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를 재현하라'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이 한-중 양국의 외교 마찰은 물론 국내적으로 온 국민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속에서 고구려 재현 움직임이 각계에서 활기를 띠고 있다. 충청북도 충주시와 한 민간단체가 각각 대규모 고구려촌 형성을 추진하는 것을 비롯해 고구려 테마파크와 박물관 건립 등을 구상하는 곳도 있다. 또 광개토대왕의 일대기를 그린 블록버스터 영화도 밑그림 작업이 한창이다. 

우선 한 민간단체가 추진하는 고구려촌은 서울의 한 지역에 10만 평 규모로 조성될 계획으로 그 안에는 박물관과 역사연구소, 광개토대왕비, 고구려와 발해 민속촌 등이 건립된다. 전체 예산은 약 1천2백억원. 주최측은 이를 외국펀드를 포함한 민간자본과 정부지원금으로 충당할 예정이다. 이를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관계자는 "이미 고구려촌 박물관에 진열될 1,200여 점의 고구려 유물을 확보한 상태"라고 자신감을 표현했다.

충주시, 20만 평 고구려촌 추진

충주시가 준비중인 고구려촌은 충주시 가금면 용전리 입석마을에 있는 중원고구려비를 중심으로 국유지, 시유지, 사유지를 합한 20만평 규모로 형성된다. 충주문화원 김영대 사무국장은 "충주는 중원고구려비가 있는 지역인데다 백제가 처음 쌓았고 나중에 고구려가 점령, 경영한 충주장미산성과 마애불상군 등 삼국시대의 유적이 많은 곳"이라며 "고구려 역사마을 중심으로 신라, 백제까지 체험할 수 있는 삼국문화민속촌을 건설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충주시 역시 이곳에 광개토대왕비, 장군총, 고구려 고분벽화를 재현하고 고구려인들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고구려문화관도 세울 예정이다. 건립예산은 국비와 지방비, 민자 등 9백20억원 정도인데 현재 문화재청에 타당성 조사와 설계용역비 10억원의 지원을 요청해놓은 상태다. 

경기도 구리시청은 박물관 건립을 추진중이다. 2002년 아차산에 고구려박물관을 포함한 고구려유적공원을 추진하다가 감사원의 지적을 받자 현행법에 저촉되지 않는 고구려박물관을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키로 방향을 수정한 것. 7월부터 박물관 용역 전문기관에 구리시 아차산 일원에 국립박물관을 건립하는 안에 대한 타당성 연구 용역을 맡겼고 9월 23일에는 학계와 관련 전문가, 시민 및 시민단체의 의견수렴을 위한 공청회도 개최한다. 9월말 용역이 완료되면 10월 초 문화관광부에 박물관 건립을 건의할 계획이다. 개장 목표 시기는 2008년.

중국보다 먼저 끌어안아야

구리시청 정책연구팀의 양근모 계장은 "구리시는 1994년부터 2000년까지 5회에 걸쳐 고구려유물 발굴 작업을 했고 그 결과 한반도 이남에서 가장 많은 1,5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됐다"며 "유물을 전시할 전시장이나 박물관이 없어 현재 서울대학교 박물관에 임시 보관해둔 당시 출토 유물들을 중심으로 박물관을 꾸밀 생각"이라고 말했다.

광개토대왕기념사업회(한(桓)민족연구회) 주도로 이루어지는 광개토대왕 영화와 테마파크도 눈길. 이 연구회의 주축이며 재야학자인 유상주씨는 "영화는 세계에 우리 역사를 알리는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라며 "배급이나 규모로 볼 때 영화는 할리우드와 합작형태로 완성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북한, 몽골의 협조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감독위원회를 구성, 영화 제작에 여러 명의 감독을 참여케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올 11월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가 내년 촬영에 돌입할 예정인 이 영화의 제작비는 1억 달러(약 1천2백억원)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또 궁전과 초가, 기와집, 궁터, 초원 등으로 꾸며질 테마파크는 1백만 평 규모로 구상되고 있으며 현재 투자자와 협의단계에 있다는 게 주최측의 설명이다. 건립 지역으로 물망에 오른 곳은 개성 등이라고.

고구려촌이나 박물관, 테마파크 조성은 과거에도 지자체를 포함한 여러 단체에서 몇 차례에 걸쳐 추진되다가 무산됐다. 단양, 성남, 청주 등 4~5개 지자체에서도 수년 간격으로 고구려촌을 건립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부지문제와 관계부처간의 협조문제, 중앙정부와 지자체간의 문제, 정책결정자의 역사인식 결여 등으로 추진이 좌절되곤 했다.

DJ정부 시절에는 실제로 국가 주도로 고구려촌 건립을 추진, 예산을 집행키도 했다. 새정치국민회의가 야당이던 시절부터 정책으로 채택해 여당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했으나 IMF 여파 등으로 흐지부지됐다는 것. 당시 국민회의에 고구려촌 건립을 건의한 이가 광개토대왕기념사업회 유상주씨다.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 정책위원회가 작성한 '1996년도 예산안 분석 및 대안'에 따르면 서울 근교 지역에 발해를 포함한 고구려촌을 조성, 광개토대왕비, 문화전시장 등을 건립한다는 내용이 제안돼 있다. 유상주씨는 "당시 북한산 국립공원 10만평 규모에 고분과 동상, 사당, 조각공원 등이 들어선 고구려민속촌을 DJ정부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만들려다가 IMF 여파 등으로 무산됐다"며 "외국펀드로부터 1억 달러까지 투자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정부의 뒷받침이 없어 좌절돼 안타까움이 더 컸다"고 말했다.

유씨는 또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중국은 자기 영토나 역사를 확실히 굳히겠다는 생각으로 무엇인가를 들고 나올 것이 틀림없다"며 "중국의 역사 왜곡을 막으려면 우리가 먼저 고구려가 한국의 역사임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다양한 문화프로젝트를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스메이커 / 박주연 기자 2004-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