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에 앞서는 자괴감

요즈음 나는 역사책에 푹 빠져 산다. 특히 고구려에 대해 알고 싶은데, 교과서를 뛰어넘는, 진정 역사의 진실을 알려줄 책을 애타게 찾아다닌다. 중국이 왜 고구려를 자기 역사라고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식으로 나오는지 나는 잘 모른다. 뭐 남북통일 이후의 조선족 문제나 신패권주의 운운하지만 그것도 감이 잘 안 온다. 하지만 그들의 최대의 문제점은 ‘학문’, 즉 진실마저도 정치적으로 왜곡하려는 얄팍한 술수라는 것은 안다. 이는 몇천년 동안 침묵했던 그들의 조상들조차도 모두 바보로 만들어 버리는 자가당착적인 행동이다.

고구려를 들여다볼수록 우리 역사에서 위대한 한 부분이었다고 느껴진다. 중원 한가운데 당당히 세워진 광개토대왕비, 해발 5천m에 육박하는 파미르 고원을 넘어 서역을 정벌한 고선지와 같은 인물을 탄생시킨 민족. 하지만 너무나 허무하게 홀연히 사라진 나라. 그들을 알아 갈수록 가슴이 울렁이면서 수수께끼 속으로 들어간다. 세계에는 위대한 문명을 이루고도 갑자기 사라진 불가사의한 민족의 이야기가 많다. 고구려도 그 못지않은 신화적 존재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동안 우리의 역사교육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전혀 토를 달 수 없는 교과서 외우기식 역사교육 현장에서 건전한 비판은 애초에 기대조차 할 수 없었다. 역사란 살아 숨쉬는 것인데, 하나의 틀에 고정시켜 놓고 빗장을 채웠으니 그동안 우리가 배운 건 역사의 정체성밖에 없었다. 내가 다시 공부를 시작한 이유는 이렇게 흘러간 내 학창시절을 찾고 싶은 마음에서다.

지금 중국은 소리 없는 전쟁을 걸어오고 있는데 우리는 대항할 무기조차 변변히 갖추지 못하고 있다. 외부 지원은 바라볼 수도 없는 처지다. 그런데 우리 정부를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역설적으로 우리 정부는 참 좋은 정부다. 국민들이 치매에 걸리지 않도록 잠시도 머리를 가만히 놓아주지 않는다. 치안, 보건, 역사, 경제, 정치 등을 막론하고, 살려면 그리고 속지 않으려면 ‘너 알아서 하라’는 방식이다. 정부나 학자들의 말을 믿을 수 없어 내 스스로 알아가는 지식에 위안을 삼아야 할까. 답답하다.

<백강화/광주 북구 문흥동>

(한겨레신문 2004-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