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의 의제 선정에는 ‘뭔가’가 있다

‘주류교체’ 목표 분명 … 지지도 받쳐주지 않으면 저항 직면

국가보안법 폐지를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의 의제 설정과 운영 방식에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물관에 보내야 할 유물’(국가보안법 폐지), ‘정권의 명운을 걸고…’(행정수도 이전) 등 극단적인 표현을 구사한 특유의 ‘고강도 화법’도 늘 화제를 끌지만, 갈등요소를 안고 있는 의제를 중심 아젠다로 설정함으로써 사회를 ‘지지층’과 ‘반대층’으로 갈라버리는 것.

탄핵에서 돌아온 후 제기된 일련의 의제, 행정수도 문제, 과거사 청산, 국가보안법 철폐 등이 모두 이에 해당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참여정부 출범부터 시작된 메이저 신문과의 싸움도 같은 범주에 속한다.

때문에 노 대통령 뒤에 따라다니는 꼬리표도 ‘갈등의 리더십’ ‘역사적 소명의식’이라는 식으로 극단적으로 나뉜다.

◆ “첫번째 키워드는 ‘대의’” = 이런 노 대통령의 문제제기에는 분명한 흐름이 발견된다. ‘개혁적 요소’ ‘역사의식’이 바닥에 깔려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청와대 윤태영 제1부속실장은 <청와대 브리핑>의 ‘국정일기’를 통해 “노 대통령을 보는 몇가지 키워드가 있는 데 그 첫 번째 키워드가 ‘대의’, 다른 말로 표현하면 ‘역사의 흐름’이고, 쉬운 말로 표현하면 ‘상식’이다”고 정의했다.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에 비판적인 윤여준 전 한나라당 의원도 일전 사적에서 “노 대통령에게서 개혁에 대한 소명의식 같은 게 보인다” “과거사 청산에 대한 문제의식은 옳다. 그 이면에는 감각적인 수준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의 역사인식이 깔려 있는 것 같다”고 평가한 바 있다.

물론 정치적 입장에 따라 전혀 다른 평가가 나올 수 있지만, 어쨌건 노 대통령이 선정하는 의제에 ‘개혁’ ‘역사인식’이 깔려 있다는 점은 대체로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 “주류 교체돼야 진정한 정권교체” = 뿐만 아니라 노 대통령의 의제선정에는 분명한 지향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류의 교체’가 바로 그것이다.

여론조사 전문가인 안부근 미디어리서치 고문은 “노 대통령의 언행을 하나하나 짚어보면 주류교체라는 메시지가 강하다”고 분석했다. 그동안 한국사회를 이끌어 온 ‘주도세력’을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인식에는 여당 관계자들도 상당수 동의한다.

열린우리당의 모 초선의원은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는 ‘기존 기득권 해체’라는 목표가 전제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DJ의 집권으로 정권교체가 됐지만 그후에도 우리 사회의 주류가 바뀌지는 않았다”며 “짧게는 50년, 길게는 일제시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주류가 바뀔 때 진정한 정권교체가 이뤄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노 대통령이 선정한 의제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주류교체’라는 목표의식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행정수도 이전’은 ‘수도권과 지방의 균형발전’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서울 강남으로 대변되는 기존의 기득권 세력에 대한 공세적 의미가 읽힌다.

‘과거사 청산’은 ‘미래로 가기 위해 왜곡된 과거를 극복하자’는 의미도 있지만, 역시 ‘역사적으로 기득권이 형성되어 온 과정을 바로잡자’는 공세적 의도가 엿보인다.

‘국가보안법 철폐’도 예외가 아니다.

사실 노 대통령의 의제에 ‘갈등적 요소’가 돋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근본을 위협당하는 기존 주도세력의 반발은 당연하고, 결국 정책에 대한 ‘지지’ ‘반대’ 정도가 아니라 ‘죽느냐’ ‘죽이느냐’의 싸움으로 뒤바뀌는 것이다.

