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인 박정화씨, 20여년 독학으로 영문책 펴내
▶ 박정화 사장이 20여년간 독학으로 한.일 고대사를 연구해 영문으로 책을 펴내게 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30년 넘게 세계 각지를 다니며 활동해온 무역회사 사장이 한국과 일본의 고대사를 다룬 책을 영문으로 펴냈다. 박정화 (주)삼애사 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일흔을 훨씬 넘긴 박 사장은 최근 뉴욕에서 'The Historic Long, Deep Korean Roots in Japan(역사적으로 깊고 오래된 일본 속의 한국 뿌리)' (빈티지 프레스刊)이란 책을 출간했다.

박 사장은 이 책에서 고대 일본의 지배 계층 및 주류 계급이 일본민족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이란 점을 입증하는 데 주력했다. 일본 열도엔 원래 일본민족이라는 선주 민족이 거주했으며, 한반도 도래인들은 일본의 문물 형성에 단편적으로 기여했을 뿐이라는 황국사관이 잘못된 것임을 각종 문헌과 사료를 들어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 책에는 ▶일본의 국호인 '니폰'이 7세기 후반 고구려의 고승인 도현에 의해 명명됐으며▶645년 이전 일본의 통칭이던 '왜(倭.야마토)'는 가야(伽倻)의 별칭이었고▶일본 열도 창설 신화에 나오는 가라가미(韓神)는 오나 무치 미코토와 스쿠나 히코나 미코토로, 지금도 나라(奈良)시의 신사에 한국 신으로 모셔져 있다는 것 등을 상세한 관련 기록과 함께 기술하고 있다.

박 사장은 "한.일 고대사를 세계에 정확히 알리려면 한국어나 일어보다도 영어로 책을 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가 고대사에 관심을 갖게된 것은 1980년대 초반. 사업상 핀란드를 방문해 우연히 헬싱키대 교수들과 얘기를 나누던 중 고대 몽골로이드의 이동 경로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부터다.

"알타이 산맥 동쪽의 몽골로이드(몽골인을 통칭하는 말)의 일부가 동진해 한반도쪽으로 내려왔고, 다른 일부는 남하해 백인과 결합하면서 핀란드족을 형성했다는 얘기를 듣고 한국과 일본의 고대사를 공부하고 싶어졌어요."

그는 그때부터 틈나는 대로 관련 서적을 찾아 읽으며 독학에 들어갔다. 고대 일본인이 한반도에서 이주한 우리나라 사람이란 사실을 받아들이게 하려면 가설이나 주장을 늘어놓는 수준이 되어선 안되며, 이를 입증할 명확한 근거와 자료를 제시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0여년간 읽은 일본 역사책 만도 줄잡아 3000권에 달한다. 어떤 때는 1주일, 열흘씩 일본에 머물면서 도서관과 고서점 등을 뒤져 필요한 책을 찾아냈고, 관련 학자들과 만나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작성한 연구 노트가 1만쪽이 넘는다. 웬만한 백과사전 6~7권의 두께와 맞먹는 분량이다.

부산 태생인 박 사장은 동래고를 졸업한 직후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의 라사라 로스쿨과 미시건대(원자력법학)등에서 공부했다. 원자력 발전 초창기였던 50년대 말~60년대 초반엔 원자력원(원자력연구소의 전신) 법률자문 비서관을 지냈으며, 3공화국 때는 정부 과학기술자문역도 맡았다. 70년대 초 무역업에 뛰어들어 지금까지 종사하고 있다.

박 사장은 "미국판에 이어 올해 안으로 영국.호주.뉴질랜드.인도.남아공 등에서 동시 출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 이정민 기자.최정동 2004-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