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의 제국] '수수께끼 제국 '가야' 실체 찾아 떠납니다'

1970년대 이래 숱한 독자들을 펜으로 매혹시켜 온 소설가 최인호( 59)가 가야의 땅에 발을 내딛는다.

백제(역사소설 '잃어버린 왕국 ') 고구려('왕도의 비밀') 통일신라('해신')를 거쳐온 그의 펜이 가야의 역사에 가닿는다.

그 여정이 우리 역사의 궁극에 이른 것 같다.

장엄하다.

1990년대 경남 김해의 대성동 고분군이 깨어날 때가 그랬다.

그의 가야사 소설은 이 고분군에서 시작된다.

대성동 고분군의 발굴은 1500여년 침묵 속으로 가라앉았던 금관가야가 다시 섬광처럼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견성(見性)이었다.

최인호는 '견성하듯이 소설을 쓸 것'이라고 했다.

그는 가톨릭 신자 이고, 구도 소설 '길없는 길'을 쓸 때는 출가를 심각하게 생각했다 . 글쓰고, 자료 공부하고…. 그의 생활은 아주 단순하다.

그는 '중 같은 생활'이라고 했다.

그러니 소설 쓰는 것이 당연히 '견성'일 것이다.

하지만 견성은 양의적이다.

우선 미혹이 있다.

'가야는 아직 수수 께끼이고, 기록이 없고, 소문이 무성한 역사입니다.'

요컨대 꿰어지지 않은 구슬이다.

그러나 다음으로 미혹을 물리칠 화두가 있다.

'가야는 고대사 제4의 제국입니다.'

분명 있었으나 땅으로 꺼지고 하늘로 증발해버린 듯한 그 역사에 그는 제4의 제국이란 이름을 붙였다.

제4의 제국의 모습은 어떠했나? 그는 '일본의 고대를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그가 보기에 6세기 이후 일본은 분명 백제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그 이전에는 가야의 영향이 또렷하다.

이어지는 그의 말에 헉, 하고 숨이 막힐 지경이다.

'가야는 왜와 운명적인 공동체였을 것입니다.'

5세기대 김해 대성동고분군의 축조는 거짓말처럼 끊어진다.

가야 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남정(南征)으로 초토화됐다.

대성동고분 군의 핵심적인 지배층은 어디로 갔나? 최인호는 '금관가야의 지배층은 일본으로 갔고, 일본 왕조의 뿌리를 이뤘을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왜 신라로, 백제로 가지 않고 일본으로(더 많이) 갔을까? 아무 상관이 없는데 갔을까? 가야의 역사는 점입가경이다.

시작도 수수께끼다.

최인호는 '가야 는 묘하고도 묘한 제국'이라고 했다.

'가야는 저 북방(부여)에서 김해로 붕 날아서 들어왔습니다.

참,미스터리합니다.'

가야는 고구려 백제, 그러니까 한반도 북·중부를 거치지 않고 도깨비방망이의 조화처럼 김해에 '뚝딱'하고 일어났다는 것이다.

최인호는 '땅의 길이 아니었다면 바닷길이었다'라고 했다.

가야 지역에 남방문화가 전래된 것 또한 수수께끼다.

그는 '김해 에서 발굴된 편두인골(扁頭人骨·인공 변형된 두개골)은 폴리네시아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는 남방문화'라고 했다.

남방문화의 전래는 인도에서 불교를 가지고 김수로왕에게 시집왔다는 허황옥의 얘기에 흔적이 남아있다.

작가는 '북방과 남방이 한데 버무려진 가야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미스터리한 제국'이라고 말했다.

또 세계사에서 보기 드문 엄청난 철기와 토기의 제국, 중앙집권적 이지 않고 유목의 제국처럼 곳곳에 할거한 도시 국가들…. 그게 아직 미지로 남아있는 제4의 제국이다.

그걸 찾아가는 발길은 역사 추리 형식이다.

작가는 '소설은 현실공간과 역사공간을 넘나들며 가야를 추적해 갈 것'이라고 했다.

'고고학자도, 가야를 추적해가는 인물도 나오고 또 김유신도, 강수도 나올 겁니다.

무엇보다 쓰면서 내가 재미있어 할 소설을 쓸 것입니다.'

그는 왜 쓰는가?

'김해 부산은 또 하나의 왕도입니다.

백제의 부여, 신라의 경주에 버금가는 곳이죠. 낙동강은 유장하게 흐르고 있건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조차 이곳이 역사의 고도(古都)라 는 걸 잊고 있습니다.

김해와 부산, 나아가 경남은 우리나라 제4의 제국을 탄생시킨 태반입니다.'

그는 '소설을 쓰면 나는 행복하다. 역사는 특히 재미있다'고 말했다.

'역사는 침묵하지 않습니다.

침묵의 소리(sound of silence) 가 들리지 않습니까. 내가 이렇게 좋은 일을 하는데 내 핏속을 흐르고 있는 우리 선조들이 도와주지 않겠습니까. 나는 믿습니다.'

그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국내는 물론 일본과 인도를 답사했다.

(부산일보 / 최학림 기자 2004-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