◆ 지지자를 위한 정치 = 이같은 노 대통령의 ‘갈등적 의제’ 선정과 추진은 특유의 리더십과 맞물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노 대통령만큼 리더십 문제가 도마에 오른 대통령도 없었지만, 사실 노 대통령만큼 리더십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도 드물다는 게 주변 측근들의 평가다. 2기 청와대에 리더십 비서관을 둔 것도 그런 고민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리더십은 ‘통합’과 ‘조화’를 추구한 전통적인 국가원수의 리더십과 궤를 달리한다.

이와 관련, 참여정부 초기 청와대에 근무한 바 있는 한 인사는 “노 대통령의 리더십은 ‘펠로우십 리더십(fellowship leadership)’”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자기편은 열광하게 하고, 반대편은 자극하는 방식의 리더십을 구사한다’는 것이다.

청와대에 근무하는 한 측근도 “‘지지자를 위한 정치’를 할 시기가 되었고, 노 대통령이 ‘지지자를 위한 정치’를 한다는 것도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라며 “열광적인 지지층의 지지가 추진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 정치공학적으로는 도움 안돼 = 그러나 노 대통령의 의제선정과 이를 추진하는 리더십이 정치공학적으로는 노 대통령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이 선정하는 의제에 ‘개혁적 요소’와 ‘역사인식’이 깔려있다는 것을 국민들의 상당수가 인정하면서도 지지도로 받쳐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문제인식의 올바름에도 불구하고 의도가 너무 드러났기 때문’(윤여준 전 의원)이든지, ‘대통령이 갈등적 의제의 전면에 나섬으로써 다수를 적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DJ 시절 청와대 정무수석실에 근무한 한 인사)이든지 간에 국민의 지지가 뒤에서 받쳐주지 않으면 정책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와 관련, 한길리서치 홍형식 소장은 “지지도가 50%를 넘으면 갈등적 요소가 있는 의제도 무난하게 정리되지만, 지지도가 30%를 밑돌면 아무리 ‘의미있는’ 의제도 거센 저항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내일신문 / 남봉우 기자 2004-9-9)

盧대통령의 분야별 발언요지

노무현 대통령은 5일 밤 MBC TV 시사 프로그램 ‘시사매거진 2580’ 에 출연, 국가보안법 폐기를 역설하는 한편 경제활성화 대책, 부동산 정책, 4차 북핵 6자회담 등 국정 전반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노 대통령은 과거사진상규명, 경제위기론, 행정수도 건설 등 쟁점 현안에 대해서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밀고 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 경제

노무현 대통령은 부동산 가격과 관련, “현재 수준에서 안정시키는 것이 제일 좋다”며 “현재 금리, 물가수준 이상으로 절대 오르지 못하도록 묶는다는 게 정부의 확고한 방침이며, 부동산 가격은 내리지 않게 하는 것이 좋다”고 밝혔다.

경제위기론과 참여정부 경제기조 비판에는 적극 대응했다. 노 대통령은 “올해 우리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성장률이 거의 1위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며 단기부양책 반대 입장을 재확인했다. 노 대통령은 “진단이 정확하지 않으면 아직 혈압이 140밖에 안되는데 무리하게 혈압 강하제를 놓게 돼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책의 일관성 부족, 불확실성, 반기업 정서가 투자를 가로막는다’는 지적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노 대통령은 반기업 정서와 관련, “근거없는 얘기”라며 “설사 국민들 사이에 반기업 정서가 있다 하더라도 대통령이나 정부가 만들었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노 대통령은 “기업하는 사람들에게 불편한 제도를 만든 것이 하나 있다면 집단소송제”라며 “출자총액제한 때문에 투자가 안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 이미 여러 연구기관에서도 나와 있다”고 출자총액제한제도 고수 방침도 분명히 했다.

