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21세기에도 ‘동방예의지국’인가?

올림픽 체조경기에서 오심을 항의하지 않으면서 금메달을 양보하고 말았다. 다음 경기에 영향을 줄까보아 문제 일으키지 않고 넘어간 결과 이다. 우승 한 미국 선수는 즉시 항의를 왜 안했는가를 반문하며 절차에 따라 자신이 승자라고 항변하고 있다. 맞는 논리다. 오심을 구실로 결과가 번복 된다면 모든 스포츠 경기에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즉 결과가 나오기 전에 이의를 제기하고 수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오심을 인지하고도 항의가 다음 경기의 조화를 깬다고 하는 우리의 방어적 타성인 ‘동방예의지국신드롬’이다.

모욕 받은 한국 : 부시대통령이 연설에서 동맹국명단에 한국을 빠트렸다. 분석해 보면 지구상에서 한국만큼 미국에 충성을 다하는 나라는 없다. 월남과 이라크에 이르기까지 미군대신 죽어 줄 군대까지 보냈는데 동맹국으로 인정도 못 받고 있는 치욕을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는가. 그 동안 반미의 선봉이었던 리비아가 최근 핵개발 포기와 과거의 문제들에 대한 사과를 하면서 갑자기 착한 나라로 칭찬받고 있다. 한국은 그토록 충성 바쳐왔는데 최근 자주를 조금 외친다고 동맹국명단에도 빠지는 굴욕을 받고 있다. 나쁜 아이가 한 가지 좋은 일을 했더니 착한 아이가 되고 그토록 착했던 아이가 한 번 지각했더니 하루아침에 불량소년이 되는 기가 막힌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한국이 역사적으로 너무 대국들에게 충성을 바치다 보니 그들이 보기에 한결 같은 충성을 받아야 하는데 정도만 조금 약해져도 괘씸하게 여겨지는 것이 아닐까. 중국과 일본은 역사, 영토문제에 마음대로 의견을 표출하는데 한국은 상호관계에 악영향을 줄까 보아 말을 못하니 이거야 말로 오심을 오심이라 하지 못한 동방예의지국의 심성이 조성한 결과가 아닌가.

우리의 사대주의와 동방예의지국의 타성이 민족자존심과 외교력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 미국은 주둔군 일부를 철수시키며 교묘한 장난을 치고 있다. 냉전이후에 세계전략이 변하며 당연히 해외주둔군의 구조조정을 하면서도 마치 한국에서 반미감정 때문에 철수한다는 허위 의식을 심어주려하고 이에 국내 보수진영이 합세하고 있는 것이다. 순박한 일부 국민은 미국에 대해서 죄송함을 금치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정서가 퍼져 있다. 이들에게 꼭 말해 주고 싶은 것은 한미동맹관계는 앞으로도 공고할 것이라는 것이다. 미국을 침략했던 일본도 전략적 필요성으로 안 버리고 있는데 왜 대신 죽어줄 군인까지 이라크에 파견하는 한국을 미국이 버리겠는가.

존경 받으려면 강해져야 : 역사적으로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피해를 입었던 한반도가 이제 북한의 핵개발, 남한의 자주외교와 우라늄 분리실험 등으로 마치 평화의 파괴자나 되는 것처럼 호들갑이니 어느 쪽이 가해자였고 피해자였던지 혼동이 된다. 연속극 ‘불멸의 이순신’이 주변 국제관계를 해친다고 하는 한심스런 국회의원에게 중국과 일본의 수많은 연속극들이 한국을 침략했던 왕조와 인물들을 포함하고 있고 그것을 태연히 보고 있다고 알려 주고 싶다. 그 나라에 가서 그 연속극들 그만두라고 하지는 못하는가. 우리는 연속극 만드는 데도 옆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가.

스포츠로 시작했으니 스포츠로 이야기를 끝내자. 축구에서 ‘공격은 최대의 방어’라는 말이 있다. 독도와 고구려를 수호하려면 대마도, 간도는 우리 것이라고 먼저 공격하는 게 가장 좋은 방어일 수 있다. 미국에게서도 존경을 받으려면 의존적이기 보다 자주적이라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고성빈>

(제주일보 2004-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