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4분의 1 역사관`을 거두어라

최근 나라 안팎에서 불거진 과거사 논쟁과 관련, 우리는 이제 원하든 원치 않든 역사의 수레바퀴에 치여 숨져간 선조들을 일으켜세워 그 피맺힌 신음소리를 다시 듣고 기록해야만 할 때가 된 것 같다. 우리는 현재 내우외환(內憂外患)의 과거사에 시달리고 있다. 안으로는 친일진상규명등으로, 밖으로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사건과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등으로 잊고 싶었던 역사들이 또 다시 오늘을 압박하고 있다.

먼저 외환의 역사를 짚어보자. 정확히 100년전인 1904년, 그해 2월 이 땅에는 일본군이 상륙, 러일전쟁을 시작하고 한일의정서와 제1차 한일협약서를 만들었다. 이듬해 11월 제2차 한일협약(을사늑약)을 통해 외교권 박탈과 통감정치를 실시했다. 다시는 들춰내고 싶지 않은,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100년 뒤, 2004년. 무엇이 달라져 있는가. 중국은 고구려사를 내세워 한반도에 일종의 ‘가등기’를 마치고 이를 근거로 통일과정등에서 언제든지 연고권을 주장하기 위한 역사를 새로 써나가고 있다. 일본 역시 독도를 포기하지 않은 채 언제든지 영유권 분쟁의 빌미를 마련해놓고 있으며 미국은 이미 수도 한복판에 군대를 주둔시켜 한국사의 중심에 위치해있다. 더구나 우리의 미래는 남북분단을 빌미로 한반도 주변 4강에 발목이 잡혀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앞으로 짧게는 10년후 우리 민족은 5000년 역사가 그러하듯 거대한 중국의 블랙홀로 빨려들어갈 것인가. 지금처럼 미국의 우산 아래 계속 있을 것인가. 북한의 과거 생존방식이었던 중국과 소련 사이의 등거리외교를 차입, 불안한 줄타기를 할 것인가. 한국에 들어온 외국군대가 웃으면서 자진철수한 적이 있던가. 주변 4강의 힘의 균형이 깨지고 미군의 철수가 수순이라면….

누가 감히 100년전보다 더 어려운 역사가 한반도에 반복되지 않는다고 장담하겠는가. 이런 와중에 우리 내부에서는 친일등 과거사 논쟁이 불거지고 있다. 무엇보다 과연 우리에게 과거사를 평가할 자격이 주어져 있는가 묻고싶다. 단언컨대 현재의 과거사 평가는 채 4분의 1의 역사관도 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다. 전세계 유일의 민족분단 국가에서, 더구나 여야가 첨예한 논쟁을 벌이니 정부여당이 그들의 역사관을 관철시킨다해도 단지 4분의 1의 역사관밖에 되지 못한다. 더구나 당리당략에 색깔론까지 덧칠한 역사관이니 인용하고 싶지 않지만 4색당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싶다.

왜 그리 급히 서두르는가. 100년전 외환의 과거사는 이미 기지개를 켜고 시시각각 우리에게 다가오는데 4분의 1의 역사관으로 조상들을 재단해본들, 통일수도가 아닌 남한만의 수도를, 그것도 현재의 서울보다 더 남쪽으로 옮겨본들 무슨 의미가 있는가. 100년전 역사의 수레바퀴에 치여 숨져간 선조들의 신음소리와 후세 사가들의 평가를 한번쯤 생각해본다면 국가적 과제의 우선순위가 저절로 명확해진다.

현재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일은, 근시안적인 과거사논쟁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과거사의 교훈으로 나라 밖의 먼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다. 자격없는 자들의 우선순위 없는 과거사논쟁과 부실한 국제경쟁력은 외환의 역사를 반복할 뿐이다. 강력한 국제경쟁력의 중심 축은 경제력이다. 이제 정부 여당은 4분의 1의 역사관을 걷어치우고 아우성 일색의 경제난을 풀어나가야한다.

이는 내우외환의 과거사가 주는 명제이기도 하다. 조상탓 수준의 과거사를 논하는 것만큼 쉬운 일도 없다. 하지만 미래의 역사는 말하기 어렵다. 한 국가의 미래 역사는 너무 추상적이어서 먹고살기 바쁜 일반백성들이 감지하기에는 너무 어려워 그들의 몫이 아니다. 오로지 선택된 창조적 소수자의 몫이다. 국가의 미래 역사는 대통령 중심의 정치지도자 몫일 수밖에 없어 이제는 미래를 말해야한다.

(문화일보 / 김영호 기자 2004-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