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라, 문화유산 해결사

“문화유산 해설사라고 아나?”

지난달 중순, 알고 지내던 분이 기분 좋은 표정으로 말을 걸어왔다. 일에 쫓기다 몇 해 만에야 모처럼 온가족이 함께 휴가여행을 다녀왔단다. 절집을 둘러보는데, 어디선가 할아버지 한 분이 나타나 절에 얽힌 역사와 설화들을 상세하게 일러주더라는 거였다. 생각지도 않았던 명강의에 감동했는데, 그가 바로 처음 만나본 문화유산 해설사였다는 얘기다. 지난해도 한 친구로부터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어떤 서원에 들렀더니 관광객들이 건물 앞에 모여 열심히 강의를 듣고 있더란다. 이 친구도 설명이 듣고 싶어, ‘단체의 일원인 양’ 끼어들어 ‘도둑 수강’하는 심정으로 따라다녔다고 한다. 그러다 뒤늦게, 누구든 요청하면 설명을 들을 수 있다는 걸 알고는 머쓱해했다는 것이다.

문화유산 해설사 제도가 시행된 지 3년이 됐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에선 문화유산 해설사라는 말이 낯설게 들리는 듯하다. 제도 자체를 몰라 여행길에 풍성한 역사 체험학습 기회를 놓친다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된 데는 사진 찍고 지나가는 겉핥기식 관광행태가 가시지 않는 등 관광객들의 무관심 탓도 있지만, 제도 자체에 대한 홍보 부족도 주된 원인일 듯싶다.

문화유산 해설사란 ‘문화재 및 지역문화 등을 내·외국인 관광객에게 정확히 설명해 줌으로써 관광객의 문화체험과 문화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는 사람’이다. 2001년 문화관광부가 한국 방문의 해를 맞아, 각 시도 지자체를 통해 문화유산 해설사를 길러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약 1000명이 배출돼 주요 문화유적지에서 활약 중이다. 지역의 단체들이 양성한 이들까지 합하면 그 수는 더 많아진다. 주요 문화유적지엔 해설사들이 늘 대기하고 있다. 관광객이 드문 평일엔 단체로 신청을 해야 하지만, 주말엔 어느 때고 일정한 수가 모이면 무료로 해설을 들을 수 있다.

전국으로 여행지 취재를 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여러 문화유산 해설사들을 만나게 된다. 대구의 한 고택마을에서 80대 할아버지의 카랑카랑한 유교문화 해설을 들었고, 진주에선 역사공부를 하며 해설사로 나선 30대 전직 공무원을 만났다. 단양에선 자녀 교육과 해설사 일 두 가지를 거뜬하게 해내는 40대 주부 해설사의 고구려 왕조 강의를 들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일에 대한 보람과 자부심에 넘치는 모습이었다.

해설사들은 지역별로 모임을 만들어 수시로 정보를 교환하고 토론을 벌이며 역량을 키워나간다. 정기적으로 지역을 답사하며 현장을 재확인하고, 새로 드러난 사실들에 대한 학습을 진행한다. 지자체에서 해마다 진행하는 재교육(심화교육)말고도 이들이 개인적인 공부에 매달리는 이유가 있다. 관광객들 중에 흔히 섞여 있는 교사·대학원생·교수 등 전문가들에게 곤욕을 치를 수 있기 때문이다. 더 깊이있게, 더 정확히 알기 위해 이들은 신문기사를 오리고 옛 문헌을 뒤지고, 인터넷을 파고든다. 전직 교사·공무원, 퇴역 군인, 주부들이 대부분인 이들은 교통비·밥값만을 받고 일하는, 사실상 자원 봉사자들이다.

이들의 열정에 비하면, 해설사 제도는 보완해야 할 점이 많아 보인다. 지자체별로 양성 프로그램과 교육 시간, 대상자 자격조건, 평가 방법이 다르고, 재교육에서도 교육 시간과 내용이 지역마다 차이를 보인다. 또 최소한의 배려인 교통비·식비 등도 지역에 따라 8000원에서 3만원까지 차이를 보여, 해설사들의 사기 진작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제도 자체의 홍보도 미흡하다. 각 지역을 아우르는 기본틀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제도적 뒷받침과 함께 해설사들의 실력과 열정이 커지면 커질수록, 우리 소중한 문화유산들은 제 빛을 뿜으며 국민의 기름진 양식으로 자리잡을 터다. 이번 가을 여행길에 열변을 토하는 문화유산 해설사를 만나거든, 한마디 건네자. 우리 문화유산 해설사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힘 내세요!

(한겨레신문 / 이병학 문화생활부 차장 2004-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