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이야기] 한국이 망하진 않는다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드높다. 자녀의 조기유학을 넘어 직장이 번듯한 가장이 앞장서는 해외 이민도 확대추세다. 아직 한국 탈출을 결정하지 않은 부류 가운데에서도 일단 해외로 돈을 빼놓으려는 움직임도 커지고 있다.

사회를 양분화시키고 국민을 찢어발기면서 분배위주로 가려는 정부 때문에 장래가 어둡다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향후 10년은 물론 20년까지 비전이 없다는 주장마저 심심치 않게 나온다. 골로 가야만 정신 차릴 것이라는 포기주의가 널리 퍼져나가고 있다.

한국 국가경쟁력이 취약하다는 분석도 많다. 세계 1등 상품이 중국에 비해서도 크게 뒤져있으며 앞으로 먹고 살 것이 걱정된다는 소리가 기업가의 입에서 쏟아져 나온다. 인구통계학적인 측면에서 성장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으며 노동유연성 저하가 투자를 가로막는 최대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그나마 아직 건전하다는 재정 마저 언제 뇌관이 될 지 모르는 불안감을 지울 수 없다.

한번 포퓰리즘의 문턱을 넘으면 좀처럼 정상 궤도로 돌아오지 못하는 게 세계의 역사이며 한국도 예외가 아닐 것이라는 확신은 걱정을 넘어 생존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더욱 더 개혁적으로 치장된 선동 정치를 선호하면서 같이 못살고 굶어죽자는 것이 마치 진리이며 선인 양 세상이 흘러갈 것이 눈에 선하다고 한다.

만주를 호령하던 고구려 시대를 끝으로 압록강 밑으로 좁아 든 국경 안에서 조선시대까지 중국에 복속 당해왔다. 개방을 미루다가 수십년간 일본 식민지가 되는 치욕을 겪어야 했다. 한국동란으로도 쪼개진 남북한이 합쳐지지 못했고 가뜩이나 좁은 땅덩어리에서 동족을 겨누는 군사비가 만만치 않게 들어가고 있다. 김정일 사후 북한이 어떻게 될 것인지, 기회로 인식될 수도 있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피할 수 없는 위기라는 데 힘이 실린다. 한국의 정통성을 유지하면서 북한 경제를 일으킬 방안을 내세우지는 못한 채 그저 북한과 협력해야 하고 국가보안법을 철폐해야 한다는 궤변만 난무하고 있다.

수천년의 한반도 역사가 그랬듯이 아시아 대륙의 극동 진출 관문이 한반도다. 때문에 열강은 이 땅에 대해 군침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고구려, 고려 때 수 차례 한반도 정벌에 나섰으며, 신라의 삼국통일 때, 임진왜란 때, 6.25 동란 때 군대를 파견하는 등 틈만 보이면 한반도를 차지하려는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일취월장 힘이 커지고 있는 중국은 이제 김정일 사후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배가시키려는 작업에 나서고 있다. 역사왜곡을 통해서 만주 조선족 독립의 씨를 말리고 북한을 접수하는 것이 중국의 목적일 것이다.

일본은 이미 한국 경제에 깊숙이 뛰어든 것을 배경으로 삼으면서 반일 감정을 건드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재진출의 기도를 갖고 있다. 호시탐탐 독도를 넘보면서 한국의 대응전략을 간파한 뒤 임진왜란이나 한일합방의 역사를 새로 쓰려는 꿈을 키우고 있을 것이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서 지진·태풍·화산의 위협을 벗어나는 꿈의 대륙은 일본의 평생소원이자 생존전략일 수 있다.

미국은 철군도 검토하고 있지만 한반도를 포기할 처지가 아니다. 남미 국가나 필리핀의 경우에는 포기하더라도 적국에 넘어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결정이 쉬웠다. 남미 경제가 망가지더라도 유럽 중국 러시아 일본이 간여하기에는 지역적으로 너무 멀다. 60년대의 영화가 사라진 필리핀은 누구도 삼키려고 하지 않는 외딴 섬나라가 돼 버렸다. 그러나 한반도는 다르다. 북쪽과 서쪽으로는 중국, 북동쪽으로 러시아, 남동쪽으로 일본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역의 중심이다. 6.25 때 남한의 구세주가 되면서 태평양을 넘어 아시아 전진기지의 한가운데를 차지할 수 있었다. 누가 뭐라해도 군사경제적으로 당할 수 없는 지구상 유일한 절대국가가 사방에 잠재적 적국으로 둘러 쌓인 지역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

북한 정권을 수립했고 두만강을 경계로 삼고 있는 러시아는 연방 해체의 아픔을 이겨낸 뒤 한반도 정세에 관심을 두고 있다. 가스전의 한반도 통과로 경제적 영향마저 끼칠 태세다.

물리적 국경이 있는 중.일.러의 힘의 균형이 깨져서는 곤란하다. 한반도가 완충지대로 있는 것이 동북아 평화의 근간이다. 이 근간은 미국이 있기 때문에 쉽게 지켜질 수 있다. 미국적 글로벌 스탠더드에 문제가 있고 미국의 정치영향이 좋지만은 않더라도 미국과의 친교가 가장 바람직한 대안이다. 일본과 중국이 한미 우호관계 와해를 이유로 한국을 깔보기 시작하면서 마각을 드러내기 전에 세계를 쥐고 흔드는 미국과 보다 긴밀한 협조관계를 구축해서 주변국을 다룰 방도를 취하는 것이 최선이다.

한국이 망할 정도로 위기에 몰리기에는 국제정세가 복잡하다. 고구려가 한국 역사에서 가장 큰 영토를 차지했더라도 중국과 비교하면 변방을 차지한 데 지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해서 한국이 동북아를 주름잡을 수 있다는 꿈을 접고 현실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이 같은 힘의 균형 속에서 내부적으로 정신을 차린다면 한국은 70년대의 발전을 재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같이 가난해지는 사회를 원치 않는다면 부자를 배척하는 분위기를 만들지 말고 남의 떡을 뺏기보다 내 떡을 키우는데 주력할 일이다.

나라가 흔들리면 서민의 고통은 더욱 커진다. 이 점을 깨닫고 노소, 빈부의 이탈을 막는다면 같이 잘 될 수 있다. 국제정세상 망할 수 없는 나라에서 굳이 내부적으로 분열을 획책하는 짓을 할 이유가 없다.

외국인이 핵심 기업을 독차지한 마당에 국수주의적이며 반기업적인 정책을 구사하는 것, 풍전등화인 외환정책에 대해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는 것, 세계가 미국 경제에 종속된 마당에 한국 내부적인 모멘텀을 키우겠다고 대증요법을 쓰는 것, 새 정권의 집권 5년이 차기 대선에서의 집권 연장을 위한 '몰빵' 기간이 되는 것 등이 모두 국가를 좀먹는 일이다.

한국이 잘 사는 나라가 돼야지 안 되는 데 망하지 않는 정도로 가서는 딸과 손녀를 해외에 보내서 달러벌이를 하게 만들지 모른다.

(머니투데이 / 홍재문 기자 2004-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