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문 닫고 집안 단속중?

북한이 대남 관계를 계속 경색국면으로 몰아가고 있다. 북한은 우리 정부의 김일성 전 주석 사망 10주기 조문 불허와 대규모 탈북자 입국을 핑계로 대화의 문을 닫았다.

제15차 남북 장관급회담(8월 3~6일, 서울)과 10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8월 31일~9월 2일, 서울) 등 당국 간 대화가 무산됐다. 민족작가 대회와 고구려 문화유적 답사 등 민간교류도 중단되고 있다.

당초 정부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대규모 탈북의 후유증이 걷히면 북한이 대화에 응할 것으로 보았다. "북의 오해로 당국 간 대화가 중단된 것은 유감"이라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언급이 나온 것도 이런 분석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 4일 국가보안법 철폐를 대화재개의 조건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담은 민족화해협의회 명의의 성명을 발표하는 등 강수를 두었다. 북한은 "대화 재개를 바란다면 보안법을 철폐하는 용단을 내리라"며 "보안법 폐지를 반대해온 사람은 공화국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북)의 가장 아픈 곳을 건드렸다. 남쪽에서 문제를 일으켰으니 충분한 사죄와 보상이 있기 전에는 남북관계 정상화가 어려울 것이다."

정 장관의 발언 이후 금강산에서 만난 한 북한 관계자의 언급이다.

북한의 이 같은 태도에 대해 전문가들은 미국 대통령 선거를 대비한 시간끌기와 1990년대 후반부터 이완되고 있는 체제의 정비 차원이라고 분석한다.

그동안 남쪽에 끌려가는 듯한 인상을 보였던 남북관계를 숨고르기하면서 체제단속을 하겠다는 얘기다. 북한이 남북관계뿐 아니라 북.중 국경 단속을 대폭 강화하고 중국 주민들의 북한 입국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근식(경남대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이 최근 대외 관계에서 움츠러든 모습을 보이는 것은 4차 6자회담과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새로운 전략짜기의 일환으로 보인다"면서 "북한은 남북 당국 간 회담의 유용성 보다는 체제 생존이 걸린 미국 대통령 선거가 더욱 급선무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남북관계는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정상화가 가능하지만 미국 대통령 선거의 결과는 북한 체제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기에 여기에 대비하겠다는 분석이다.

비료 20만t의 지원은 이미 이뤄졌고 쌀 40만t의 대북지원이 진행 중에 있으며, 일본의 대북지원(식량 25만t, 의약품 1000만달러어치)도 예정돼 있는 점이 남북 회담의 효용성을 떨어지게 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또한 급격한 인플레현상 등 2002년 7.1조치 후유증도 체제 정비의 필요성을 더해준다. 이를 방치할 경우 자칫 체제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중앙일보 / 정용수 기자 2004-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