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중국 역사학자 孫進己씨

중국의 쑨진지(孫進己)씨는 선양(瀋陽)동아시아 연구센터 소장으로 있는 70대의 역사학자다. 고구려사를 비롯해 고조선사·발해사 및 중국 동북지역의 정치 경제 민족사를 중화주의의 시각에서 재정립하고 있는 사회과학원의 야심적 프로젝트인 ‘동북공정’에 핵심 이론을 제공하고 있는 중국 역사학계의 실력자다.

가족들이 모두 학자로 이름을 얻고 있으며 동북아 연구에 막강한 사단을 구축하고 있는 그가 제공하는 동북공정 이론의 원형은 제자들에 의해 체계화된다. 30여년에 걸쳐 발표한 방대한 연구 성과도 그의 자랑이다.

중국은 지난 1991년에 선양 동아시아연구센터를 설립해 93년 고구려문화 국제학술토론회를 개최한 이래 10여년간의 연구 끝에 2002년에 동북공정이라는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쑨 소장을 포함해 직원 30명, 겸직연구원 100여명이 근무하고 있는 이 연구소가 발전시킨 논리가 바로 ‘현재의 중국 영토 안에서 이루어진 모든 역사는 중국사’라는 원칙이다.

그러나 그의 연구가 객관성을 인정받고 있다거나 동북아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가 하는 점에서는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역사 계승이 현실적인 국경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는 그의 이론은 전적으로 정치적 관점에서 도출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론은 오늘날 세계 역사학계에서 중시하는 문명발전론과는 상당 부분에서 상치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고구려사에 대한 그의 논리의 핵심은 중국과 남북한의 국경은 지난 1000년의 역사 발전에 따라 형성된 것으로 양측 정부의 조약에 따라 승인된 것인 만큼 이 국경으로 고대 고구려 국토와 거주민들의 귀속이 확정된다는 것이다. 고구려의 대략 3분의 2에 해당하는 영토와 4분의 3 정도되는 인구는 현재 중국의 영토에 있었으므로 중국 역사에 귀속된다는 논리다.

중국은 80년대 이전까지는 고구려를 신라 백제와 함께 한국사에 포함시켜 ‘삼국 시대’로 파악했고 각급 학교 역사 교과서도 이런 관점에 의해 기술했다. 그러나 80년대 들어 하나의 역사를 두 나라가 공유한다는 절충론인 ‘일사양용(一史兩用)’론을 폈다가 90년대에 와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들고 나오며 고구려 귀속 문제를 본격화하고 있다.

이런 논리 아래 고구려의 족원(族源)을 중국 내부에서 궁색하게 찾고 있고 고구려와 중국의 조공 및 책봉 문제를 중국 중앙정부와 지방관의 내부적 정치 질서로 규정하고 있다. 고구려의 대(對)수·당 전쟁도 국제전이 아닌 내전으로 보고 있으며 고구려와 고려의 역사적 계승을 부인하는 등 인위적인 논리를 일사천리로 개발하고 있다.

오늘의 필요에 의해 과거를 재해석하는 이런 방식은 역사를 일관된 공식에다 꿰맞춤으로써 필연적으로 역사 왜곡을 수반하게 마련이다. 고구려의 건국신화가 중국 신화와의 관련성이 희박하다는 것에서부터 고구려가 발전시킨 적성총 문화와 중국 청동기 문화의 무(無)연관성에 이르기까지 문화사에서 지적되는 상당 부분의 문제점을 중국 학자들은 고고학적 증거 없이 정치학적 논술로 대신할 뿐이다.

붓 끝으로 역사를 바꾸려는 사학은 경계돼야 한다. 더구나 그것이 주변국들의 역사를 왜곡하고 긴장을 조성하는 것이라면 중국의 미래에 있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것은 필시 패권적 중화주의로 치닫게 될 것이며 아시아의 갈등과 고통을 확산시킬 것이다. 국제사회에 떠오르는 중국이 새로운 이미지로서가 아니라 주변국들과의 갈등을 야기하는 패권주의적 논리 개발로 내부의 단합을 모색하고 있다면 중국은 국제사회의 존경을 받기 힘들 것이다.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는 2차 대전 중 네 차례에 걸쳐 ‘독일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독일 나치의 편협한 애국심의 폐해를 지적한 그의 글은 독일 점령으로부터 프랑스가 해방된 후 적은 부수로 파리에서 출간되었지만 카뮈와 그의 친구들은 외국에서 출판되는 것을 반대했다. 유럽을 분단하는 프랑스와 독일이라는 국경이 언젠가는 무너져 유럽인들이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아시아에도 논쟁이나 역사전쟁으로 서로를 찢어놓은 일 말고도 다른 할 일이 많다. 지난 12년간의 한·중 관계 개선은 세계가 주목하는 새로운 외교 관계의 모델이라고 한다. 중국의 느닷없는 고구려사의 왜곡으로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중국에 대해 거리감을 갖게 되었는지를 쑨 소장은 인식해야 할 것이다.

(국민일보 / 임순만 논설위원 2004-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