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중파 내세워'북한 자치구' 건설 야심 


중국이 북한에서 일어날지도 모르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 본격적인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다. 2003년 9월에서 연말까지 압록강과 두만강에 있는 북한 국경지대에 인민해방군 15만명을 전진 배치시킨 것이 그중 하나다.

중국 외교부는 당시 "국경지대를 지키는 무장경찰을 교체하는 정례 이동"이라고 밝혔지만 서방 관측통들은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관측통들은 해방군 동원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에서 북한에 성의있는 자세를 촉구하는 경고의 메시지일 뿐 아니라 바로 북한 정권이 붕괴할 경우 국경 지대로 대거 몰려들 북한 난민들의 유입을 막기 위한 사전대책으로 분석했다. 중국은 54년 전인 1950년 10월 한국전쟁에 참전하기 직전인 그해 7월 중순에 이미 13만명의 병력을 압록강 일대 국경 지대에 배치한 바 있다.

물론 병력 이동은 드러난, 극히 일부분의 움직임일 뿐이다. 중국이 북한 정권 붕괴에 대비하는 시나리오는 이미 오래전에 작성돼 여러 차례 도상연습까지 마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 국경지대 중국군 15만 명 배치

중국은 한반도가 남측의 주도로 통일돼서 미국의 영향력 아래 들어가는 것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그동안 중국의 안전판이 돼오던 북한이 더이상 그 구실은 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더욱이 '통일 한국'이 주로 중국 동북지방에 몰려 살고 있는 조선족 2백만명에게 영향을 끼치면서 중국 안보가 흔들릴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정부의 싱크탱크(두뇌집단)인 사회과학원 세계정치경제연구소 가오헝(高恒) 연구원은 "한반도에서 미국의 패권주의를 저지하는 것이 바로 중국의 국익에 부합한다"고 강조했다. 중국과 북한은 '입술과 이'의 관계니만큼 '통일 한국'의 출범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만일의 사태가 발생할 경우 인민해방군을 진주시켜 친 중국파로 정권을 잡게 한 뒤 자치구로 확대개편할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중국과 북한은 61년 우호 조약을 체결, 상대방이 군사적 침략을 받을 경우 자동 개입을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니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다. 최근 중국 네티즌을 대상으로 한 여론 조사 결과도 72%의 중국인이 미국과 제2의 한국전쟁을 치를 용의가 있다고 답변하고 있다. 중국이 한반도 정세에 관심이 많은 것은 그만큼 중국의 안보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탕자쉬안(唐家璇)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부총리급)은 94년 제1차 북핵 위기가 닥쳤을 때 당시 외교부 부부장으로 있으면서 한국의 일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은 핵무기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없다"며 "확실하게 만들었다는 증거가 있다면 우리는 당장 해방군을 동원해 북한의 핵무기를 탈취해오겠다"고 밝힌 바 있다. 평화와 발전을 부르짖고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국익에 보탬이 된다면 군사력을 동원해서라도 북한에 들어가겠다는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한반도 통일은 중국 안전 위협"

중국은 한반도 통일이 중국의 안전에 중요한 위협 요소라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 북한이 경제난 등 내부 붕괴로 한국에 흡수 통일돼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등 군사력과 남한의 산업 기반이 결합할 경우 한반도가 인구 7천만명의 동북아 강국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지적이다. 결국 남쪽 주도의 한반도 통일은 주한미군이 압록강변에 주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고 이는 곧 한국전쟁에서 치른 중국의 희생을 물거품으로 만든다는 설명이다. 중국은 한국전쟁 당시 한반도 전체가 미국의 영향에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고 참전했고 그 대가로 30만여명이 전사하고 1백만여명이 부상하는 희생을 치렀다.   

북한에 친중파 정권이 대두할 가능성은 우리 정부도 나름대로 예상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고건(高建) 전 국무총리는 지난 4월22일 북한의 용천에서 대규모 폭발 사고가 났을 당시 현 북한 정권이 무너지고 친중파 정권이 들어서게 될까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회고했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노린 테러였다는 풍문이 나돌던 터였다. 만에 하나 북한 정권이 내부 원인으로 급격하게 무너질 경우 우리가 제대로 손쓸 겨를도 없이 중국의 해방군 병력이 진주해 평양의 친중파 군부와 손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물론 중국내 극소수 의견이지만 남한 주도의 통일 한국 출범이 중국의 국익에 오히려 부합한다는 주장도 있다. 한반도 전문가인 장젠연구원은 한반도가 통일되더라도 인구나 면적으로 볼 때 중국에 그다지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며 오히려 통일이 되면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철수를 요청할 수 있어 좋다고 분석했다. 더욱이 경제난을 겪고 있는 북한에 대한 원조 부담이 늘어나는 이 즈음 차라리 남측 주도의 한반도 통일이 실현되면 부담이 줄어든다는 지적이다.

