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협상, 지나친 패배주의로 흘러선 안돼''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 작년 이맘 때 멕시코 칸쿤에서 ‘WTO가 농민을 죽인다'고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회장 이경해씨의 1주기를 맞는 지금, 우리가 쌀 시장 개방과 관련해서 고민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전 농림부 장관, 중앙대 김성훈 교수

를 연결해서 짚어봅니다.

◎ 사회/정범구 박사
김성훈 교수님은 평소 이경해씨와 잘 아시던 사이라고 알고 있는데요. 이경해씨가 지난 해 칸쿤으로 떠나기 전에 노무현 대통령과 당시 김성훈 장관께 특별한 유언을 남겼다죠?

◑ 김성훈 교수
자결을 하기 전 칸쿤 해변에서 녹음기에다 대통령과 저에게 유언을 남겼어요. 대통령께 한 것은 잘 모르겠고, 저에게는 파도 소리가 나는 녹음 소리 속에 둘째딸을 부탁한다는 메시지를 남겼어요.

사실 이경해씨가 떠나기 전에 딸 결혼을 2주 앞두고 있다고, 결혼식 주례를 부탁했었거든요. 그래서 ‘당신 가면 이번에는 사고 없이 돌아온다는 뜻이냐’고 물으니까, ‘아무렴요. 어미도 없이 키운 둘째 딸이 결혼하는데 무사히 돌아와야죠’라고 했거든요.

그래서 제가 약속했던 건데, 아마도 칸쿤에서 도저히 이대로 두다가는 우리 농업뿐만 아니라 세계의 소농민들이 다 죽게 생겼다고 판단한 것 같아요. 영어로 ‘WTO KILLS FARMERS’, WTO가 농민들을 다 죽인다고 플랭카드를 들고 외치면서 가슴에다 비수를 꽂았지 않았습니까...

◎ 사회/정범구 박사
이 모든 것이 소위 WTO 체제 하에서 일어난 비극인데요. 벌써 우리가 WTO 이야기를 들은 지도 10년 됩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쌀시장 개방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지금 진행되고 있는 WTO 협상은 어떤 협상인가요?

◑ 김성훈 교수
크게 두가지인데요. 93년 12월 우루과이 협정이 타결되면서 10년 후에 쌀 관계 재협상을 한다고 돼 있었습니다. 그에 따라서 금년 말까지 쌀 추가 개방에 대한 재협상이 진행 중이구요.

다른 한편으로는 DDA 도하 개발 아젠다라고 해서 지금 이미 농산물이 전반적으로 다 개방돼 있는데, 이에 대한 관세를 조속한 시일 내에 대폭 삭감하느냐 또는 서서히 소폭으로 삭감하느냐는 협상이 진행 중인 거죠.

요즘 종종 높으신 분들이나 정치권에서는 ‘개방이 대세’라고 하는데 이미 개방은 다 되어 있고, 관세와 보조금을 아예 없애버리느냐, 아니면 천천히 줄여나가느냐가 WTO DDA 협상이라는 겁니다.

장기적으로 하자는 것이 한국을 비롯한 농산물 수입국들의 주장이고 농산물 수출국들은 단번에 대폭 보조금이나 관세를 삭감해야 한다고 보고 있죠.

◎ 사회/정범구 박사
김성훈 교수님께서는 직접 농림부 장관도 하셨구요. 또 농업경제학자로 쌀 시장 개방 문제를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 김성훈 교수
우리에게 쌀은 주식이잖아요. 주식은 바로 식량 자주권과도 관계되고 민족의 생존권과도 관계되거든요. 그리고 특히 북한은 앞으로도 식량 문제에 관한 한 여러 가지로 전망이 안 좋지 않습니까.

그래서 해마다 우리가 30~40만 톤을 도와줘도 부족한데,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쌀은 통일의 수단이고, 또 통일됐을 때 민족의 생존권과도 관계되는 문제거든요.

그런데 이것을 수출하는 나라들은 쌀이 주식이 아닌 나라입니다. 미국, 호주, 브라질 등은 쌀을 주식으로 생각하지 않고, 상품으로만 생각하고 있거든요. 더구나 우리나라와 같은 아시아 몬순 계절풍 지역에서는 여름철에 논농사가 홍수도 막아주고, 지하수도 만들어주고, 공기도 맑게 해 줍니다.

이런 여러 가지 공익적 기능 외에도 전통적인 우리 문화가 쌀을 중심으로 형성되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돈으로 사고 팔수 없는 다양한 공익적인 기능이 있는데 쌀을 상품으로만 생산하는 나라에서 이것을 다 개방하고 관세도 낮춰서 ‘너희들은 우리 것을 사먹어라’라고 할 때는 단순히 쌀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 이런 공익적 기능들까지 다 사라져 버리거든요. 그래서 협상을 제대로 해야 되고, 또 너무 패배주의로 흘러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노컷뉴스 2004-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