노 대통령은 “국민여론이 경제가 어렵다고 막 정부를 몰아칠 때 (기업이) 이 정책에서 정부를 굴복하게 만들려는 것”이라고 재계의 불만을 일축했다.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는 큰 흐름에서 가장 일관성을 가진 정부”라며 “저는 강력한 성장정책을 쓰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그 효과는 참여정부 말년 또는 다음 정부 때 나타날 것”이라며 장기적인 체질 강화에 주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 외교-안보

북핵 6자회담에 대해 “미국 대선이 있는 동안은 문제가 좀 더디게 진행될 것으로 본다”며 “당분간 북핵 6자회담은 크게 빠르게 진전될 것으로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전망했다. 노 대통령은 “선거를 앞두고 이런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나라도 없거니와 선거를 앞둔 상대방하고 협상을 끝내려는 일도 없다”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한미관계에 대해 “한미관계가 많이 달라지고 있다”며 “한국 정부가 미국에 대해 할 말을 좀 하는 편이다. 미국도 크게 놀라지 않고 잘 조정해 가고 있다”고 말했다. 더욱이 “이대로 5년, 10년 가면 한국은 미국과 적어도 국제사회에서 완전히 대등한 자주국가의 역량을 갖출 것”이라고 예상했다. 주한미군 재배치와 관련해서도 “미국 스스로의 전략이지만, 그것은 한국에 나쁘지 않는 변화”라며 “남에게 의지하는 것은 습관이 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 과거사

경제침체 등을 들어 과거사 진상규명의 적절성을 문제삼는 데 대해 정면대응했다. 노 대통령은 “초등학교 취학연령이 된 아이를 ‘경제가 좋아지면 가자’고 2, 3년 늦춰서 11세 때 학교에 보내야 합니까”라고 반문했다.

과거사 규명의 정치적 배경 논란에도 “순수성이 의심스럽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며 “해야 될 일이라면 의심스러운 사람이 하더라도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특히 “의심스럽지 않은 사람이 언제 나타나겠느냐”고 반문했다. 노 대통령은 “국가가 저지른 과오를 사죄할 건 사죄하고, 다시 하지 않겠다고 맹세를 할 때 그 국가가 바로 서고 국민들이 그 국가 목표에 동참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해서도 노 대통령은 “지난 연말 국회 통과에서도 토론이 많았고,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다른 법보다 신중하게 다뤄졌다”며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재확인했다.

언론개혁과 관련해서도 “이젠 정치권력과 언론에 서로 봐주기 같은 것은 없어졌다.

상호간에 유착관계, 뒷거래가 완전히 없어졌다”고 참여정부의 언론정책을 높이 자평했다.

(세계일보 / 박창억 기자 2004-9-6)

盧, "혁신우수부처에 인사·예산권자율권"

盧대통령, 혁신사례 차관급 학습토론회

노무현대통령은 4일 “앞으로 혁신 실적이 우수한 부처나 기관부터 우선적으로 인사나 예산상 자율권을 부여하겠다”고 밝혔다.

노대통령은 이날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혁신사례 차관급 학습토론회에서 “부처마다 개혁하고 혁신할 사항을 스스로 정리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업무는 없는지 점검하라”고 지시했다고 김만수 청와대 부대변인이 전했다.

또 “인사제도의 혁신을 위해 범정부적인 차원에서 인사제도의 혁신추진체계를 운영하고 분야별로 혁신추진체계를 갖출 것”을 지시했다.

노대통령은 “아직은 불안하고 답답하지만 희망이 보인다.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고 하나둘 정부 내에서 성공모델이 나오고 있다”며 “이런 성공사례를 부처간 서로 교환하고 학습하고 발전시켜 나간다면 틀림없이 정부혁신은 성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원일보 2004-9-5)

[노대통령 경제인식·해법] “성장=분배”…신중한 우향우

노무현 대통령이 5일 밤 MBC '시사매거진 2580'과 가진 대담은 대통령의 경제 인식과 해법이 불과 수개월 만에 적지 않게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여전히 위기 과장론을 얘기했지만 '경제 낙관론'을 접었을 뿐 아니라 부동산 정책, 소비 진작책 등 곳곳에서 '신중한 우향 우' 행보가 감지됐다.

