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의 `꼼수`

재작년, 처음으로 중국에 갔었다. 가을의 베이징 시내는 아름다웠다. 거대한 규모의 고층 건물, 대리석으로 치장한 호텔, 호화로운 아파트 등으로 베이징은 과거의 껍질을 대부분 벗어버린, 세계적 대도시로 변해가고 있었고 그 변화의 속도는 새로 생긴 거리나 대형 호텔을 모르는 많은 택시 운전사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사회과학원과 베이징 몇몇 대학의 교수들과 3박4일간 학회를 하면서 그들의 멋진 매너, 깔끔한 옷맵시, 완벽한 영어, 매끄러운 학회 진행에 놀랐고 전 세계에서 온 수백 명의 참가자에게 보여준 후한 대접에도 감동했었다. 동·서양의 예술과 미학을 비교·연계·분석하는 작업 속에서 중국 문화의 개방적인 아름다움이 자연스럽게 과시됐고 그와 함께 다른 세계의 문화예술이 어우러져 보여서 가위 지식의 세계적 축제를 지켜본다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학회 말미에 자금성(紫禁城) 관광이 있었다. 웅장한 자금성의 멋을 음미하며 나오는 길에 허름한 복장을 한 한 무리의 남녀 행상들이 발마사지를 하라며 관광객의 옷소매를 강하게 끌어당기자 세련된 차림의 베이징외국어대 왕 교수는 부끄러운 듯 어색한 웃음을 지었고, 그 제자인 대학원 박사과정생은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었다. 중국의 자랑스러운 모습만을 보이려는 마음이 무안해진 듯 보였다.

우리도 비슷한 관광 문화의 배경을 지니고 있고 또 이삼십 년 전 우리 모습 같기도 해 “우리도 똑같았기에 너무나 이해가 된다”며 그들을 안심시키려 했었다. 아직은 세계 최고 선진국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으나 그 자리를 향해 꾸준히 성장하고 전진하는 나라의 자부심, 20세기 초에는 일본과 유럽 열강의 식민지로서, 2차대전 후 최근까지는 가난한 공산국가로서 살아온 과거의 수치를 다 지워버리고 싶은 강한 욕망을 지닌 이 중국이라는 나라의 심장 박동이 느껴지는 듯하여 ‘중국어를 배워야지’라고 아직도 실행을 못한 결심을 세우기도 했다.

그런데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운동, 이른바 ‘동북공정(東北工程)’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중국이 아직은 촌스럽구나’ 하는 생각을 감추기 어렵다. 더구나 그런 정치적 공작의 산실이 중국의 사회과학원이라는 기사를 보면 ‘설마 내가 만났던 그 세련된 모습의 교수들은 아니겠지’ 하고 씁쓸해지기까지 한다. 경제력으로나, 정치적 영향력으로나 세계 최고를 지향하고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다고 믿어지는 나라, 올림픽에서도 이젠 거의 모든 참가국을 주눅들게 하는 나라, 그런 중국이 할 일이 겨우 ‘고구려는 중국’임을 증명하려는 노력이라는 말인가?

로마제국의 유적은 북아프리카와 유럽 대륙 전체에, 그리고 영국까지 골고루 퍼져 있다. 그 유적이 속한 나라 가운데 어느 한 나라도 로마제국의 유산을 아끼고 보존하는 데 있어 국수주의적 고집을 부린 적이 없다.

지금의 국경은 존중돼야 하지만 수백 년 전 활동 영역은 그대로 존중해 주는 여유와 예의가 대국의 힘을 갖춰 가는 중국에는 그리도 어려운 것인지 의아심이 든다. 혹자는 최근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이 철저히 계산된 정치적 전략으로서 남북한 통일 이후에 국경 문제 등 여러 가지 가능한 현안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술수라고 분석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술수라 한들, 수백 년 전 역사를 왜곡해서 얼마나 이득을 챙길 수 있을 것인가?

미국의 대 중동정책이 이스라엘과 아랍에 대한 형평성 면에서 그 옳고 그름을 떠나 세련되지 못하다는 비판이 수십 년 동안 계속됐었다. 그 결과인지 미국이 이라크에서 진퇴양난에 처해 있는 지금, 중국의 리더십에 대한 기대가 만만치 않은데 겨우 나온 것이 고구려사 왜곡이고 보면 국제 리더십에서 중국이 대안으로 등장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세련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왜곡에 항의하는 우리나라 여야 국회의원이 줄줄이 어려운 중국행을 했었다는 소식도 있었다. 중국이 그르고 우리가 옳음을 밝히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 국회의원들이 우리의 과거사 청산에도 과연 세련됨을 과시할 수 있을지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다.

<서정신 / 문화평론가, 스프링 컨설팅 대표>

(문화일보 2004-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