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사 왜곡과 발해사 복원

만주 얘기만 나오면 나는 조심스럽다. 국수주의자라는 낙인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다. 역사주권에서 영토문제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국제정치적으로 패권경쟁을 일으킬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도 한국 역사주권을 무시한 영토의식에서 나오는 패권주의에 기인한다.

최근 중국과 한국 두 나라는 고구려사 왜곡을 ‘정치적’으로 해결한다면서 ‘외교적’으로 봉합하였다. 한국의 중국에 대한 국제정치적 역량이 달리기 때문이다. 세계대국을 꿈꾸는 중국에 한국은 더 이상 경쟁상대가 아니다. 동북공정의 궁극적 의도가 장래 통일 한국을 겨냥한 역사학적 선제논리의 개발에 있었다면, 고구려사 왜곡은 외교적으로 일단 봉합되었지만 불씨는 그대로 남아 있다. 정치적 대응 못지않게 학문적 천착이 필요한 시점이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접하면서 과연 우리의 역사 인식과 교육에 과오가 없었나를 냉철히 반성할 필요가 있다. 발해사에 대한 우리의 소극적 이해가 좋은 보기가 된다.

역사교육의 잘못에 대한 반성

일찌기 단재 신채호 선생은 묘청의 난을 계기로 발해사가 한국사에서 제거되었다고 주장했다. 그에 의하면, “조선의 역사가 원래 낭가의 독립사상과 유가의 사대주의로 분립되어 오다가 갑자기 묘청이 불교도로서 낭가의 이상을 실현하려하다가 그 거동이 너무 이치에 맞지 않고 망령되어 패망하고 마침내 사대주의자의 천하가 되었다.” 김부식의 축소지향적 역사서술에서 드러나듯, 고구려의 기상을 이어받으려한 고려 시대에 역설적으로 한민족의 무대에서 만주의 상실이 이루어졌다는 얘기다.

발해가 고구려의 적법한 후계자라는 사실은 주민구성과 주권행사의 면에서 볼 때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발해사를 홀대하고 있다. 통일신라라는 역사관아래 발해를 서자 취급해 왔다.

발해사 복원이 필요하다. 한국사에서 신라와 발해를 동등하게 취급해야 한다. 신라는 통일신라라기보다 후기신라로서 발해와 함께 남북국 일원에 불과하지 않은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후삼국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전삼국에 대한 것이 아니라 남국으로서의 신라의 후삼국이라고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

이를 북한학계의 통설이라 하여 굳이 기피할 이유가 없다. 중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발해사를 한국사에서 떼어버렸다. 고구려사 왜곡도 같은 문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고려에 의한 재통일이 신라에 의해 통합된 한민족이라는 지배적 ‘에스니(族)’에 토대를 둠으로써 결국 발해의 멸망과 함께 우리 역사에서 국가의 영토적 중심을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한반도에 국한시키는 고정관념을 뿌리내리게 한 계기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발해사에 대한 적극적 관심이야 말로 한국사의 기본 줄기로서 고구려사를 지키는 첩경이 아닐 수 없다.

흥미롭게도 중국인들은 송대에 중화의식을 내재화시켰고, 일본인들은 동아시아에 대한 천하관을 도꾸가와 시기에 발현시켰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묘청의 난을 계기로 오히려 한반도라는 무대로 세계관이 축소되는 역설적 현상이 나타났다.

오늘의 중국과 일본을 보라. 중국은 ‘중화민족의 多元一體’란 개념을 통해 중국민족을 단순한 복수민족으로 보지 않고 한족을 포함하는 56개 에스니의 통합을 시도하고 있다. 중국이 과거 경험한 주변민족에 의한 침탈조차도 자기 역사의 일부로 파악하고 있는 실정이다. 원이나 청은 이민족의 왕조가 아니라 중국 자체 역사로 흡수되어 있다. 일본 또한 임나일본부의 합리화를 통해 한반도의 남부를 자신의 영역으로 간주하는 인식을 전혀 수정하지 않고 있다.

과거 잃으면 미래 보장할 수 없어

이는 중국이나 일본이 공히 그들의 민족형성과 국가건설의 역학을 동아시아 지역을 모두 포괄하는 통합주의(holism) 시각으로 해석하고 설명하려는 의도의 결과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한반도에 국한하여 분리주의 시각으로 한국사를 다루어 오고 있다. 우리 역사 인식과 교육에서 과거 한국의 역사를 동아사아에서 중국과 일본과 연계하는 통합사관을 통해 원근법적으로 조명하지 않는 한 우리는 중국이나 일본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역사 조작의 공세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역사학자 카(Carr)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로서 역사를 본다. 현재가 과거에 의해 규정되듯, 과거는 현재에 의해 조명된다. 역사주권 논의에서 과거를 잃으면 현재는 부정되고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 고구려사 왜곡은 중국으로부터 발단되었지만, 우리 역사 교육과 인식에서 나타나는 시대구분과 접근방법에도 잘못이 있다.

<임현진 서울대학교 교수 사회학>

(내일신문 2004-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