산 귀족묘지 설명문도 '오회분'을 '오희분'으로 새겨 오자가 나있었다. 설명 가운데 "고구려 왕실과 종실, 친연, 배행, 존비, 배장 등의 매장제도를 종합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라는 내용도 친연, 배행, 존비, 배장 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이는 일본어 한자를 거의 그대로 직역한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였다.

광개토대왕릉으로 알려진 태왕릉의 한글 설명도 일부 틀렸고 오자가 있었다. 설명 가운데 "태왕릉이 산과 같이 안전하고 견고하다는 글자가 새겨진 벽돌이 발견됨에 따라 원래 이곳에 건축물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라는 부분이 있다.

원래 태왕릉 부근에서는 '원태왕릉안여산고여악(愿太王陵安如山固如岳)'이라고 쓰여진 벽돌이 발견되었다. 정확한 뜻은 "태왕릉이 산처럼 안전하고 견고하기를 바란다"는 의미다. 태왕릉의 한글 설명은 무덤의 어귀에서 주검이 안치되어 있는 널방에 이르는 길인 '널길'(墓道)을 "묘실에 난 도로"라고 번역해놓았다. 이는 표현상의 오류 수준을 뛰어넘는다.

▲ 집안에 있는 광개토대왕비의 한글 설명문. 역시 설명이 이상하거나 오자가 난 곳이 수두룩하다. 처음에 '호채왕'으로 잘못 새겼다가 나중에 '호태왕'으로 고쳤으나 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여전히 '호채왕'으로 보인다.
ⓒ2004 오마이뉴스 김태경

한국어 아는 사람들 원천봉쇄... 정치적 의도 드러내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단순하게 보면 일종의 해프닝이다.

한국어를 잘 모르는 중국 공무원이나 학자들이 일단 설명문의 문장 자체를 틀리게 작성했다. 여기에 한글을 모르는 중국인 석공들이 우리말 설명을 그림을 그리듯이 새기다가 오자가 났을 것이다. 그런데 중국 공무원이나 학자들이 제대로 교정을 보지않고 그냥 비석을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좀 더 깊게 생각해보면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집안 시 인구는 총 23만6000명. 이 가운데 중국인들이 조선족이라고 부르는 재중동포가 1만7000명이 있다. 남북한과 재중동포들이 쓰는 우리말의 철자나 단어 등이 일부 차이가 있다. 그러나 집안시가 세운 고구려 유적 한글 설명은 남북한 사람은 물론 재중동포들이 봐도 한 눈에 잘못을 지적할 수 있다.

만약 집안 시정부나 박물관 쪽에서 재중동포 학자나 현지 가이드들에게 한번이라도 교정을 보게했다면 이런 엉터리 한글 설명문이 세워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선양에서 만난 재중동포 임아무개씨는 "나도 지난 달 집안에서 조선말 설명 비석을 봤다"며 "소학교(초등학교)만 졸업한 조선족이라도 고구려 유적 설명 비석이 엉터리라는 것을 한 눈에 찾아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 정부가 조선말을 아는 사람을 고구려 유적 정비 과정에서 완전 배제했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실제 재중동포 학자들 가운데 그 누구도 고구려 유적 발굴이나 정비 과정에 관여하도록 허락된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중국 정부의 태도는 그들이 조선족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에 대한 불신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재중동포 학자나 관계자 등을 고구려 유적 정비나 발굴에 참여시킬 경우 남북한에 정보가 유출될 것을 우려했을 것이다.

또 한글 설명문을 새길 때 재중동포들을 관여시키면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중국 정부의 주장과는 다른 내용을 몰래 삽입시킬까 우려했기 때문으로도 해석된다.

따라서 언뜻 보면 단순한 해프닝성 사건인 '엉터리 한글 설명문'은 동북공정과 고구려 유적 정비가 순수 학술적 의도가 아닌 얼마나 깊은 정치적 의도하에서 진행되는 지를 잘 보여준다. 순수 학술적 의도에서 진행하는 것이라면 이렇게 우리말을 아는 사람들을 배제시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완벽한 백두산의 한글 설명문

▲백두산에 걸려있는 한글 설명문은 모두 완벽하다.
중국인 입장에서 봤을 때 한국어는 외국어다. 따라서 고구려 유적을 설명하는 비석에서 어색하거나 틀린 설명이 있을 수 있다고 해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단적인 예로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백두산의 한글 설명문을 보자. 백두산 밑에서 천지로 올라가는 등산로 상에는 많은 한글 설명문이 있지만 한국인이 직접 쓴 듯 완벽했다.

"등산로를 따라 40분만 걸어가면 천지물을 직접 만질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쓰여져 있다.

남북한과 재중동포가 쓰는 우리말에 단어나 문맥에서 약간씩 차이가 있다. 백두산에 있는 한글 설명문은 이곳을 찾는 한민족의 대부분이 한국인임을 의식한 듯 남한 말에 맞춰져있다.

이렇게 된 것은 백두산의 한글 설명문 작성에는 재중동포 관계자들이 직접 참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 중국 정부가 재중동포들에게 한번만이라도 고구려 유적 설명문을 사전에 보여주고 교정을 받았다면 엉터리 한글 설명문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오마이뉴스 / 김태경 기자 2004-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