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차분하게 접근해야"

▲ 15일 열린 '언론의 고구려사 문제 인식' 토론회
ⓒ2004 김철관
“우리 언론은 중국 고구려사 왜곡에 대해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나 통일한국의 미래, 강대국간의 상호견제의 필요성 등을 감안해서 차분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15일 오후 서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열린 ‘동북아 정치와 고구려사 : 언론의 고구려사 문제인식’ 토론회에서 이용성 한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고구려사 왜곡보도 분석’ 발제를 통해 이 같이 주장했다.

또 그는 “국내적으로는 고구려사나 백제사와 같이 상대적으로 등한시했던 역사 영역에 대한 관심과 과거사 진상규명 등을 통해 민족 정체성을 확립해 자긍심을 높여야 한다”며 “외적으로 지난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응 방식과 같이 자국내의 역사 왜곡을 비판할 수 있는 한중일 양심적인 역사학자들의 역사공동체 형성을 지원해야 된다”고 밝혔다.

특히 이 교수는 “중국이 역사 왜곡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몽골, 북한 등과 협력을 강화해 여론 형성을 해 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중국 동북공정의 의미’를 발제한 안치영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은 “동북공정은 그 추진 주체가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천명하면서 학계뿐 아니라 언론과 정치권으로부터 광범위한 관심을 끌었다”며 “한중간 외교적 갈등까지 초래한 ‘한중 역사전쟁’으로 비화될 뻔 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고구려사 문제와 관련된 이론적 기초인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中華民族多元一體]은 중국 내부에서도 그 적용에 대한 모순이 나타나고 있다”며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은 중국 강역(彊域)에 존재한 제 민족의 통일성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이라고 밝혔다.

그는 중국 조선족 문제와 관련해 “중화민족(한족)으로의 통합을 떠나 조선족은 한반도의 민족과 종족적 일체성을 지니고 있다”며 “고구려의 중국사 편입은 곧 조선족에 있어서도 종족적 정체성에 대한 도전”이라고 강조했다.

"지나친 민족주의적 경향 견제해야"

‘전문가가 본 언론보도의 바람직한 방향’을 발제한 양미강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 상임공동운영위원장은 “중국 역사왜곡보도는 지난 일년간 지속적으로 다뤄졌으나 초기나 지금이나 사실보도에 국한돼 있다”며 “이제부터 언론 보도는 역사 대응 문제나 관점 문제 등을 가지고 폭넓고 심층적으로 다뤘으면 한다”고 피력했다.

그는 “한국 내 중국 역사 왜곡의 대응 주체들인 정부와 시민단체, 학계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활동과 방향을 종합적으로 점검하고 정리할 필요성이 있다”며 “지나친 민족주의적 경향을 견제하고 동북아 정세 속에서 동북아 평화를 염두해 공존과 번영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정부측 토론자로 나온 이경수 외교통상부 이재국 심의관은 “동북공정은 중국사회과학원 프로젝트로써 2002년 2월부터 시작됐고 2003년 6월 중국에 있는 우리 공관에서 중국 광명일보 등의 보도 내용을 보고 처음 알게 됐다”며 “중국과 여러 차례 협의를 통해 우리 민족의 정통성과 정체성 훼손문제 대해 강력히 이의를 제기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 과정에서 중국은 동북공정이 정부차원의 개입이 아니라 학계 차원의 일이라고 거짓말까지 했다”며 “국민적 지지 등에 힘입어 현재 중국도 이 문제에 대해 심각히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훈 <한겨레신문> 기자는 “학자들까지도 한중 역사전쟁으로 표현하는 것은 부적절한 전쟁 용어 표현”이라며 “전쟁처럼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라 절대적으로 공유 지점을 찾아 해결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 56개 민족 중 한족을 빼면 55개 소수민족이며, 55개 중 고국이 존재하는 소수민족은 조선족뿐이 없다”며 “이렇게 동북3성(만주)은 전략적으로 중국에게도 미묘한 지역”이라고 밝혔다.

특히 “중국 고구려사 왜곡 문제 해결은 갈등보다 동북아 평화 공존으로 가야한다”며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과 한국의 시민사회 단체의 몫이 크다”고 강조했다.

김근식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냉전시대가 끝나고 탈냉전시대에 접어들었지만 아직 탈냉전 구도가 정착되지 않는 상태에서 한중일 갈등이 표출되고 있다”며 “3국이 탈냉전 신질서를 구축해 극복해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그는 “21세기에 들어와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은 문화적 역사적 갈등처럼 보이지만 한국과 미국의 관계, 평양정권의 불안정성 등 북한의 급변상황, 북중 국경 유동적 상황 등에 대처하기 위한 중국의 대외안보전략”이라고 강조했다.

"한중일 3국이 모여 해결점 찾아야"

김영수 국민대 일본과학연구소 연구교수는 “90년 이후 전개된 탈냉전시대의 동아시아 국제관계를 재편할 시기가 왔다”며 “중국의 고구려 역사 왜곡 문제, 일본의 역사 왜곡 문제 등은 이제부터 수동적인 입장보다 적극적 대응으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일, 한중 등 2자간의 회담은 대립적 관계가 형성될 가능성이 상존하기 때문에 동아시아 한중일 3국이 함께 모여 새로운 관계를 모색함과 동시에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며 “통일한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3자 회담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언론의 고구려사 문제 인식' 토론회에서는 3시간 동안 활발한 토론이 벌어졌다.
ⓒ2004 김철관
장형원 MBC ‘PD수첩’ PD는 “중국 학생, 촌로 등에게 고구려사와 관련된 말을 걸면 한마디로 전혀 관심이 없는 상태였다”며 “그들은 고구려사에 대해 잘 모르지만 ‘고구려가 우리 중국의 역사인 것 같다’는 느낌을 얘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현지 발해 유물도 상당 부분 복원되고 있고 고구려식이 아닌 자금성, 누각 등을 본 따 중국식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폭넓은 역사교육 필요"

방청객에서 발언을 한 일본인 유학생 다카시 고이치로(서울대 대학원 역사학과 박사과정)씨는 “한국은 고대사 연구가 약하다”며 “일본은 백제사를 연구한 사람이 400명이 넘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 고구려, 백제 등 고대사 교육 쪽에 투자해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이 시급하다”며 “한국 정부의 지원이 절실한 때”라고 말했다.

김홍우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국사학의 내용은 국민의 정체성에 종합적 내용이 들어 있는데 한국 사회에서 국사학은 배타성이 강한 학문 영역”이라며 “역사교육이 일선 교육장에서도 논쟁적이고 쌍방향적 교육이 아니라 선언적 일방적 이론교육으로 일관해 정신적으로도 준비가 안돼 있는 것이 역사교육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유학생 마득용(서울대학원 정치학과 박사과정)씨는 “대부분 한국 사람들은 중국 역사, 문화, 민족 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하고 있다”며 “한국이 우려한 만큼 중국 민족주의 의식이 높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중국보다도 한국의 민족주의를 중국 사람이 배워야 한다”며 “일본수상 신사참배에 분노해 한국 사람은 일본 자동차를 사지 않지만 중국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15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김금녀 상명대 예술디자인대학원 강사 사회로 진행된 토론회는 장장 3시간동안 발제자와 토론자, 방청객 등이 참여한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이 토론회는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정치평론학회, 국회정치커뮤니케이션연구회, 한국언론재단이 공동 주최했다.

(오마이뉴스 / 김철관 기자 2004-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