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행정부- 軍대북 전문가 지난주 서울서 극비회동

미국의 행정부 및 군 당국자, 정보 분석가 15명이 극비리에 방한해 15일부터 사흘간 서울에 머물면서 주한 미 대사관에서 비공개 북한 동향 분석을 한 것으로 18일 확인됐다.

참석자들은 미 국방부, 국무부, 주한미군, 러시아 주재 미국대사관에서 북한을 담당하고 있는 핵심 실무자들이며 미 정보당국 산하의 위성자료 분석전문가도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동향을 가장 먼저 접하고 이를 분석해 상부에 보고하는 미국의 북한 실무자들이 비밀리에 서울에서 회동한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 일로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동향 분석 모임에서는 특히 4월 용천역 폭발에 이어 9일 양강도 사고까지 대형사고가 발생한 배경을 분석했으며, 최근 6개월간 북한의 내부 움직임이 매우 ‘불안정’한 상태라는 의견 등이 개진된 것으로 전해졌다.

모임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붕괴 조짐이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북한 내부에서 뭔가 심상찮은 움직임이 진행 중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張成澤·58)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에 대해 “모든 권력으로부터 차단된 사실상의 ‘숙청(purge)’ 상태”라며 “재기 불능이라고까지 말하기는 어렵지만 ‘재교육 수용소(reeducation camp)’에 보내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상반기에 발생한 ‘장성택 숙청’과 용천역 사고, 휴대전화 전격 회수 조치가 김 위원장 암살설과 연관된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북핵 6자회담의 지속 가능성 △6자회담의 틀이 깨질 경우 미국 및 관련 당사국들의 대응 방안 △북한 경제개혁 현황 및 전망 등에 대해 폭넓은 토론을 벌였다고 모임에 참석한 관계자는 전했다.

미 행정부의 한 관계자는 “북한 전문가들이라도 각기 다른 영역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경우가 많고, 같은 주제라도 서로 다른 분석을 내놓을 수 있어 현장에서 합동모임을 가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모임 참석자들은 16일 한국정부 인사들과도 면담을 가졌으며 17일 휴전선 일대 비무장지대(DMZ) 등을 둘러본 뒤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美 대북전문가들이 분석한 北내부 동향

“불안정하고 드라마틱(unsettling and dramatic)하다.”

15일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열린 미 행정부 북한담당자들의 비공개 모임에서는 특히 최근 6개월간의 북한 내부 움직임에 주목하면서 일단 이 정도의 결론 아닌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내부 붕괴나 군사쿠데타 같은 ‘비상사태’를 섣부르게 전망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뭔가 종합적 분석을 요하는 이상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는 뜻이다. 미 행정부 북한담당자들은 특히 어느 정도 사고 경위가 밝혀진 4월 용천역 및 9일 양강도 사고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한 참석자는 최근 입수된 북한 내부 불만세력의 움직임 등을 전하며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에 대한 ‘암살설’과 연관돼 있을지도 모른다는 시각을 전했다.

▽ 심상찮은 이상 징후들 = 먼저 평양 시가지에서 김 위원장의 사진과 포스터에 스프레이 페인트가 칠해진 것이 목격됐고 김 위원장을 비난하는 메시지를 담은 전단지가 뿌려졌다는 첩보가 미 행정부에 입수됐다는 것이다.

미 행정부 관계자는 “전단지가 북한 내부에서 제작된 것인지, 중국 국경을 통해 입수된 것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김 위원장을 비난하는 전단지가 유포되고 있다는 정보가 입수됐다”고 전했다.

미 행정부 북한담당자들은 용천역 폭발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미 정보당국은 용천역 폭발사고의 경우 김 위원장은 알려진 시간대(사고 발생 8, 9시간 전)보다 훨씬 근접한 시간에 사고 지점인 용천역을 지나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당시 용천역 인근에서 내려 승용차를 타고 평양으로 돌아가 화를 면했다는 첩보도 입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 위원장이 사고 발생 한 달여 뒤에 각급 기관과 개인의 휴대전화를 압수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미 정보소식통은 “암살을 도모했던 세력들이 당일 휴대전화로 ‘김 위원장이 현재 어느 지점을 지나고 있다’는 내용의 접선을 했다는 정보를 입수해 김 위원장이 이 같은 지시를 내렸다는 분석도 있다”고 말했다.

신동아 10월호는 이와 관련해 한국 정부 대북정보당국이 ‘용천역 사고는 김 위원장에 대한 암살 시도로 보인다’는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보도했다.

사건 직후 허담 전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의 조카 허창석 등 8명이 암살기도 혐의로 체포돼 처형됐다는 것이다.

미 행정부의 한 관계자는 “진위를 떠나 이 같은 다양한 분석이 나오는 것은 바로 북한 내부에 뭔가 심상찮은 움직임이 있다는 시각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 굳어져 가는 장성택 숙청설 = 미 행정부 관계자는 “김 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張成澤·58)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숙청(purge)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재기불능이라고까지 말히긴 어렵지만 여기서 숙청의 의미는 모든 정치적 권력으로부터 차단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장 부부장은 김 위원장의 누이동생인 김경희 당 경공업 부장의 남편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수 년 전부터 별거생활을 해 왔으며 부부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부장은 남편이 곤경에 처할 때마다 그를 적극적으로 구명해 왔는데 이번 경우는 예외인 것 같다는 것.

정보소식통은 용천역 사고가 매제인 장 부부장을 숙청하기 위해 김 위원장이 꾸며낸 ‘자작극’일지도 모른다는 분석도 있다고 전했다. 

최근 6개월간 북한 내외부 움직임
내부 동향 대외관계 및 주변국 움직임
-4월 초:일본 신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매제 장성택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좌천설’ 보도 -4월 22일:평북 용천역 폭발사고
-5월 말:북한 당국, 각급 기관과 개인이 소지한 휴대전화 몰수 시작
-9월 9일(북한정권창건기념일):중국 접경 지역인 양강도에서 대규모 사고
-9월 14일:북한 백남순 외무상, 양강도 폭발은 수력 발전소 건설용 발파 작업이었다고 해명
-9월:김 위원장의 처 고영희 사망에 따른 후계 권력 투쟁 암투설 대두
-김 위원장 비난하는 전단지 최근 북한 내부서 발견. 김 위원장 얼굴에 스프레이 페인트 된 사진·포스터 평양서 발견
-4월 19∼22일:김 위원장 중국 전격 방문
-5월 22일:북-일 정상회담 개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 2차 평양 방문
-6월 23∼26일:3차 6자회담 베이징서 개최
-9월 10∼14일:리창춘(李長春)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을 단장으로 하는 중국 당 및 정부대표단 평양 방문
-9월 말 예정됐던 4차 6자회담 잠정 연기

(동아일보 / 김정안 기자 2004-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