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마리 용`

`용 용(龍)'자 두 개를 나란히 늘어놓으면 무슨 글자가 될까. 물론 `용용'은 아니다. 옥편을 뒤져보자. `나는 용 답'자로 되어 있다. 날아다니는 용을 의미하는 글자다. `두려워할 답'자도 되는 것으로 나와 있다. 용은 한 마리가 나타나도 무섭다. 두 마리가 날아다니며 설쳐대면 두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용 용'자가 위에 한 개, 밑에 두 개가 있으면 무슨 글자일까. 역시 옥편을 찾아보자. `용이 가는 모양 답'이라고 나와 있다. 어려운 글자다.

그러면 `용 용'자가 위에 두 개, 밑에 두 개, 모두 네 개가 있으면 무슨 글자가 될까. `말많을 절'자다. 용 네 마리가 모여서 떠들어대면 무척 시끄러울 것이다. 먹이다툼이라도 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용 용'자 8개를 나열한 문장도 있다고 한다. `용용용용용용용용'이다. `용'이 `용'다워야 `용'을 `용'이라고 할 수 있지, `용'이 `용'답지 못하면 `용'을 `용'이라고 할 수 없다는 뜻이라고 한다. 어디선가 읽었던 글이다.

`용 두 마리'가 `아테네올림픽'에서 마침내 발톱을 치켜세웠다. 거대한 실체를 드러냈다. 중국과 일본이다. 중국은 미국의 콧등까지 치솟았다. 금메달 3개 차이로 뛰어올랐다. 4년 후에는 머리를 타고 넘을 기세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골드플랜'이라는 것을 시작한지 불과 몇 년만에 스포츠강국이 되었다. 금메달을 16개나 가져갔다. 세계를 놀라게 했다.

스포츠뿐이라면 별 문제가 없다. 져도 그만이다. 하지만 정치, 경제, 군사가 모두 부상하고 있으면 문제가 달라진다. 걱정스러운 것이다.

중국의 경제는 어느새 미국을 따라잡고 있다. 구매력을 기준으로 하면 벌써 세계 2위가 되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우리를 우습게 보기 시작했다. 일본은 불황의 터널을 떨쳐냈다. 해외로 나갔던 일본기업들이 조국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한다. 자신감을 되찾고 있는 것이다. 올림픽 성적과 경제력은 비례한다고 했다. 아테네올림픽은 `두려워할 답'자가 우리 앞에 본격적으로 닥쳤음을 보여준 것이다. 두 나라가 다 우리에게는 이른바 `경쟁국'이 아닌가.

`두 마리 용'은 그동안 발톱을 날카롭게 갈아왔다. 이제는 우리를 조각조각 찢으려하고 있다. 한 마리는 고구려를 찢고, 북한까지 할퀴려하고 있다. 서해의 바닷물도 삼키려하고 있다. 또 한 마리는 독도를 낚아채고 내친김에 동해까지 마시려하고 있다. 중국이 이른바 `동북공정'이란 것을 하자 일본도 기다렸다는 듯이 교과서를 뜯어고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자리를 내놓으라며 으르렁거리고 있다. 중국은 어림도 없다며 반대하고 있다.

용은 두 마리가 더 있다. `기존의 거대한 용'은 새로 떠오른 `두 마리 용'을 노려보고 있다. 아니꼽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남의 먹이를 넘보지 말라고 발톱을 치켜들고 있다. 기득권을 놓칠 수는 없는 것이다. 주둔군을 옮길 테니 땅을 내라고 했다. 이전비용도 부담하라고 했다. 외국에 파병도 하라고 했다. 수틀리면 철수한다며 겁도 주고 있다. `종주국' 행세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한 마리 용'은 요즘 힘이 약간 빠졌다. 그렇다고 먹이다툼에서 뒤질 만큼 힘이 빠진 것은 아니다. 못 먹을 밥에 재도 뿌리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기본실력만큼은 갖추고 있다. 올림픽 메달 숫자로는 여전히 중국을 눌렀다. 광대한 땅에서 나오는 자원을 바탕으로 언제라도 용트림을 칠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주위에는 이 `네 마리 용'이 꿈틀대고 있다. `말많을 절'자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글자그대로 `용용용용'이다. 우리는 `말많을 절'자의 한가운데에서 움츠리고 있다. `네 마리 용'이 사방에서 한 마디씩만 해도 귀를 틀어막지 않을 재간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말많을 절'자의 틈바구니에서 집안싸움만 하고 있다.

<김영인 월드캐피탈코리아 감사ㆍ객원논설위원>

(디지털타임스 2004-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