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발해의 옛터 연해주

러시아 극동지방의 최대 항만도시이자 군항인 블라디보스토크는 지난 50년 동안 우리에겐 금기의 땅이었다. 선조들이 해삼위(海蔘威)로 부르던 이곳은 일제 식민통치 때만 해도 우리에겐 독립운동의 근거지이자 동포들의 터전이었다. 그러나 남북이 갈라지면서 블라디보스토크는 40여 년 동안 금단의 땅이었다.

90년대 들어 러시아와 국교가 트이면서 블라디보스토크를 비롯한 연해주 일대는 한국인이 많이 찾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시내 곳곳에 한국기업들의 광고가 즐비하고 시내에는 한국에서 수입한 중고 버스들이 다닌다.

블라디보스토크를 중심으로 한 연해주 일대를 여행할 때마다 감탄하게 하는 것은 평원과 구릉이 끝없이 펼쳐진 광활함이다. 지금은 비록 러시아와 중국의 영토가 되어 있지만 만주의 동북3성과 연해주 일대의 그 너른 땅은 바로 고구려의 고토(故土)이자 발해의 숨결이 살아 있는 우리의 옛 터전이었다. 특히 블라디보스토크와 훈춘 일대는 발해 때 동경으로 불리던 곳이다. 발해 전성기에는 북쪽으로는 하바로브스크를 넘어 흑룡강까지, 남쪽으로는 멀리 함경도 함흥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를 지배했다.

올해는 우리 조상들이 두만강을 넘어 연해주로 이주를 시작한 지 140년이 되는 해이자 1894년 러시아와 수호통상조약을 맺은 지 110년이 되는 해이다. 따라서 이번 노무현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은 한때 소원했던 한-러간 우호관계를 다지고 우리 기업들의 연해주 진출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시베리아 지역 개발을 우선시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한국을 비롯한 일본, 중국 등 동북아 국가들과의 실질적 협력증진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연해주지역의 발전을 위해서는 사회간접자본의 구축과 철도, 도로, 가스망 등이 동북아 국가들과 연결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한-러 정상회담에서는 시베리아철도와 한반도를 연결하는 문제와 가스망 구축사업 등이 비중있게 다루어진다. 러시아는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기업들이 석유, 가스, 정보통신, 수송 등의 인프라 구축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기를 바란다. 우리로서도 원유 등 에너지 자원의 77%를 중동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 러시아와 협력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블라디보스토크와 우수리스크, 하바로브스크 등 연해주에는 요즘 1930년대 말의 강제 이주정책에 따라 중앙아시아로 쫓겨갔던 고려인들이 속속 돌아오고 있다. 러시아당국은 연해주에 중국인들이 대거 몰려드는 것에 경계의 눈길을 보내면서 더 많은 한국기업들이 투자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간도(間島)문제가 새로운 쟁점으로 등장하고 있다. 청국과 체결한 국경협약에서 토문강이 두만강으로 둔갑하는 바람에 간도 일대의 그 넓은 땅을 중국에 넘겨준 결과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묵은 국경문제가 하루아침에 해결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요즘과 같은 국경없는 경제전쟁 시대에는 시장이 곧 영토다. 누가 먼저 시장을 개척하고 확보하느냐에 따라 경제전쟁의 승패가 판가름난다. 연해주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진출을 서둘러야 할 새로운 시장이다. 이번 노무현대통령과 푸틴대통령의 한-러정상회담이 러시아는 물론 연해주에 우리 기업들이 대거 진출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뉴스메이커 / 이광훈 논설고문 2004-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