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베트남.티베트, 중국이 포섭한 '중국사'

서강대 사학과 김한규(金翰奎.54) 교수는 국내 역사학계에서 일종의 '피해자'로 이야기될 수 있다. 한 예로 고구려사 논쟁이 한창 이던 지난 2월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한 「요동사」를 들 수 있다.

김 교수는 요동을 중원이나 한반도와 다른 제3의 지역공동체로 보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데 이런 주장이 일부 언론과 학계 일각에서 한민족의 터전인 고조선과 고구려를 한국사에서 떼어내고자 하는 '불순한 의도'로 매도되기에 이르렀다.

중국사, 특히 그중에서도 변방사를 중심으로 연구하는 김 교수는 「요동사」에 앞서 2003년에는 「티베트와 중국의 역사적 관계」(혜안刊)를 냈다. 여기서도 김 교 수는 요동과 비슷하게 티베트 또한 중국과는 구별되는 지역공동체로 보았다.

이런 작업을 통해 김 교수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그의 역사학이 현재의 중국이라는 '거대 제국의 해체'를 겨냥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요동과 티베트를 중국에서 떼어내야 한다는 발상이다.

중국이 개입된 '역사주권'과 '영토주권'의 충돌은 대(對) 베트남사에서도 파열음을 내고 있다. 한무제(漢武帝)는 지금의 중국 남부와 베트남 북부에 걸쳐 웅거하고 있던 남월(南越) 왕국을 멸하고 7군(七郡)을 설치했다. 이를 근거로 중국은 베트 남 북부지역에 대해서도 영토 연고권을 주장하는 역사를 만들어내고 있다.

현재의 영토를 발판으로, 그 안에서 일어난 모든 역사는 중국사라고 강변하는 ' 신(新)중화주의'는 몽골사에도 마수를 뻗치고 있음이 최근 들어 생생한 어조로 국내에 소개됐다. 몽골은 근현대 한 시기에 중국의 직접 지배를 받았으며, 지금도 영토 의 상당 부분이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라는 이름으로 중국령에 들어 있다.

이런 사정 때문인지 17일 폐막된 고구려연구재단(이사장 김정배) 주최 국제학술 회의에 발표자로 나선 몽골 과학아카데미 소속 오 바트사이한 교수는 어느 누구보다 강한 어조로 중국의 몽골사 잠식 움직임을 여러 사례로 소개하면서 비판했다.

그에 의하면 중국은 1995년 발간한 「몽골국통사」(전3권)에서 몽골 영토를 중국 영토라고 강변하는가 하면, 징기스칸까지도 중국인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오 바트사이한 교수는 "남쪽에 중국이 있음을 아침마다 자손들에게 상기시켜라"라는 징기스칸의 말을 인용하면서, 무차별적인 중국의 '몽골사 침입'을 비판했다.

그는 "몽골과 중국은 문명사적 측면에서도 유목문명과 정주(定住)문명이라는 서로 다른 문명을 갖고 공존해 왔다"고 상기시키면서 "그럼에도 중국사가들은 수시로 흉노를 중국의 소수민족이었다는 식으로 허위기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중국사가들은 "중국이 이미 2000년 전부터 다민족국가였다고 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만리장성은 결코 몽골과 중국의 경계가 아니었다고까지 주장하면서 그런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여러모로 강구하고 있다"고 교수는 덧붙였다.

그는 이어 1974년 방중 당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만리장성을 "축조한 인민대중은 마땅히 위대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칭송한 일을 들면서 "중국인들에게 이렇게 경탄스런 성을 축조하게 한 인민대중 역시 그에 못지않은 위대한 역사를 지 니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중국인들의 이런 행위는 분명히 대국(大國), 대민족(大民族)의 침략 정책의 표현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면서 "역사의 진실은 사료에 근거해 밝히고, 구체적인 상황에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배우는 자세야말로 우리 역사학자들이 견지해야 할 숭고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말로 발표를 마감했다.

(연합뉴스 / 김태식 기자 2004-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