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집착만큼 '현재' 위축

예측이 가능한 사회는 살아가기가 편안하다. 예측이 불가능하면 당연히 불편하다. 불편하다는 것은 마음고생은 기본이고 시간과 자원의 낭비도 따른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흔히 한국은 매우 역동적인 사회인 것 같다고 한다. 전에는 그러한 이야기를 "생기에 차 있고 발전을 향해 거침 없이 나아가는" 정도의 의미로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요즘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 변화가 많아서 예측이 불가능하니 근접하기가 두려운" 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게 된다.

과거를 청산하자고 야단이다. 친일행적에 대한 논의가 나라의 살림살이를 좌지우지하는 정치권을 사로 잡고 있다. 과거 청산 없이는 경제가 발전하고 국민소득이 3만불이 되어도 별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려 온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우울하고 불안해진다.

"이것 없이는 저것도 없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매우 단선적이다. 과학실험도 과거에는 그러한 모델을 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소위 원인과 결과 사이에 개입하는 수많은 매개변수들을 고려하지 않고는 객관적인 결과를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이 과학계의 상식이다. 과거 청산이 필요하면 하면 된다. 그러나 과거에 그러한 작업이 잘 안 되었다면 나름대로 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이유들을 다 매개변수로 고려해서 제대로 된 작업을 꾸준히 성의 있게, 예를 들어 한 50년에 걸쳐 장기사업으로 하자고 하면 국민의 저항이 없을 것이다. 단기간에 처음에는 뿌리를 뽑을 것처럼 나서다가 용두사미가 되거나 왜곡되거나 정치적으로 오용된다면 나라의 근본이 흔들릴 수 있다. 

인간은 마음 속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잘 균형 있게 서로를 존중하며 자리잡고 있어야 평안해진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과 마음이 모여서 나라도 움직이는 것이다. 과거만 너무 강조하면 나라 전체가 우울해진다. 우울증은 과거에 대한 반응이며, 그 어느 누구도, 그 어느 나라도 완벽한 과거를 못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사로잡히면 우울과 함께 불안증도 찾아온다. 불안증은 미래에 대한 반응이다. 아직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예를 들어 경제불황과 같이 예측되는 일에 대해 우려하고 두려워하는 것이다. 우울하고 불안하면 소중한 현재는 그냥 흘러가버린다. 흘러가버린 현재는 이미 과거가 되어서 우리를 더 속박한다. 그리고 속절없이 흘러가는 현재는 가능성에 가득 찬 미래를 소진할 뿐이다. 고등학교 시절을 부실하게 보냈다고 뒤만 돌아보면 영원히 대학생이 될 수 없는 것과도 같다.

과거청산의 핵심은 세대간 갈등의 증폭이다. "아들인 나는 완벽한데 왜 우리 아버지는 이런 잘못을  저질렀을까"라고 따지기 시작하면 '아버지 죽이기'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아들인 우리가 늙고 병들면 우리의 아들들이 다시 "왜 아버지는 이렇게밖에 못 했어요"라고 묻기 시작할 것이다. 유교문화의 영향에 숙성되어 있는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간의 갈등은 엄청난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그것이 평등사회로 가는 진통이라고 부추길 수 있지만 만에 하나라도 '문화혁명'식 분위기로 전개된다면 '삼천리 갈등강산'으로 불같이 번져나갈 것이다.

명분에 사로 잡히면 앞뒤를 가리지 못하는 경향이 심한 한국인의 심성을 고려할 때 지금 우리는 일종의 도박을 하고 있다. 우리의 현재와 후손들의 미래를 걸고 과거의 찌든 때를 벗겨내려는 명분도 이해하고 필요성도 인정하나 너무 박박 문지르면 멀쩡한 피부가 벗겨지고 출혈도 있을 것이며 저항력이 떨어져서 세균감염으로 패혈증에 걸릴 수도 있다. 자신이 없으면 조심하며 천천히 가자.

<정도언 / 서울대 의대 교수-정신과학>

(뉴스메이커 2004-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