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아틀라스 한국사’…지도로 보니 역사가 한눈에 확∼

역사는 왕들의 계보도가 아니듯 시간의 흐름으로만 역사를 바라볼 수는 없다. 치열했던 정치 투쟁이 있고, 전투가 있었으며,그 속에서 농사짓고 그릇을 만들며 교역하던 민중들이 있었다. 그들이 만들어낸 땀내 나는 사연과 발딛고 살던 공간이 있었다. 시간의 학문인 역사를 공간으로 확장하는 것은 역사를 좀더 풍성하게 바라보자는 뜻이다. 인과를 살피고 흥망성쇠를 논하기 전에 좌우를 둘러보며 그 안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자는 취지.

외국에선 꽤 오래 전부터 활발한 분야가 지도로 역사 읽기다. 국내에서는 사회과부도에서 만날 수 있는 빈약한 지도를 빼고 지도를 동원한 역사서가 드물었다. 시도도 없었고, 이를 뒷받침할 학계의 연구 성과도 미미했기 때문이다. ‘역사신문’ ‘생활사 박물관’ 등 역사의 시각화 작업에 앞장서온 사계절 출판사에서 최근 ‘아틀라스 한국사’를 펴냈다. 지도로 역사를 바라보는 ‘히스토리컬 아틀라스 시리즈’의 첫번째 권으로 앞으로 고조선,신라,고려 등 나라별 역사 혹은 한강 유역사 등 지역별 역사를 지도로 만드는 작업 등을 계획하고 있다.

◇ 역사, 공간의 학문 = 고대부터 현대까지 한국 통사를 183장의 지도와 93개의 사진, 46개의 다이어그램으로 표현한 지도로 읽는 한국사다. 공간으로 역사를 볼 때 개안하듯 문득 문리가 터지기도 한다. 임진왜란 해전을 묘사한 지도는 일본 열도를 위에 놓고 남해안을 아래쪽에 배치했다. 지도를 뒤집은 것인데 이렇게 그려놓고 보니 통상적인 지도에서 맨 오른쪽에 경상좌수영이, 맨 왼쪽에 전라우수영이 놓였던 이유가 이해된다. 한양 임금의 시점에서 경상좌수영으로부터 전라우수영까지 배치한 것. 밀려들어오는 왜구를 맞아 싸운 당대인의 시점도 뒤집힌 지도로 보면 이해가 쉽다. 이런 공간화의 과정은 지도로 역사를 보는 것의 최대 장점이다.

사실 제작팀은 문헌 위주로만 진행돼온 국내 학계의 연구 풍토 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고고학계와 역사학계가 명확히 분리된 채 역사학은 마치 문헌만 갖고 하는 것이라고 약속이나 한 듯 현장 연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가장 답답했던 일은 논문을 근거로 지도를 그리다보면 옛 지명과 현 지명이 전혀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 지명에 대한 고증은 전무했다. 발해의 영토에 관한 지도의 경우 중국에서는 압록강과 평안도까지 중국 영토인 것으로 표시돼 있는 반면,우리나라에서는 발해가 남쪽으로 임진강을 경계로 신라와 맞닿아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중국과 한국이 각각 어떤 근거에서 서로 다른 지도를 그리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답하지 않는다.

삼국 통일 후 나당 전쟁의 분수령이 됐던 675년 매소성 전투의 현장은 연천이라는 주장과 아래 양주라는 주장이 엇갈린다. 고고학 발굴로 비교적 쉽게 밝혀질 사안이지만 문헌에 의존해 추론만 무성할 뿐 발로 찾아볼 노력은 해보지 않았다. 그나마 논란이 있는 것은 다행. 지도 위에 표시해야 하는 지명 중 70%는 옛 지명이 현재 지명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고려가 쌓은 천리장성만 해도 ‘고려사’에 천리장성이 지나가는 지명이 명확하게 나오지만 현대 행정 구역상 어떻게 분류돼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국내의 역사 부도를 보면 천리장성의 모양은 천차만별. 교과서에 실린 지도라고 정설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제작팀은 “고조선,고구려,백제,신라 등 고대가 물론 가장 어렵고 논란도 많았지만 가까운 조선으로 내려와도 고증이 안돼있기는 마찬가지”라며 “제대로 하려면 현지답사를 전부 거쳐야 하는데 이 부분까지는 역부족이었다”고 토로했다. 일제시대 광주 학생운동만 해도 당시 철도 노선이 현재와 완전히 달라 광주역의 위치를 현지 주민으로부터 고증받아 수정했다. 현 광주역은 전남일보 부근이지만 당시 광주역은 금남로와 더 가깝다. 과거 조선총독부에서 작성한 상세 지도 위에 현재 지도를 덮어쓰는 방식으로 주요 건물의 위치를 알아냈다.

◇ 누가 어떻게 만들었나 = ‘아틀라스 한국사’는 송호정 이병희 김동진 김정찬 김한종 등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진이 집필에 참여했다. 여기에 지도 데이터와 디자인에 5명의 전문 인력이 참여하는 등 11명으로 구성된 편찬위원회가 2년 동안 2억여원을 들여 만들어냈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지도 데이터 자체의 부족이었다. 예를 들어 축척 2만5000분의 1은 돼야 평양성을 지도 위에 제대로 표시해줄 수 있지만 정부기관인 국토지리정보원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자료는 너무 소략해 사용할 수가 없었다. 도로교통지도를 만드는 민간업체로부터 인공위성 데이터를 구입해 사용해야 했다. 그나마 북한과 만주 지역 등에 대한 자료는 국내 업체에 없어서 외국 업체로부터 비싼 값을 주고 사와야 했다(아틀라스한국사 편찬위원회·사계절).

(국민일보 / 이영미 기자 2004-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