◇ 경제 시각 비관적으로 바뀌어 = 노 대통령은 이날도 경제 위기 과장론의 위험성을 되풀이했다. 노 대통령은 올 예상성장률 수치 5.2%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비교했는데, 한국이 1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경제 위기론은 과장됐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지난 5월 직무 복귀 후 개혁을 저지하기 위한 위기조장론으로 재계와 언론에 대해 경고장을 보내던 것에 비하면 강도가 상당히 약해진 느낌이다. 내수 회복 기미가 좀체 보이지 않으면서 그만큼 대통령의 경제를 보는 시각이 '비관적'으로 바뀌었음을 방증한다.

노 대통령은 실제 6월 17대 국회 개원연설 때만 해도 "임기 중 내내 6% 성장 달성"을 자신했지만 이날은 '수출과 내수의 괴리'가 한국 경제가 당면한 최대 문제라고 강조했다.

◇ 서민경제 강조…해법엔 변화 = 경제 인식이 달라진 만큼 해법도 달라졌다. 노 대통령은 "경제가 성장하지 않고 제자리 걸음일 때 제일 어려운 사람은 역시 서민"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서민이 경제 대책의 중심에 있지만 해법에선 과거 '성장과 분배의 동시추구'에서 '성장이 곧 분배'로 돌아선 것이다.

특히 그는"세금을 거둬 나눠주는 것으론 한계가 있다"고 말해 정책의 변화를 분명히 했다. 추경 편성을 통한 재정지출에서 한 발 나아가 최근 당정이 소득세 인하, 특소세 폐지 등 고소득층에 유리한 적극적 감세로 돌아선 배경을 설명한 대목이다. 100명 중 35명에 달하는 자영업자들이 먹고 살려면 결국 누군가 돈을 써야 하는데, 고소득층의 지갑을 열게 해 소비 분위기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 "집값 더 떨어뜨리지는 않겠다" = 대통령은 집값을 현 수준에서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지난달 24일 국무회의에서는 "다른 정책을 희생해서라도 집값만은 잡겠다"고 말해 이헌재 부총리가 밀어붙이는 건설경기 부양책에 제동이 걸린 게 아니냐는 시각이 우세했다. 하지만 이날 발언을 통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집값만 잡는 쪽으로 다시 '유턴'하지 않을 것임을 내비쳤다.

노 대통령도 부동산값이 지나치게 하락할 경우 금융권의 부실대출 문제 및 역전세난 등 파장이 만만찮을 것이라는 현실에 대해서도 인식을 분명히 했다.

노 대통령이 이런 문제점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이에 따라 이달 중순께 발표될 내년의 부동산 보유세제 도입 방향도 이런 기조에서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이밖에 "노조가 강경해 보이는 것은 몇몇 대기업의 강한 노조 때문"이라고 대기업 강성노조에 대해 일침을 가하는 등 곳곳에서 현실을 감안한 '시장친화주의'를 보였지만 재계가 주장하는 출자총액제한제도 조기 폐지 등에는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재계를 겨냥, "반기업 정서는 근거 없다" "출자총액제도 때문에 투자 안되는 게 아니라는 것은 여러 연구 결과에서 나와 있다"는 등 시장 개혁에 대한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국민일보 / 손영옥기자 2004-9-5)

노대통령 `국보법 폐기' 정리 배경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5일 정치권과 법조계에서 `핫 이슈'로 부각된 국가보안법 개폐문제에 대해 `폐기'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나서 그 배경과 파장이 주목된다.

