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 '동북공정'은 중국의 안보전략이다

지난 8월 하순 국회연구모임 한민족평화네트워크 소속 의원들과 함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한.러 의원 평화포럼에 참석했다. 우수리스크 일원을 둘러보면서 독립운동가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를 참배했다. 비석 아래로 수이푼강이라는 작고 정겨운 강이 흐르고 건너편 낮은 산위에는 아직도 산성의 유적이 남아 있는데 그것은 발해의 토성이었다고 한다. 해동성국의 토성 아래 조국독립에 신명을 바친 선열의 유적 앞에 서서 중국 '동북공정'(이하 공정)의 의도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최근 뉴욕 타임스는 베이징의 의도가 "언젠가 중국 동북지방에 사는 200만여명의 조선족들이 현 국경을 넘어서는 '대한국'을 지지할 가능성을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설득력이 약하다. 국제 개입 세력들이 분리주의자와 지역 분할 세력을 방조함으로써 중국의 내전이 국제화하고, 베이징이 주권과 영토적 통일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비상상황을 가정하지 않는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고구려사를 정치 문제화하지 말고 역사 연구의 대상으로 남겨 두자는 베이징의 방안에 대해 논자들은, 고구려사 왜곡으로 인해 한국이 미국의 대중국 포위 전략에 동참할까 두려워 서둘러 진화에 나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과연 그런 것일까.

중국이 정부 차원에서 오랫동안 후원하고 독려해온 고구려사 연구를 최근 2년 사이에 공정이라는 이름을 통해 공론화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베이징이 공정에서 추구하는 것은 역사 바로세우기가 아니라 국가안보 전략이다. 베이징은 역사적 사실의 객관적 재구성이 가능(?)하다 해도 거기에는 관심이 없으며, 동북아 국가안보 전략의 논거와 명분을 마련하는 데 주된 목적이 있다. 즉 베이징은 공정을 통해 남북한.미.일.러.대만 등을 상대로 전형적인 다면 전략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논쟁의 당사자인 남북한에 대한 전략은 단.중기적 안보전략의 일환으로 무엇보다도 향후 북한 체제의 유동성과 관계있다. 현재 북한은 최악의 경제난국을 넘기고 부분적인 경제 개선 조치들을 취하고 있지만, 체제개혁의 전망은 불투명하며 핵문제 해결은 지연되고 있다. 베이징이 연구결과를 공식화한 시점(제2차 북핵 사태의 장기화 및 미.일동맹의 성격 전환)의 선택은 전략적 관점에서 시의적절해 보인다.

북핵 문제의 파열과 미국의 무력 사용 혹은 북한의 내부 상황 등으로 북한 정세가 위기상황으로 돌입할 경우 북한의 국가체제 위기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는 중국의 사활적인 국가이익의 범주에 들어간다. 고구려사가 중국사라는 주장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중국은 현재 국제 전략환경에서 한.미동맹의 전통적 성격이 그대로 지속되는 한 한국이 주도하는 친미적인(과거 고구려 권역인 북한 영토를 포함하는) 통합 혹은 통일을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정의 주장처럼 북한을 직접적인 영향 권역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동시에 북한 지역에서 혼란과 내전이 발생할 경우 일본의 주변 사태법, 그리고 유사 대비 입법들 중 '무력공격 사태 대처법'을 빌미로 미국과 일본이 함께 개입하는 것을 방관하지 않겠다는 경고 의미를 갖는다. 그러므로 국가안보 영역에서 고구려사 왜곡이란 역사연구의 결과를 인용한 '문화적 신호 보내기'다.

과거 중국의 전략은 북한 정권의 비호 및 우호 관계 유지를 통해 동북 지역의 정치군사적 안보를 보장하는 형태였으나 이제는 평양 정권의 존속 여부와 별개로 북한 국가체제에 위기가 발생한다면 자신의 국익 수호를 위해 직접 개입하는 전략으로 선회한 것으로 추측된다.

베이징의 '문화적 신호'는 서울에 잘 전달되었는가. 북한 유사시 미.일동맹과 중국이 동시 개입해 충돌하는 상황은 그들만의 분쟁이기에, 일관되게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지향하는 대한민국은 여전히 안녕할 것인가. 공정은 먼 훗날 언젠가 고조될 낭만적 민족주의나 영토 문제가 아니라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를 덮칠 수 있는 '전쟁과 평화'의 문제를 숙고하고 대비해야 할 메시지로 읽힌다.

<강봉구 한양대 아태연구센터 연구교수>

(중앙일보 2004-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