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사유적지 탐방]윤희순유적지 노학당 옛터

심양시에서 254㎞, 신빈현에서 1시간10분 쉼없이 달려 환인현 시가지에 들어서자 다섯 선녀의 전설을 간직한 유백색 5녀산성이 일행을 맞는다.

기원전 37년 고주몽이 고구려의 첫 수도로 정했던 환인현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중국과 역사왜곡 문제로 논란이 되고 있는 바로 그 곳이다.

5선녀 전설이 담긴 `5녀산성'은 지금도 `고구려 산성'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숲이 우거진 구불구불한 산간도로를 40여분 달리다 보면 윤희순의 피눈물과 땀으로 얼룩진 `노학당(老學堂)' 옛터가 나온다.

끝없이 펼쳐지는 옥수수밭 한 가운데에 홀연히 자리한 노학당 비석만이 고향을 떠나 `차가운 땅' 이국에서 40여년을 항일의병 및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윤희순을 추억했다.

윤희순은 1910년 국권을 상실하자 왜적의 통치를 받을 수 없다며 이듬해 고향인 춘천을 떠나 중국 산간마을 환인현에 도착했다.

환인현 읍내에서 75km 떨어진 팔리전자(八里甸子) 취리두(臭李斗) 남산마을이라는 곳에서 황무지를 개척하던 윤희순은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동포들의 도움으로 노학당을 세웠다. 교장을 맡은 윤희순은 이 곳에서 50여명의 제자를 배출시키며 노학당이 있는 보락보진에서 30㎞ 떨어진 팔리전자를 오가며 항일운동과 함께 노학당 운영자금을 모금했다.

팔리전자에서 가까운 마을인 오리전자 협피구(夾皮溝)는 고국에서 1919년 3·1운동 소식이 전해지면서 3월23일을 전후해 조선독립만세를 외친 곳으로 유명하다.

환인현 민족자치회, 조선족역사연구회와 보락보진 인민정부는 2002년 8월 윤희순탄생 90주년을 기념해 `노학당' 옛터를 영구 보존하기로 하고 `노학당 유지(遺址)' 공적비를 건립했다.

환인현 조선족의 왕으로 불리는 향토사학가 이영훈교수와 `불굴의 항일투사 윤희순'의 일대기를 펴낸 김 양 전 랴오닝대 교수가 강원여성대표단을 동행, 윤희순이 이 곳에서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에 나섰던 과거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20여년간 윤희순 추모사업을 주도해온 여성예림회도지회 박찬옥고문(현 윤희순기념사업회 이사장)·김금분회장 이태희춘천시여협회장을 비롯한 여성대표단 일행은 옥수수밭에 흩어져 있는 무심한 돌들을 만지며 윤희순의 흔적을 찾으려 애썼다.

강원여성대표단은 돌보는 이 없이 내팽겨쳐진 비석주변 조성사업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나아가 윤희순여사 선양사업에 모두가 앞장서기로 다짐했다.

강원여성대표단은 방문기간 환인현 민족자치구 김필녀 조선민족부녀연구회 대표 등과 간담회를 갖고 윤희순여사의 노학당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지속적인 교류와 지원사업을 모색하기로 합의했다.

우선 오는 10월 춘천에서 개최되는 윤희순 얼 선양세미나에 김 양 교수를 초청, 현지발굴 및 사업전개 과정 등을 소개해 여론을 환기시키고 조선족부녀회와 국제교류결연서도 교환할 계획이다.

윤희순 선양작업과 병행해 심양에서 조선족 학생을 배출하며 조선의 얼과 정신을 심고 있는 김 양 교수는 “중국내에서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 윤희순여사의 노학당 정신을 잇기 위해 양지역의 여성지도자들이 동참해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윤희순이 자주 들려 줬다던 “일본의 노예가 되지 말고 마음을 합해서 몰아내야 조선 사람이 살지, 그렇지 않으면 못산다”는 말이 노학당 옛터를 떠나는 강원여성대표단의 귓가를 때렸다.

(강원일보 / 남궁현 기자 2004-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