노 대통령은 이날 저녁 MBC `시사매거진 2580'이 500회 특집을 기념해 가진 `대통령에게 듣는다' 특별대담프로에서 사문화된 현행 국가보안법 폐기를 촉구하면서 현행 형법 보완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는 쟁점 현안에 대한 단순한 판단이나 정책결정 차원이 아니라 노 대통령의 역사관과 시국관, 철학을 총체적으로 반영한 것이라는데 이론이 없다.

최근 친일과 과거사 규명 등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역사바로세우기 작업과 맥이 닿아있는게 아니냐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을 너무 법리적으로 볼게 아니라 역사의 결단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은 노 대통령의 역사 인식을 상징적으로 대변한다는 시각도 엄존한다.

이런 인식은 우리 위정자들이 비록 국가안정을 명분으로 국가보안법 유지를 주장해 왔지만 실제 우리 역사에서 어떤 영향을 끼쳤고, 어떤 기능을 했는지를 살펴보면 보안법은 당연히 폐기해야 옳다는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 노 대통령은 이날 대담에서 "보안법은 대체로 국가를 위태롭게 한 사람들을 처벌한게 아니라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을 탄압하는데 압도적으로 많이 쓰여왔다"며 "이것은 한국의 부끄러운 역사의 일부분"이라고 강조, 이같은 인식을 선명하게드러냈다.

물론 이미 사문화된 국가보안법을 개정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 수도 있었겠지만 노 대통령이 폐기쪽으로 최종 가닥을 잡은 것은 개혁과 도덕성을 캐치프레이즈로내건 참여정부의 명분과 철학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다시말해 국가보안법을 개정, 독소조항을 폐기하고 아직도 시대적으로 유의미한 일부 조항을 살리는 쪽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굳이 폐기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은 노 대통령의 향후 국정운영 방향과도 무관치 않다는 해석도 있다.

국가보안법을 개정해 내용을 보완하는 것이나, 보안법을 전면 폐기하고 일부 조항을 형법에 보완하는 것이나 효과는 별반 차이가 없겠지만 노 대통령은 폐기에 따르는 정치적 상징성을 우선적으로 감안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일각에선 국가보안법 개폐를 둘러싼 여당 내부의 혼선을 정리, 참여정부가 추진중인 과거사 규명과 개혁, 정부혁신 작업에 추동력을 확보하려는 의미도 함축하고있을 것으로 분석한다.

노 대통령은 그러나 국가보안법 폐지 입장을 분명히 했지만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여론몰이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는게 청와대측의 설명이다. 전적으로 국회와 여야 정당의 논의와 협의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물론 청와대는 정치권이 보안법 존치 쪽으로 결론을 낼 경우 이를 수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기고 있다.

지난번 아파트 분양가 공개 문제가 쟁점화됐을 때 노 대통령의 소신은 비공개였지만 열린우리당이 이견을 보이자 `부분 공개'쪽으로 가닥을 잡았던 사례가 원용될수 있다는게 청와대측 설명이다.

노 대통령은 결국 국가보안법 폐지가 시대의 소명으로 판단하고 있고, 정치권이 폐기쪽으로 방향을 잡아주길 희망하고 있지만, 여야 정치인을 포함한 우리 사회가 반대할 경우 신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제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는 전적으로 국회와 정치권의 몫으로 넘어간 형국이다.

(연합뉴스 / 조복래 기자 2004-9-5)

국보법 폐지와 남북문제의 함수관계

정부가 국가보안법 폐지 입장을 분명히 함에 따라 향후 남북관계에 미칠 상관관계가 새삼 주목된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5일 MBC `시사매거진 2580' 특별대담에서 "독재시대의 낡은 유물인 국가보안법을 폐기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밝힌 데 이어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은 6일 기자간담회에서 "정부 입장은 국가보안법을 폐지한다는 것"이라고 확인했다.

그동안 정부 일각과 일부 사회단체는 권위주의 시대 인권과 민주화 탄압의 상징이 되다시피한 국보법에 대한 개.폐문제를 고민해 왔고 이를 통해 남북정상회담 이후 변화하는 남북관계와 괴리를 메우는 효과도 있을 것으로 내심 기대해 왔다.

