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일기] 씁쓸한 고구려사 캠페인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응하자는 국민적 공감대가 달아오르자 일부 기업이 발빠르게 이 문제를 상품 마케팅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KTF는 고객이 사용한 요금의 일부를 고구려 역사 지키기 기금 조성에 사용하는 '고구려 요금제'를 출시했다.

이 회사는 민간 차원의 고구려 역사 바로잡기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기금 적립형 요금상품이라며 해당 고객 1인당 월 500원을 고구려연구회 등 관련 단체에 3년간 기부한다고 한다.

기업은행도 공익형 상품이라며 '고구려 지킴이 통장'을 내놨다.

상품 판매에 따른 은행 수익금을 고구려 역사 연구단체에 기부하거나 은행의 고구려 관련 교육 문화 및 홍보사업에 직접 사용한다는 것이다.

우리 역사에 대한 고객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관련 연구기관에 얼마간의 금전적인 보탬이 된다는 측면에서 뭐라 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국민들의 순수한 감정을 이용한 즉흥적 마케팅이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 것은 고구려사 문제에 대한 한중 양국의 판이한 대응방법 때문이다.

중국은 고구려사를 자신들의 역사로 편입하기 위해 수 조원의 예산을 투입해 전략적·장기적 차원의 국가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나라 간의 분쟁에서 필요한 것은 '국제사회의 지지'와 '학계의 객관적 연구결과'이다.

중국은 국민감정에 의존한 목소리 내기보다는 역사정리와 유적 재 개발, 체계적 홍보 등에 몰두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도 진정으로 역사 지키기에 나서겠다면 떠들썩한 마케팅보다는 사회공헌 활동차원에서 조용히 해당 기관과 단체를 지원하는 것이 낫다는 지적이 많다.

고구려사 마케팅이 자칫 '담배꽁초 안 버리기' 같은 캠페인성 행사로 전락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산일보 2004-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