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납토성 경당토성 9호 구덩이는 백제왕실 도교식 기우제용?”

한신대 4년만에 발굴보고서

한성백제 도읍터 논란을 촉발시킨 서울 풍납토성의 대표적 유적인 경당연립터는 국내 발굴사에서 주목할만한 성과와 뼈아픈 오점을 동시에 남겼다. 토성 보존논란이 불붙던 99년 9월 한신대 박물관이 주민들의 연립주택 건립을 위한 구제발굴로 시작한 경당연립터 조사는 대규모 제사시설터와 숱한 저장고, 폐기장, 주거지터 등의 유적과 함께 ‘大夫’(대부), ‘井’(정) 등의 이름이 새겨진 항아리를 비롯한 토기류 15000여 점, 말뼈 등의 각종 동물뼈, 각종 토제, 유리 공예품들을 산더미처럼 쏟아냈다. 하지만 시공사 부도와 발굴기한, 주민보상을 둘러싼 건축조합과의 갈등으로 2000년 5월 주민들이 9호 구덩이 등 유적 일부를 갈아엎는 최악의 훼손사태를 불렀다. 조사를 중지한 채로 복토한 경당유적은 사적으로 지정되어 현재에 이른다.

한신대박물관이 여지껏 조사를 마치지 못한 비운의 경당유적에 대한 1차 발굴보고서를 4년만에 완성했다. 당시 발굴을 지휘했던 권오영 한신대 교수와 권도희, 한지선 연구원과 함께 만든 이 보고서는 파괴사태 당시 사라진 핵심 유적인 9호 발굴갱(구덩이)유적과 관련 유물들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제사용 기물을 묻은 구덩이로 추정되는 9호갱이 비가 오기를 비는 한성 백제 왕실의 도교식 제사용이었다는 분석이다. 9호갱은 ‘大夫’(대부), ‘井’(정) 등의 이름이 새겨진 항아리를 비롯한 토기류 2000여 점과 제사용 기물, 희생물로 보이는 말머리뼈 등이 무더기로 발굴된 중심유적. 발굴단은 9호갱을 종교적 제의와 관련한 제사갱, 폐기장으로 보고 출토된 대형 말머리뼈 등으로 미뤄 유적에서 말을 희생물 삼는 기우제 등이 행해졌다는 추론을 내놓았다.

토기류·말머리뼈 발굴로 일 제사유적과 비슷 추론
운모조각·과일씨도 증거
실제연대 5세기 후반 추정

말을 제사에 쓰는 것은 고대 동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제의로 경당의 9호갱 유적과 5~7세기 고대 일본의 제사유적이 매우 비슷한 양상을 띤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권 교수는 일본에서도 5세기부터 오사카, 나라 등 긴키지방을 중심으로 말의 머리를 베어 구덩이에 넣는 제의가 많이 띄는데, 인형, 동물형의 토제 모조품, 소형 제기, 구슬 등을 함께 깨어 넣는 제사유물들은 경당 9호갱의 일부 제사관련 유물들과 거의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일본쪽 학계는 이를 말과 물의 신을 연결하는 중국 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해석해왔으나, 5세기대 백제유적에서 말머리와 토제말을 이용한 제의흔적이 확인된 이상 일본 학계가 백제 영향설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게 됐다는 것이다. 벼루라고 추정했던 원반모양의 토기 출토품이 일본 제사유적의 석제 모조품 제기와 흡사하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보고서는 또 구덩이 내부의 흙을 물체질 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다량의 운모조각과 복숭아 등의 과일씨앗 등은 고대 도교에서 불로장생의 선약으로 인식되었다는 점을 들어 당시 왕실이 도교식 제사를 지낸 유력한 증거라고 분석했다. 일본의 경우도 시즈오카현의 7세기 기우 제사 유적 등에서 말모양 토제품과 함께 다량의 복숭아씨 등이 동물뼈 등과 함께 출토되는 등의 공통점이 있어 9호갱에 이뤄진 제사가 도교적이며 그 목적이 기우였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는 추론이다. ‘大夫’(대부), ‘井’(정) 등이 새겨진 항아리의 경우도 고대 중국 도교의 선인인 팽조의 관직명이 대부인데다 한강 건너편 아차산의 고구려 보루에서도 비슷한 이름새김토기가 나온 바 있어 공통된 도교적 제의용이었을 것이라는 추론을 내놓고 있다. 이밖에 보고서는 방사성 탄소연대 기법으로 유적연대를 측정한 결과 대체로 3세기께라는 수치가 나왔으나 유적이 풍납토성 유적 가운데 가장 연대가 늦은 최상단 유적이라는 점에서 신빙성이 떨어지며 실제 연대는 5세기 후반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한편 발굴팀은 보고서를 통해 1600포대가 넘는 구덩이의 흙을 물체질한 결과 작은 구슬에 구멍을 뚫는 미세기구인 길이 1cm 미만의 철침 3점과 운모, 생선이빨 등을 확인한 성과물 등도 공개했다. 보고서는 10월초 배포된다.

(한겨레신문 / 노형석 기자 2004-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