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하이닉스와 고구려史

하이닉스가 유럽계 반도체회사 ST마이크로와 합작으로 최첨단인 12인치 웨이퍼 공장을 중국에 짓는다고 발표했다. 공장 설립에는 20억달러가 들어가는데 하이닉스와 ST마이크로가 각각 5억달러를 부담하고, 나머지 10억달러는 중국 정부가 지원한다고 한다.

하이닉스는 투자라고 말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하이닉스가 중국에 넘어간 것이나 다름없다. 중국의 고구려 역사 왜곡이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데 비해 우리는 하이닉스 사태에 너무 조용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래와 과거를 바로 못 보는 것이 너무나 개탄스럽다.

하이닉스의 중국행은 무엇을 의미하나? 한마디로 한국 반도체 산업이 중국으로 팔려가는 것을 뜻한다. 중국 정부는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 때부터 중국을 세계 반도체 강국으로 육성하기 위한 계획을 착착 진행해 오고 있다. ‘909 프로젝트’가 바로 그것이며, 2010년까지 세계시장에서 최소 5%의 점유율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국이 장차 세계에서 가장 큰 반도체시장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여러 조사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미국과 유럽의 반도체 기업들이 중국으로 몰려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중국 정부가 이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는 것이다.

반도체 산업뿐만이 아니다. 중국 정부는 미국, 일본, 한국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산업 주도권을 빠른 기간 내에 중국으로 옮겨오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에 들어오는 외국기업들에 단기간 내에 첨단기술을 이전해주고, 중국 기업들과 공동연구·개발 작업을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독일 기업이 참여하는 상하이 초고속전철 프로젝트, 선양의 BMW 공장 등이 그러한 실례이다.

중국 정부는 반도체 산업에서 전략적 제휴를 적극 활용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하이닉스와 ST마이크로가 중국에 설립하는 WFOE사의 경우를 살펴보자. 이 회사가 세계 반도체 전체시장 점유율 4%로 6위를 차지하는 ST마이크로와 세계 D램시장에서 점유율 15%로 4위를 차지하는 하이닉스의 지원을 받으면 순식간에 세계적인 반도체 메이커로 등장하게 된다. 하이닉스가 처해 있는 재정적 어려움을 이용하여 첨단 반도체기술을 넘겨 받으려는 것은 너무나 교묘하고도 세련된 전략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하이닉스가 오랫동안 축적해온 첨단기술, 네트워크, 고급인력이 중국에 고스란히 넘어가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이렇게 간다면 중국이 조만간에 한국 반도체산업을 추월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셈이다.

필자는 그간 여러 차례 세계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기업 간 인수합병(M&A)이 국민경제에 가져다주는 산업 주권(主權)의 상실은 막아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신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선진국들도 예외 없이 이러한 산업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과거 독일에서 영국 통신업체 보다폰이 독일 통신업체 만네스만을, 메르세데스 벤츠가 미국 크라이슬러 자동차를, 우리나라 삼성이 동독에 있던 WF를 인수하려고 했을 때 독일 정부는 직접 관여했다. 기업 간 인수합병으로 독일 경제가 어떤 영향을 받을지를 따져보는 것이다.

한국에는 IMF 경제위기 이후 독자 기술개발 능력을 갖고 있는 여러 기업들이 외국인의 손에 넘어갔다. 쌍용자동차도 이러한 운명에 놓여있다. 고도 기술개발 능력을 갖고 있는 우리 기업들이 무제한으로 외국인에게 넘어 가는 것을 그냥 방관만 할 수 없다. 정부는 첨단기술의 중국 이전이 가져올 ‘부메랑’ 효과에 대해 깊이 생각을 해보아야 할 것이다.

<박성조 베를린 자유대 정교수 현 서울대 초빙교수>

(조선일보 2004-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