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東三國은 고구려 포함한 三國”

고구려사 학술대회...한·중 등 8개국서15명 논문 발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으로 한국과 중국이 첨예하게 맞서는 가운데 한·중 및 제3국 역사학자들이 우리나라에서 열린 고구려사 국제학술회의를 통해 격론을 벌인다.

고구려연구재단이 16, 17일 서울 소피텔 앰버서더호텔에서 '한국사 속의 고구려의 위상'이라는 주제로 개최한 제1회 국제학술회의에는 한국과 중국, 미국, 러시아, 호주 등 8개국 학자 15명의 논문이 발표된다.

발표논문 가운데는 사정상 참석하지 못한 북한학자 4명의 논문도 포함돼 있다.

남·북한 학자들이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공동 대응, 중국측의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하고 이에 중국학자들이 고구려사의 중국사 편입 논리로 맞설 것으로 보여 학자들간에 치열한 논쟁이 예상된다.

다음은 주요 발표자들의 논문 요지.

▲ "고구려는 한민족의 역사다" = '중국 사서에 나타난 해동삼국의 의미'란 주제로 기조강연을 하는 김정배 고구려연구재단 이사장은 중국의 사서(史書)에 등장하는 '해동삼국(海東三國)'이라는 용어가 고구려를 포함한 삼국이 각각 독립된 국가이자 함께 이웃하고 있다는 뜻에서 사용된 것임을 지적했다.

박용운 고려대 교수는 '국호 고구려.고려의 계승성 문제'에서 고려는 국호 뿐만 아니라 지배층들 스스로가 고구려를 계승한 것으로 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조희승 북한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연구원은 고구려가 산성(山城)을 축조할 때 돌로 강고하게 축조한 점, 온돌과 디딜방아 등 생활도구 등을 들어 "고구려가 백제, 신라, 발해 등과 동일한 풍습과 문화를 지닌 같은 민족"이라고 강조했다.

또 김유철 김일성종합대 역사학부 교수는 한사군(漢四郡), 특히 그 중심을 이룬 낙랑군이 요동지방에 있었음을 강조하면서 중국의 낙랑군 평양설을 비판했다.

강세권 북한 역사연구소 연구원은 부여 고구려 옥저 예 등 예맥계(濊貊系)와 백제 신라 등 한계의 구분은 거주 영역에 따라 편의상 구분했을 뿐 모두 고조선의 후예라고 밝혔다.

▲ "고구려사는 중국사의 일부" = 중국 동북공정(東北工程)의 최대 이론가로 꼽히는 쑨진지(孫進己) 중국 선양(瀋陽)동북아중심 연구주임은 고구려 영토의 3분의 2 가량이 중국 영토 안에 포함돼 있고, 고구려 인구의 4분의 3이 중원으로 이주했음을 강조하면서 고구려는 중국사의 일부라고 주장했다.

역사계승의 문제는 토지와 인구, 문화를 얼마나 계승했느냐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 쑨 주임은 "고구려가 멸망할 당시 중국에 흡수된 70만~80만 고구려인은 중국 전체 인구의 1%에 불과해 한족(漢族)문화에 흡수됐고 200여 고구려산성 터 등 문화유적도 대부분 중국의 영토에 있으므로 문화도 중국이 계승했다"고 주장했다.

쑨훙(孫泓) 선양 동북아연구중심 연구원은 "맥이계(貊夷係)인 고구려는 한계(韓系)인 백제신라와 다른 종족"이라면서 4세기 이후 고구려의 한반도 북부 진출에 대해 "중국의 일개 민족이 한반도에 침입해 중국의 일개 식민정권을 건립한 것"이라고 했다.

한편 존 던컨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교수는 국가 정체성에 관한 주요작업이 역사기록을 통해 이뤄진다고 볼 때 고구려사에 관한 기록이 고려와 조선의 사서에 등장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민족주의는 이미 19세기 이전에 등장했다고 밝혔다.

또 오바트사이한 몽골과학아카데미 연구원은 중국 역사학자들의 몽골사 왜곡을 주제로 논문을 발표할 예정이어서 주목을 끈다.

(매일신문 / 이대현 기자 2004-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