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친 옥새·강압에 의한 조약… “국제법상 효력없어”


일본이 淸에 간도를 넘겨준 근거인
을사조약 자체가 무효…
만주는 중국에 반환 되었지만
日이 맞바꾼 간도는 아직 원위치 안돼

<上> 日帝의 ‘간도협약’은 무효다

간도(間島)의 영유권은 한국과 중국 과연 어느 쪽에 있는가? 대한민국은 일제가 청에 넘긴 간도의 영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가?

1909년 일본이 청과 ‘간도협약’을 맺으며 간도 영유권을 청에 넘겨준 근거는 조선과 청의 당시 국경이 ‘토문강=두만강’이라는 데 근거했다. 그러나 8일 발견된 1909년 간도협약 체결 직후 일본이 제작한 지도에는 토문강과 두만강이 분명히 다른 강으로 드러나 있다. 당시 일본 당국도 이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물이기도 하다.

이 지도의 등장은 현재 물 밑에 잠복해있는 한·중간 ‘간도 영유권’ 분쟁의 폭발력 있는 실마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북부에 존재했던 ‘고구려’를 중국 역사에 포함함으로써 이 지역에 대한 역사적 연고권을 주장하려 드는 중국의 동북공정까지 맞물려 한·중 두 나라의 영토 분쟁을 불러올 소지도 짙다.

이와 관련, 지난 3일 여야 국회의원 59명이 국회에 제출한 ‘간도협약의 원천적 무효 확인에 대한 결의안’도 불씨를 안고 있다. 당시 의원들은 “일본이 우리 영토인 간도를 청에 넘겨준 것은 원천적으로 무효인 1905년 을사조약을 근거로 하는 만큼 무효”라고 주장했다. 국내 간도문제 전문가들은 ‘간도협약’이 무효라는 데 대체적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 “청·일 간도협약은 국제법상으로 유효한 국경 합의가 아니기 때문에, 이 협약에 기초해 획정된 현재의 국경선은 법적으로 인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그 이전에 유효하게 존재했던 국경선’이 한·중 양국의 국경선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에 발견된 지도는 ‘그 이전의 유효한 국경’으로서 토문강의 존재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조선과 청은 ‘백두산 정계비’를 세우며 두 나라 국경이 토문강과 압록강이라고 합의했으며 다만 토문강이 두만강의 다른 이름이냐 아니냐가 논란거리였기 때문이다. ‘간도 협약’이 무효라는 근거는 무엇보다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 행사를 대리하게 된 1905년의 을사조약 자체가 무효라는 논거에서 출발한다.

을사조약은 일본측이 헌병을 동원해 대한제국 대신들을 위협한 가운데 맺어진 것으로 마땅히 ‘국가대표에 대한 강박’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이태진(李泰鎭) 서울대 교수(국사학)는 “황제의 비준서가 발부되지 않은 을사조약은 정식 외교협정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설사 일본이 대한제국의 보호국으로서 지위를 유지했다는 논리가 인정되더라도

간도협약은 ‘보호권의 범위’를 넘어섰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을사조약 제1조에서 ‘일본국 정부는 한국이 외국에 대하는 관계와 사무를 감리지휘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대리권으로서의 외교교섭권만을 의미할 뿐 조약체결권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체결에 사용된 대한제국 황제 고종의 옥새는 훔쳐온 것이었다.

2차대전 종전 후 간도 지역이 중국에 귀속된 상태로 남아있는 것 역시 국제법상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1952년 4월 중국과 일본이 체결한 평화조약 제4조에서 “전쟁의 결과로서 1941년 12월 9일 이전에 체결한 모든 조약·협약·협정을 무효로 한다”고 규정했음에도 불구 중국이 간도를 자신의 영토로 삼는 것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 유석재 기자 2004-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