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사 관심 벌써 식었나

고구려사를 둘러싼 한ㆍ중 간의 갈등은 자칭린(賈慶林) 정협 주석의 방한으로 일단 봉합되었다. 그러나 이 문제가 이로써 해결되었다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중국이 고구려사 왜곡을 중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은 것은 물론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의 원상회복 요구도 거절했다.

합의 사항에는 없지만 내년 교과서에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서술하지는 않겠다는 약속을 받은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한다.

그러나 그럴 계획은 애당초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성과라고 하기는 어렵다.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정부 수립 이전의 역사를 삭제한 것은 다른 나라의 경우에도 동일한 조치를 취했기 때문에 한국이 문제삼기는 어렵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이 조치를 중국의 반발로 해석하지만 중국의 고심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한국이 이렇게 거세게 나오리라고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한ㆍ 중간의 오랜 관계에서 보면 고구려사는 중국에 '물방울 하나' 일지 모르지만 한국에는 민족사의 줄기를 형성하는 거대한 강물이다.

이러한 점을 이해한 중국은 일단 외교적으로 봉합하고 한숨을 돌리며 대책을 강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종의 지연전술이다.

최근 중국은 '냉정히 처리하고 흥분할 필요가 없다(冷處理 不要炸熱)' 는 원칙을 세웠다고 한다. 당분간 중국은 이런 입장에서 '동북공정(東北工程)' 을 수행하고, 그 일환으로 조용히 역사도 연구할 것이다.

고구려사 문제에 관한 중국의 자체 평가도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동북공정이 주변국의 반발을 사서 중국의 고립을 자처한 전략적 오류라는 평가와 고구려사는 한국 고대국가의 하나라는 조선족 역사학자들의 주장도 제기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조짐이 있지만 동북공정을 중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동북공정은 동북지방의 안정화를 목표로 하는 국가 차원의 전략사업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일부를 구성하는 역사연구에 융통성을 발휘할 가능성이 약간 보이는 정도다.

우리 정부는 고구려사 분쟁이 외교 갈등으로 번지는 것을 막았지만 그것으로 손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동북공정의 실체를 파악하게 되었으므로 지속적으로 중국의 태도를 주시하고 외교와 학술 두 차원에서 장기적인 대응책을 수립하고 실천해야 한다.

특히 이번에 합의한 대로 동북지방에서 고구려를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서술한 사회교육용 도서를 배포하는 행위를 중지하도록 촉구하고 그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이다.

외교적으로 봉합되면서 들끓던 언론과 시민의 관심은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다.

언론은 더 이상 고구려사나 동북공정을 중요 사항으로 취급하지 않으며 시민들의 관심도 멀어지고 있다.

중국은 이러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도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 단발적 행동으로 대응하던 시민단체들도 장기 대책을 세우고 실천해야 한다.

고구려를 중국 소수민족의 지방정권으로 설명하고 있는 각종 안내문의 수정 요구는 정부보다 자매관계를 맺은 지방자치단체나 시민단체가 하는 것이 효과적 일 수 있다.

연구를 하지 않고는 중국의 논리에 대항할 수 없으므로 학자 양성이 시급하다. 취약한 연구 기반의 강화는 사회 전체의 몫이다. 이번 사건으로 고구려연구재단을 만들었지만 관심이 사그라들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의구심이 사라 지지 않는다.

그런 의구심이 남아 있는 한, 그리고 학문하는 사람들에 대한 정당한 대우가 보장되지 않는 한 인생을 역사연구에 바치려는 결심을 하기는 쉽지 않다.

중국과의 고구려사 분쟁은 역사가 언제나 흉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줬다. 1500년, 2000년 전의 역사가 국가간의 갈등 요인으로 되살아오는 것이다 .

역사는 결코 과거의 일이 아니며, 또한 민족의 정체성 확립에 도움이 되는 국내용인 동시에 국제용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역사는 갈등의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우의와 평화 구축에 이용될 수도 있다.

본래 도구는 사용하기 나름이다. 한국과 중국은 역사를 평화와 공영(共榮)의 도구로 사용해야 하며 그러려면 과도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민족이 오랜 역사적 시간을 통해 형성된 것이며 국가 역시 흥망성쇠의 길을 걸어온 존재임을 인정하고 국가와 민족의 구성원을 중심에 놓고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가져야 한다.

<안병우 한신대 국사학과 교수>

(매일경제 2004-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