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사 왜곡과 우리

중국이 고구려사를 왜곡하고 나섰다. 고구려를 건드리다가 수나라(양제)가 망하고, 당 태종이 혼났다. 그래서 그들이 날뛰는 것일까? 아니다. 그 빌미를 우리가 주고 있다.

본디 우리나라 이름은 ‘한나라’다. ‘한’은 ‘크다’는 뜻이고, ‘나’는 ‘땅’, ‘라’는 땅이름에 붙어 쓰이는 말조각이다. 그러니 ‘큰땅’이다. 만주뿐 아니라 중국 대륙에도 뻗쳤고, 일본 규슈 ‘가라쿠니다케’(韓國岳), ‘가라후토’(사할린)의 ‘가라’가 ‘한나라’고, ‘쓰시마’(두 섬)도 우리말이다.

한글이 없을 때 ‘한’의 소리를 ‘韓’으로 적고, ‘나라’를 뜻으로 ‘國’을 썼을 뿐이다. 그래서 중국 <서경>(상서) 11권에 “… <한서>에 ‘고구려, 부여, 韓’이 있는데, ‘馬+干’은 없으나, ‘馬+干’이 곧 저 ‘韓’이라, 음은 같고 글짜가 다를 뿐”이라고 했다. 곧, ‘馬+干·翰·邯 …’ 어느 한자로 써도 된다. 그런데 하필 전국시대에 있다가 망한 ‘韓’을 갖다 썼다.

중국이 고구려사를 왜곡하고 나섰는데, 그 빌미를 우리가 주고 있다. 우선 ‘나’부터 찾자. ‘한나라’를 ‘한國’으로 적더라도 신성한 ‘한’을 엉뚱한 ‘韓’으로 더럽히지 말고, 한자말을 줄이고, 우리말을 받들고 한자말·영어들을 낮추어 우리가 떳떳한 나라요 겨레임을 보여줘야 한다.

‘동국·동방·대동’이라고도 했는데, 어느 나라 ‘동쪽 나라’란 말인가. ‘중원’이라고 허풍치는 그곳의 동쪽 나라란 얘긴데, 우리 스스로 그 속국 노릇을 하려고 했다.

신라가, 제 아비 원수를 갚으려고 벼르던 당 고종의 힘으로 ‘세 나라’를 통일한답시고, 넓은 우리 땅을 거의 내주어 버렸다. 경덕왕은 땅이름까지 당나라 식으로 바꿨다. ‘매홀’은 ‘물골’이란 뜻의 고구려 때 말이다. 그것을 ‘수성’으로 바꾼 따위다. 요즘 우리말 행정 땅이름에는 ‘서울’과 ‘임실’ 두 곳밖에 없고, 우체국 이름도 서울 ‘모래내’와 전북 ‘곰소’밖에 없다. 세계 어느 나라가 남의 말로 제 땅이름을 바꾸던가? 중국말을 ‘정언’이라 하고 우리말을 ‘방언·속언·속칭·언칭’이라며 스스로 “지방 말, 속된 말, 상말”이라 여겼다. 일본은 한자를 쓰되 새겨 읽기 때문에 일본말을 고스란히 간직해 온다. 우리는 한자를 그 소리로만 읽고, 우리말을 업신여기는 바람에 우리말이 많이 없어졌다. ‘열·온·즈믄·골·잘·울’이 쓰이다가 ‘十·百·千·萬·億·兆’에 밀려 없어지거나 잘 쓰지 않는다. 우리말 없애기 운동은 지금도 하고 있다.

국어사전에는 쓰지도 않는 한자말만 잔뜩 올려 놓았다. ‘푸른하늘’은 쓰이는데 없고, 그 한자말은 쓰이는 ‘창공·청천 …’들 댓 개와, 안 쓰이는 ‘궁창, 청허 …’ 들까지 21개나 있다. ‘제비집’은 없고 ‘연소·연과·연와’ 따위는 있다. ‘뛰어나다’만 있어도 되는데, ‘걸연하다·걸출하다·고탁하다 …’ 따위가 28개는 더 있다.

빼어난 임금 세종이 있어 중국 영향에서 벗어나려고 한글을 만들었으면 고맙게 여겨 제글을 쓸 일이지, 위정자들은 한자만 써 왔다. 성도 이름도 한자로만 적을 수밖에 없었으나, 제 글이 생겼으면 곧바로 제 글로 지어야 했다. 그러다 호적에 겨우 이름만은 한글로 올릴 수 있게 됐지만 성은 절대로 안 된단다. 그래서 우리말 ‘궉’씨도 ‘夭+鳥’(봉) 자의 음을 바꾸어 올린다.

일본은 한자로 짓되 제 나라 말로 읽으니까 문제가 다르다. 요즘 ‘이김, 박최, 정조’ 들처럼 부모 성을 아우른 성씨도 나타나니, 우선 성을 ‘저이(伊)·오얏리(李)·다를이(異), 나을유(兪)·버들류(柳), 곳집유(庾), 이길류(劉)’라 하면 어떨까? ‘버들류 성룡, 이길류 대치’라고 하면 성이 뚜렷해진다.

우리는 ‘北京’이라고 쓰면서, 중국 사람들에게 ‘서울’을 한글 아닌 한자로 적으라고 하려는 음모가 있다. 속국 의식 탓이다. 온전한 ‘나라’보다 턱없는 ‘국가’를 더 많이 쓴다. 그러고서 중국이 ‘고구려’를 자기네 소수 겨레 나라라고 하며 ‘왜곡’한다고 대들 수 있는가.

우선 ‘나’부터 찾자. ‘한나라’를 ‘한國’으로 적더라도 신성한 ‘한’을 엉뚱한 ‘韓’으로 더럽히지 말고, 땅이름도 ‘마포’를 ‘삼개’로 하듯 우리말로 바꾸고, 사전에도 쓰이는 우리말을 넣고 안 쓰이는 한자말을 줄이고, 성도 우리말로 짓고, 우리말을 받들고 한자말·영어들을 낮추어 우리가 떳떳한 나라요 겨레임을 보여줘야 한다.

<정재도 / 한말글연구회 회장>

(한겨레신문 2004-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