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고구려해양학자 윤명철 동국대 교수

바이킹 영화로 유명한 영화 ‘롱십(long ship,잭 카디프 감독)’은 중세 때 전설의 황금종을 찾아나선 바이킹족과 이슬람 세력의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바다에서 펼쳐지는 ‘어드벤처’가 영화의 압권이다. 또 율 브리너가 주연한 영화 ‘대장 부리바’는 16세기 우크라이나 지방을 배경으로 코사크족 사나이들의 전쟁과 사랑을 감동있게 다뤄 지금도 영화팬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발로 뛰는 역사학자이자 해양학자로 잘 알려진 윤명철(50) 동국대 교수. 그는 국내에서는 보기 드물게 ‘고구려 해양교섭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같은 독보적 영역에다 특유의 ‘열정적 발품’으로 수많은 ‘연구 족적’을 생산해내고 있다.

뗏목 타고 해양탐험 수천리 우선 지난 1983년부터 20년 가까이 우리나라 주변의 바다를 대상으로 해양탐험을 거의 매년 해오고 있다. 첫 탐험길은 거제도∼쓰시마(對馬島)∼일본 열도였다. 이어 황해와 남해로 돌려 중국 저장성(浙江省)∼산둥성(山東省)∼흑산도∼제주도∼인천 등으로 점차 확대해왔다. 그것도 수십·수백t짜리 성능좋은 동력선이 아니라 바람부는 대로 떠다니는 일엽편주의 ‘뗏목’이라는 점에서 더욱 값지게 받아들여진다.

지난해 3월에도 대한탐험협회 회원들과 함께 대나무 뗏목을 타고 저장성 저우산군도(周山郡島)를 시작으로 인천∼완도∼쓰시마∼일본 열도에 이르는 총 2700㎞의 바닷길을 건넜다.

그러다 보니 위험한 순간도 한두번 겪은 것이 아니다. 지난 96년 저장성∼산둥성으로 이어지는 황해문화 뗏목 학술탐사 때에는 16일간 실종돼 주위사람들을 바짝 긴장시키기도 했다.

그는 또 지난 94년 9월 해군사관학교 초빙교수 자격으로 동남아·홍해·지중해·흑해 등 90일간의 항해 및 순항훈련에도 참가했다. 이밖에 바이칼·연해주·실크로드 지역 등 역사의 현장을 직접 답사하기도 했다. 영화 ‘롱십’은 자신에게 이같은 해양적 기질과 도전정신을 심어주었다고 그는 말한다.

어디 바다뿐이랴. 지난 95년 그는 말을 타고 달렸을 고구려인의 기상을 연상하며 ‘43일간의 기마탐험’에 도전, 마침내 뜻을 이루기도 했다. ‘대장 부리바’에서 율 브리너가 우크라이나 초원을 질주하듯, 만주벌판에서 옛 고구려의 숨결을 온몸으로 체험하고픈 민족적·학자적 자존심이 그를 발동케 했다. 그는 올들어 바다를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한국사의 중심에 놓고 쓴 국내 첫 통사 ‘한국해양사’를 발간했으며, 최근에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 ‘역사전쟁’이라는 책을 펴내는 등 왕성한 저술활동도 펼치고 있다.

‘해모수’ ‘일본기행-일본 속의 한국문화와 역사’ ‘동아지중해와 고대일본’ ‘말타고 고구려 가다’ ‘고구려 해양사 연구’ 등 수십권의 해양사 서적을 펴냈다. 또 ‘신단수’ ‘당나무’ 등의 시집 발간과 ‘광개토대왕’의 노랫말도 쓰는 등 여러 방면에서 많은 열정을 쏟아내고 있다.

“인류 최대의 전쟁은 수-고구려 싸움” 지난 주말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클럽에서 그를 만났다. 지칠 줄 모르는 연구동력의 원천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자 그는 “역사는 미래학이며, 인간학이다. 또한 행동주의다. ”는 평소의 철학으로 대신했다. 그러면서 “세계 전쟁사에서 가장 큰 전쟁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반문했다. 답이 얼른 나오지 않자 그는 “수나라와 고구려의 싸움”이라면서 “이때 수양제는 113만 3000여명의 대군사를 이끌고 전투에 참가했지만 결국은 패퇴하고 돌아갔다. ”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이제는 (수-고구려 전쟁을 의식하듯)새로운 역사전쟁에 돌입했다. ”고 역설했다.

그는 “일제가 우리나라를 반도국가로 국한시키는 통에 역사적 활동무대가 축소됐다. ”면서 “그러나 일제후 우리 역사학자들이 고구려의 해양활동을 간과해 스스로 미래지향성을 상실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고 지적했다. 학자 스스로가 주변 속성에 빠져 상식적으로도 있을 수 없는 ‘동북공정’과 전쟁을 치러야 하는 경우가 발생했다는 것. 따라서 우리 학자들은 이제라도 남북통일을 염두에 두고 우리 민족의 역사적 정체성을 시급히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를 위해 먼저 우리식 담론이 활발하게 제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 이상 ‘그리스·로마신화’와 ‘마징가Z’를 운운하지 말고 단군신화에도 변증법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그걸 찾아내는 노력이 필요하는 지적이다. 남의 이론을 빌려다 쓰면 결국은 실패할 수밖에 없단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그들의 정치적 카드입니다. 학자들의 근거 제시 등 적극적 활동도 뒤따라야겠지만 우리도 정치논리로 맞대응해야 합니다. 중국은 오히려 양국간 학자끼리 논쟁을 유도하면서 속으로는 정치적 전략·전술을 꾸미고 있지요.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는 범국민적 공감대의 형성이 중요합니다. 한국은 역사나 지리적 측면에서 동북아 지중해의 ‘허브’이기 때문에 중국도 우리의 반중감정을 원치 않겠지요.”

中 고구려사 왜곡 대응책 국민적 공감대 경기도 김포 출생인 그는 중동고를 나와 동국대 사학과에 진학했다. 대학 1학년 때 그는 우리 민족사상 연구에 깊이 빠져 휴학을 하고 6개월간 산속에 들어가 토굴생활을 했다. 이후 74년 동국대 동굴탐험연구회를 설립, 제주도의 김녕굴·만장굴·협제굴 등 전국의 동굴을 찾아나섰다. 내친김에 76년 낙동강 뗏목탐사를 시작으로 79년 금강 단독 뗏목탐험 종주를 거쳐 83년에는 대한해협 등 해양탐험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문학과 역사, 철학은 한 통속이 아니냐.”면서 어릴 적부터 다독하는 습관, 그리고 ‘어드벤처물’의 영화를 자주 보게 된 것이 모험심을 자극시킨 것 같다며 웃었다.

“인류사상 최고의 탐험가는 뭐니뭐니해도 ‘석가’이지요. 산을 찾고 동굴과 해양을 탐험하는 것은 저 자신의 정체성을 위한 것입니다. 또 인간이해의 과정과 노력이지요. 고구려의 드넓은 초원과 바다는 그 자체가 우리 민족의 역동성입니다. ”

(서울신문 / 김문 기자 2004-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