그러나 이번 정부 방침은 남북관계 진전을 염두에 두기보다는 우리 사회 내부적인 수요에 따라 법을 손질한다는 원칙에 입각해 있다는 것이 정부측 공식 설명이다.

정동영 장관은 국보법 폐지 입장을 '국민적 요구에 따른 내부적 문제'로 규정하고 북측의 남북 당국간 대화 재개와 연계 시사에 대해 "우리 내부문제인데 대화와 연계시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확연하게 선을 그었다.

앞서 북한의 민족화해협의회는 4일 대변인 담화를 통해 "남조선 당국이 진실로 대화 재개를 바라고 통일에 관심이 있다면 시기타령이나 하면서 앉아 기다릴 것이 아니라 민족적 화해와 단합을 가로막는 보안법을 철폐하는 용단을 내려야 할 것"이 라고 주장했다.

정부 당국자는 "북측은 회담을 연기하거나 미룰 때마다 남측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하고 국보법 폐지 주장을 차단봉으로 삼아왔다"며 "북측도 대통령의 언급에 적잖이 당황스러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실 정부는 국보법을 폐기하겠다는 쪽으로 입장이 정리된 것이 경색국면의 남 북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다.

통일부 당국자는 "대통령의 발언이 북측을 고려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북측에 주는 메시지가 되지 않겠느냐"며 "북한도 남북관계 재개에 대해 고민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합뉴스 / 장용훈 기자 2004-9-6)

"세종 꿈꿨는데 태종 역할밖에…"

친일 행적 등 과거사 규명을 둘러싼 논란으로 정국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일단 공은 국회로 넘어가 있는 모양새다. 하지만 과거사 진상규명특위를 제안해 이 정국을 점화한 당사자는 노무현 대통령이다. 노 대통령의 '역사 정리'에 대한 의지는 일과성이 아니라 확고해 보인다는 게 청와대 핵심 참모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노 대통령은 최근 청와대 참모들에게 "나는 세종이 되고 싶었는데 태종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인가 보다"고 토로를 한다고 한다. 지난해 "새 시대의 장남이 되고 싶었는데 구시대의 막내 역할에 머무를 것 같다"고 했던 발언의 연장선상이기도 하다. 태평성대를 구가했던 세종보다는 '왕자의 난'을 겪으며 조선조 초반을 정리하고 넘어갔던 태종 때의 상황을 염두에 둔 듯하다.

그러면서 노 대통령은 한 회의에서 '역사 정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고 참석했던 한 참모가 전했다.

"역사 정리의 토대는 참여정부에서 가능해질 것이다.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야당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던 시절 나는 상도동.동교동이 함께 정치의 주류가 돼 역사의 물줄기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염원했다. 6월 항쟁 때문에 나는 정치를 시작했다. 그러나 3당 합당으로 역사는 다시 왜곡됐다. 제대로 된 역사라면 어떻게 김종필(JP) 총재가 YS 정부의 권력 전면에 나설 수 있었겠느냐. 민주화의 많은 진전을 가져온 DJ 정부도 DJP연합으로 근본적 문제 제기엔 한계가 있었다. 참여정부는 그런 조건에서 자유로워졌다. 국가 기관들도 이제 고백을 할 수 있게 된 것 아니냐."

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전에도 "훌륭한 정치 지도자의 3대 요건은 역사의식과 권력 장악 능력, 살림살이 솜씨"라며 "YS는 권력 장악에는 탁월했지만 그로 말미암아 청산해야 할 이 땅의 기회주의가 다시 때를 만났기 때문에 그를 지도자로 부르는 데 동의할 수 없다"고 했었다.

