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한국학연구소장 `친일파 청산'에 쓴소리

에커트 박사, "고구려는 한국 역사의 일부"

이화여대 초청으로 강연차 한국을 방문한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장 카터 J. 에커트(59) 박사는 7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최근 초미의 관심사인 `친일파 청산' 문제에 관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에커트 박사는 "친일파라는 말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운을 뗀 뒤 "총독부나 경찰서에 근무했던 한국인만을 친일파로 봐야 하냐"며 "그 시대에 살며 혜택을 입은 많은 사람들도 모두 친일파로 구분지어야 하는지 `친일파'라는 기준 자체가 불명확하고 도식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뭉뚱그려 친일파를 구별짓기보다는 과거 문헌과 기록 등을 통해 개인의 친일행적에 대한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2차세계대전 후 유럽에서 행해진 나치부역행위 처벌에서도 후손에게 책임을 묻지는 않았다"며 "선조 때 이뤄진 친일행위에 대한 책임을 후손에게 묻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에커트 박사는 친일청산 방법과 관련해서도 "한국인들이 과거사에 대해 공개적인 토론과 논의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하며 문서 고증의 방식으로 친일행적을 입증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60년대 말에 한국에 처음와 8년간 머문 동안 한국경제는 가난을 털어내며 놀라운 발전을 보인 반면 정치는 권위주의 상태였다"면서 "하지만 이러한 정치경제적 모순사이에서 풀뿌리 민주주의가 싹트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나라에서는 법제도를 통해 민주주의가 성장했지만 한국은 길거리에서 민주주의를 만들어갔다"며 "이는 매우 독특한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1993년 한국학연구소 소장으로 처음 부임했을 때만 해도 한국을 배우려는 학생수가 미미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한국학 과목에 60∼70여명의 학생들이 자리를 꽉 채울 정도로 관심이 크다"고 달라진 한국학 위상을 설명했다.

그는 또 "미국내에서 주로 한국에 대한 연구는 현대사, 현대문학 등이 위주"라며 "앞으로는 고구려 역사를 포함한 고대 한국역사에 관한 연구가 한국학 발전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300여명의 이화여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벌인 강연회에서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도 나왔다.

그는 "개인적으로 고구려사 연구에 대한 준비가 부족하다"고 전제한뒤 "하지만 고구려가 한국 역사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정치적인 목적으로 고구려사를 연구하는 일은 옳지 못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학자들 외에 고구려사에 대한 문헌을 세계적으로 공유하고 있지 못한 게 현실"이라며 "내년 하버드대에서 열릴 고구려 역사에 관한 세미나를 통해 북 미, 유럽학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것"이라고 덧붙였다.

에커트 박사는 1960∼70년대 평화봉사단으로 한국에 머물었으며 이후 미국으로 돌아가 한국역사를 전공, 1985년부터 하버드대에서 한국학을 가르쳐 온 세계적인 석학이다.

그는 현재 하버드대 학부생들에게 `두개의 한국(The Two Koreas)'이라는 과목으로 남북한 문제를 가르치고 있다.

(연합뉴스 / 양정우 기자 2004-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