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고구려사, 중국에 끌려만 다닐 건가

중국 정부(문화부)가 주관해서 발행하는 월간지 ‘중외문화 교류’가 15일 발간된 9월호에서 “고구려는 중국 동북지방에서 생활했던 고대 소수민족 정권”이라고 지금까지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지난 8월 24일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방한, 한국과 중국이 고구려사 해결을 위해 5개항을 ‘구두 양해(口頭諒解)’로 매듭지었다고 발표한 지 22일 만이다.

고구려사 문제로 한·중 관계가 손상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중국 정부 차원에서 필요한 조치를 취해 나가겠다’던 합의가 빈 말이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우려했던 대로다.

중국이 2002년부터 정부차원에서 ‘동북공정(東北工程)’이란 정치 프로젝트를 들고 나와 고구려사를 중국의 변방사로 끌어들이려고 공공연히 시도하고 있는데도 사건의 본체(本體)인 동북공정과 외교부 홈페이지의 고구려사 삭제에 대한 한마디 언급없이 구속력 없는 ‘구두 양해’로 서둘러 덮어버리는 데 합의한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한국 정부는 한·중 간의 구두 양해 속에 표현된 ‘중국 정부 차원에서 필요한 조치’에 대해 “중국측이 교과서나 정부 출판물에 의한 고구려사 왜곡은 더 이상 없을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해석했지만 이는 한국의 희망사항일 뿐이라는 것이 분명히 드러난 셈이다.

정부가 정말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렇게 나타나고 말았다면 외교적 단견(短見)과 무능의 소치이고, 정부 역시 약속대로 되지 않을 줄 알면서도 잠시 모면하기 위해 그런 해석을 지어냈다면 그건 국민에 대한 기만이다.

중국의 교육부 직속 교과서 전문 출판사인 인민교육출판사 홈페이지의 ‘역사지식’ 코너에서도 고구려를 중국사로 서술, 언제든 교과서 왜곡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16일 서울서 열린 ‘한국사 속의 고구려 위상’이란 국제 학술회의에 참석한 한·중 이외의 3국 학자들도 “중국의 역사서들은 고구려를 타자(他者)의 역사로 기록해 왔다”면서 중국의 주장이 억지임을 입증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 엄연한 우리 역사를 지키는 일에 왜 이렇게 피동적으로 끌려만 다니는지 까닭을 모르겠다. 중국의 역사왜곡에 이런 수모를 당하는 한국을 보면서 또 다른 한국 역사 왜곡의 당사자인 일본은 우리를 어떻게 보겠는가.

(조선일보 2004-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