한 핵심 참모는 "노 대통령은 산업화를 이룬 박정희 정권과 민주화의 진전을 가져온 양 김 시대 모두 역사 정리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판단한다"며 "크게 보아 제3기인 현 정부가 바로 역사 정리의 적기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총선 결과 과반 여당의 탄생으로 입법과 제도적 접근을 추진할 흐름이 만들어진 것도 노 대통령의 결심을 앞당긴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경제 활성화와 역사 정리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도 노 대통령의 생각은 단호한 듯하다. 노 대통령은 한 회의석상에서 "박정희 정부 때도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으로 소득 1000달러 시대에 대비한 장기적 토대를 구축했었다"고 말했다. 이어 "소득 1만달러 시대의 분기점을 넘어선 지금도 2만달러 선진시대에 대비한 역사 정리로 질적 업그레이드의 사회적 토대를 구축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요즘 "과거사 규명은 대통령 후보 이전부터 염두에 두어 온 것이며 최근의 야당을 겨냥한 게 아니다"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또 "처벌에는 시효가 있지만 진실을 밝히는 데는 시효가 없다" "질서있게 지혜를 모아나가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야당은 여전히 '정치적 의도'에 대한 의구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여권의 한 고위 당국자조차 "시민단체 관계자를 만나보니 이 정국의 끝에 대한 불안감을 감출 수 없다"고 할 정도의 분위기다. 무엇보다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해 달라는 것은 여권 전체가 명심해야 할 국민의 주문이기도 하다.

(중앙일보 / 최훈 기자 2004-8-24)

노대통령 "공무원 다잡기 직접 나서겠다"

`정책사례분석 토론회' 참석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21일 "일상적 국정운영은 국무총리가 관장하겠지만, 공무원들의 자세와 각오를 다잡는 일에는 앞으로도 대통령이 직접 나서겠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정부중앙청사 별관에서 장.차관급 공무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정책사례분석 토론회'에서 이같이 말하고, "진정한 의미의 공직사회 혁신을 위해 본질적인 고민을 해달라"고 당부했다고 김종민(金鍾民)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노 대통령은 "공무원들은 오늘의 한국경제를 여기까지 이끌어온 게 공무원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며 "그러나 지금 우리가 일등 국가인지, 공무원이 일류인지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근본을 고쳐야 하며, 조직을 혁신하는 것은 리더"라며 "장관들이 앞장서야 하며 장관들이 앞장서지 않으면 공직사회의 변화는 이뤄지지 않는다"고 주문했다.

노 대통령은 또한 "공무원을 신뢰할 것은 신뢰하되, 타성에 끌려가지 않도록 장관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며 "새로운 과제, 아이디어, 지식, 정보를 끊임없이 던지면서 공직사회의 활력을 높여주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앞서 노 대통령은 인사말에서 "참여정부가 여러가지 목표를 내걸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을 다시 정비하는 것"이라며 "정책이 생산되는 행정시스템의 기본을 잘 정비하는 게 정부의 큰 목표"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국가 시스템, 정부행정 시스템이 대체로 잘 돼있고 잘 운영되고 있지만, 많은 부분에 있어 다시 손질해야 할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또 변화가 빠르기 때문에 빨리 거기에 맞춰 다시 조정해야 할 일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노 대통령은 "문제의식을 갖고 끊임없이 문제를 발굴하고 대안을 찾아 시정해 나가야 할 것"이라며 "잘되고 있는 일이라도 최적의 프로세스, 제도, 절차인 지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더 효율적이고 합리적 방법을 찾아나가는 문제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노 대통령은 이날 토론 주제와 관련, "조금 더 강하고 자극적인 주제가 있었는데 실무 과정에서 빠진 것 같고 대체로 원만한 주제를 뽑은 것 같다"며 "그러나 대통령으로서 불만이 있다면 불만이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원전센터 문제, 화물연대 대응 등이 토론 주제에서 제외됐음을 지적하고, "정책 실패사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거기서 교훈을 찾는 근본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마이뉴스 2004-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