북한의 경제난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북한 붕괴 가능성에 대해 전세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주도로 탈북자에 대한 지원이 강화될 경우 북한의 체제 기반 자체가 흔들릴 우려마저 있다는 것이 북한 사정에 밝은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최근 탈북자 대열에 그동안 기득권층이라고 하던 혁명 열사 가족이 포함되어 있다는 풍문이 나돌 만큼 북한의 상황은 심각하다. 새로운 체제 위기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어떻게 넘길지 주목된다. 당장은 북한이 무너질 가능성은 없다고 해도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터질지 모르는 만큼 중국은 북한의 세세한 정세 변화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이 최근 추진하고 있는 고구려사 왜곡 시도가 북한 붕괴를 염두에 둔 사전 포석이라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서울대 정치학과 커뮤니티에 처음 실린 이 글은 베이징대학 유학생이 지난해 '량첸'이라는 교수가 강연한 내용을 기록해 올린 것이다. 베이징대학에 직접 확인한 결과 이런 교수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베이징대학의 정외과라고 할 수 있는 국제학원(중국의 학원은 단과대학을 말함)과 역사과 등에는 '량첸' '량천', 또는 '첸량' '천량'이라는 교수는 없었다. 유학생이 가명을 썼거나 정확한 표기를 하지 않았을 개연성이 크다. 출처가 불분명하기는 하지만 내용 자체는 충격적이며 실현 가능성도 적지 않다.

'량첸' 교수의 주장은 중국이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넣으려고 시도하는 것은 북한 정권이 붕괴할 경우 중국에 친화적인 북한 군부가 집권할 가능성이 크고 이를 계기로 북한을 중국에 통합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북 혁명열사 가족 탈북자 대열 가세

그는 "북한 정권은 앞으로 10년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전망하면서 "중국은 친중파 혁명정권을 지지하는 한편 군사 지원을 계속하되 장기적으로는 중국의 지린성(吉林省)과 북한 지역을 함께 묶어 자치구로 만들겠다는 복안을 마련중"이라고 밝혔다는 것이다.

중국이 고구려사 왜곡을 위해 2002년2월 착수한 동북공정에 정통한 일부 전문가들도 동북공정의 최종 목표는 북한과 동북지방 일부를 묶어 자치구로 운영하는 것이라고 전한다. 

이에 대해 고구려 연구재단 윤휘탁 연구위원은 "고구려사가 중국사가 되면 고구려가 있었던 북한 지역에 대한 중국의 지배권을 인정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반도 유사시 현재 북한 영토인 한반도 북부에 대한 연고권을 주장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여지를 남겨두기 위해서 동북공정을 시도하는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논리대로라면 고구려사는 중국사여서 과거 고구려 영토였던 북한 지방에 대해 중국이 영유권을 내세울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평양 기운이 심상찮다

중국은 은밀한 북한 내부사정을 엿볼수 있는 '창구'다. 압록강과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1,324㎞의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데다 탈북자가 30만명에 이르고 베이징(北京)에만 7,000명의 북한 사람이 상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북한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들을 접촉하게 된다.

최근 부쩍 늘어난 '첩보'는 반(反) 김정일 거사 움직임이 심상찮다는 것이다. 사회 불만 세력이 아니라 북한 내부의 엘리트 계층들이 이대로는 곤란하다고 판단,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제거하려는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2002년 7월1일 경제관리 개선조치 이후 개혁개방 성과가 드문드문 전해지기는 하지만 '더이상은 못 참겠다'는 위기의식이 북한 내부에서 더욱 높아지고 있다는 관측이 나돌고 있다. 

소식통들은 개선조치가 북한 당국이 적극 주도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개인이 물건을 들고 나와서 직접 뛰는, '반짝 경기'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이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태 악화를 우려해 평양에 있던 측근들을 각 지방으로 내려보내 민심을 다독였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통일부는 북한이 개선조치 실시 2년 남짓 만에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시장이 커지면서 물가가 뛰고 있다는 설명이다. 개선 조치 직후 쌀 1㎏이 북한돈 45원이던 것이 요즘은 500원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북한 돈의 가치도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개선 초기 달러당 북한돈 230원하던 것이 지금은 2,000원을 넘어섰다. 통일부 관계자는 "1차산업과 2차 산업의 기반이 부실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개혁조치를 단행한 후유증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뉴스메이커 / 홍인표 특파원 2004-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