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 역사학자들 ‘고구려사 왜곡’ 첫논박

박문일 전 연변대 총장등
동북공정사무처 토론회 발표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기 위한 중국 학자들의 역사왜곡 작업에 대해 중국에서 활동 중인 조선족 역사학자들의 반론이 처음으로 공식 제기됐다. 이런 사실은 3일 <한겨레>가 입수한 동북공정사무처의 ‘고구려 역사문제 학술토론회’ 자료집을 통해 확인됐다.

고구려사는 물론 고조선에서 발해에 이르기까지 한국고대사를 통째로 중국사에 편입시키기 위한 작업을 진행해 온 동북공정사무처는, 지난달 9~10일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변대학 중·조·한·일관계사연구소와 공동으로 연길시 연길호텔에서 고구려 역사문제 학술토론회를 열었다.

이 토론회에서 첫번째 발표자로 나선 중국 역사학계의 원로인 박문일(72) 전 연변대 총장은 9일 ‘역사상 <중>과 <외>의 구분 문제에 대한 검토-고구려사의 귀속문제와 함께’란 논문을 통해 “고구려는 조선(한국) 고대의 세 나라 가운데 하나이며, 중고대 조선(한국)사의 중요한 체계 안에 자리한다”고 밝혔다. 박 전 총장은 논문에서 ‘국사(자국의 역사)’의 귀속 범위를 확정할 때 현대의 국경과 더불어 △역사적 활동영역의 변화상황 △역사상에 나타났던 국가의 성격과 귀속상황을 근거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역사상 나타났던 국가의 성격을 검토할 때 독립권·평등권·관할권·면책권·자위권 등 다섯 가지의 ‘주권’을 실제적으로 지녔는지를 봐야 한다고 지적해, ‘조공’ 등 단편적인 기록을 바탕으로 고구려사를 중국왕조의 지방정권이라고 주장하는 중국 학자들의 이론적 허약성을 공격했다. 그는 이런 기준으로 볼 때 “적어도 장수왕 시기 이후엔 고구려와 중국 왕조의 관계가 자기 주권을 가진 독립국가의 관계로 전환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 사료를 볼 때 당나라 군주와 원나라 최고 통치권자와 고위 관리 등이 모두 고구려를 한반도의 삼국 가운데 하나로 인정하고 있고 △고구려가 장악했던 요동지역은 수·당의 중앙집권통치 관할 안에 들어 있지 않았으며 △<신당서> <구당서> 등 중국의 역사책에서도 고구려가 독자적인 관료체계와 행정체계를 지니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중국 역대 역사책에서 <고구려전>을 <백제전> <신라전>과 함께 똑같이 외국인에 대한 ‘열전’으로 다뤄 왔으며 △<북사> 등 중국의 역사책에서 고구려인을 신라인·왜인 등과 함께 중국인과는 다른 겨레로 다루고 있다는 점 등을 근거로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려는 논리를 반박했다.

또 같은날 오후 세번째 발표자로 나선 박진석(78) 연변대 조선문제연구소 교수 겸 중국조선사연구소 고문은 ‘고구려의 역사 지위에 관한 중국 국내외 고서의 기록에 관한 시론’이란 글을 통해 “중국의 역대 사서들이 고구려를 조선(한국) 역사상 가장 오래된 고대국가인 고조선과 연결짓고 있으며, 고구려를 고조선의 일부분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중국의 역대 사서들이 ‘해동삼국’과 ‘왕씨고려-이씨조선’을 계승관계로 인정하고 있으며, 이는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기록과 서로 부합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분석을 바탕으로 그는 “고구려가 조선(한국)의 고대국가 가운데 하나임을 증명할 수 있으며, 동시에 중국 동북지방사의 구성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박 전 총장과 박 교수의 논문은 고구려사 왜곡작업에 대한 중국 조선족 역사학자들의 첫 논박이라는 점에서 이 문제를 둘러싼 중국 역사학계의 논쟁을 활성화하는 촉매작용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이번 학술토론회에선 “동북공정 작업은 주변 국가의 반발을 사 중국의 고립을 자초한 ‘전략적 오류’”이며 “중국의 국가 이익을 위해서도 백해무익한 작업”이라는 비판들이 제기됐다고 이 토론에 참석했던 한 전문가는 전했다.

토론회에선 이들의 논문 이외에도 동북공정의 고구려사에 대한 관점을 답습한 리다룽의 글 등 9편의 논문이 더 발표됐다. 토론회에는 리셩 동북공정 영도소조 비서장(중국사회과학원 변경역사지리연구중심 주임), 마다정 동북공정 영도소조 부조장(변경역사지리연구중심 연구원) 등 동북공정의 ‘영도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한겨레신문 / 이상수 특파원 2004-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