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정'으로 '동북공정' 극복하자

우리 독자적 코드로 세계에 내보여 주어야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중화제국주의의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다민족국가로서 중화권통합 및 패권화를 위한 장기적 전략의 수순에 따라 고구려사와 발해사의 중국사 편입을 노골화하고 있다.

얼마 전 중국 자칭린 정협주석이 방한, 동북공정에 대한 한국의 악화된 여론을 완화시키기 위해 후진타오 주석의 유화적 메시지를 우회적으로 전한바 있지만 그것이 곧 동북공정의 중단을 전한 것은 아니다. 중국은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우리 과거사를 삭제해버린 것을 비롯해 공식적인 중국 정부의 고구려사 침탈을 이미 시도해 버린 것이므로 결코 그들이 동북공정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진파리 금구 중앙의 세발까마귀.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은 한마디로 전세계에 거주하고 있는 한민족 커뮤니티 모두에게 역사전쟁을 선포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고구려사를 중국의 변방사로 예속시킨 것은 민족의 족보를 일거에 없애버린 것이다. 마치 우리 할아버지를 자기들의 할아버지라고 가로챈 격이다. 민족의 정체성을 한 발로 밟아 버린 것이다. 이대로 두면 중국은 만주를 가로챈데 이어 북한땅까지도 영토복속을 시도할 것이다.

국력이 약하면 역사는 사라진다. 강한 민족은 낮의 역사를 지배하고 역사를 잃은 민족은 밤의 신화에 매달려 살 수밖에 없다. 고구려야말로 자존과 평화의 역사가 확실하게 펼쳐진 시기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라당연합군에 의한 고구려 멸망과 함께 우리 민족의 역사는 외세의 간섭과 외환에 시달리는 시기가 많았다.

때로는 국력이 약해 외세의 침탈을 받았을 때 우리의 역사서가 없어지고 소실되는 바람에 강국들에 의해 우리 역사가 조작되고 왜곡되었다. 또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국 앞에 무릎을 꿇고 우리 스스로 민족의 역사를 축소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역사는 겉의 역사로부터 숨겨진 역사로 은유적인 방식으로 코드변환작업을 거듭해야 했다. 신화 속으로, 설화 속으로, 속요 속으로 파고 들 수밖에 없었다. 때로는 남아있던 역사서 마저도 위서(僞書)로 매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역사는 역사서 말고도 실체를 충분히 입증할 수 있는 단서를 남기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 바로 문화이다. 고구려가 남긴 숱한 문화유산들은 글이란 단순코드 말고도 다양한 문화적 코드로써 역사를 담고 있다. 조상들이 후세로 전하려는 언어가 고구려 무덤 벽화 속의 해와 달의 문양으로, 무용총의 춤추는 모습으로, 불상의 모습에서, 수막새 등을 통해 다양한 코드로 전하고 있다. 고구려사 또한 문화를 통해 당당히 우리 민족의 역사로서 살아 있는 것이다.

문화는 정치, 사회, 경제, 언어 등 다분야에 걸친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기록코드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지금까지 해오던 것처럼 겉의 역사, 영토의 역사는 날조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훔치려 해도 복사 조차 할 수 없는 게 바로 문화의 코드다. 중국인들이 오랜 동안 자신들이 사용해 왔던 한자의 뜻을 모른 것도,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옛 명칭인 왜(倭)의 어원조차 파악 못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 중국은 아무리해도 고구려 문화코드를 이해할 수 없다

이제야말로 우리의 역사를 당당하게 내세워야 할 때이다. 우리가 가진 독자적인 문화코드로 그들이 가질 수 없는 고구려 역사의 콘텐츠를 구체적으로, 시스템적으로 세계에 내보여 주어야 할 때이다. 즉 겉의 역사만으로는 도저히 설명하고 이해시킬 수 없는 문화코드를 해석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1941년 평양 진파리7호분에서 출토된 해뚫음무늬 금구야말로 단적인 예이다.

해모양맞새김금동장식(日像透彫金銅裝飾)
이 금구는 이른바 중국역사서에서 백제왕들이 썼다고 하는 오라관(烏羅冠)이다. 오라관은 고구려, 신라, 백제, 일본 등 태양을 숭배하는 북방권의 왕들이 썼던 것으로 추정되며 그것은 곧 고구려 문명권에서 기원하는 것임을 의미한다. 진파리 금구는 서기 4 ~ 5세기경 고구려의 예술가들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위에 수리(조룡(鳥龍) : 은하계, 유목문명), 왼쪽 아래에 고래(저룡(猪龍), 해양문명), 오른쪽 아래에 청개구리(화룡(禾龍), 농경문명)가 각각 위치하고 그 중앙에 태양을 의미하는 이중의 원형고리 내에 태양의 흑점을 나타내는 세발까마귀(三足烏)가 있다.

이 세발까마귀는 고구려의 고분군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를 상징하는, 가장 고구려적인 엠블렘이다. 고구려 고분군에서 해와 달이 보이는데 해는 세발까마귀의 형태로, 달은 방아찧는 토끼 또는 개구리(두꺼비)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해속의 세발까마귀와 달 속의 방아찧는 토끼는 이후 고려조 대각국사 의천의 가사에서, 또 그 문양이 그대로 일본왕이 즉위할 때 입는 곤룡의로 전달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밖에 고구려의 북두칠성, 사신도까지도 곤룡의에 기록되어 있다. 세발까마귀는 일본 신사에서 태양신의 사자로서 가장 보편적이고 중심적인 문양으로 숭배되고 있으며 지난 월드컵때 일본축구협회(JFA)의 엠블렘에서까지도 나타난다.

일본왕이 즉위식때 입는 곤룡의. 대각국사의 가사에서와 같이 어깨위에 해(세발까마귀)와 달(방아찧는 토끼)이 그려져 있다. 곤룡의 뒷면에는 북두칠성과 사신도가 묘사, 고구려적 문화요소들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이 확인된다.


진파리 금구의 세발까마귀는 한,중,일에서 발견된 각종 세발까마귀 가운데 가장 추상화된 형태다. 1700년 전에 고구려인들에 의해 디자인되고 제작된 진파리 금구의 세발까마귀야말로 세계 최고(最古), 최고(最高)의 제국인 고구려의 국장(國章)이자 왕관(Crown)에 새겨진 엠블렘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세계 어느 국가와 민족보다 더 오랜, 더 높은 권위를 갖는다. 필자는 이보다 더 권위 있는 브랜드가 있으면‘나와 보라’말할 수 있다. 이야말로 코리아(고구려)를 세계적으로 각인시킬 수 있는 민족문화의 상징이다.

◆ 세계적인 민족 문화상징물, 진파리금구 세발까마귀

고구려는 이미 흘러간 과거사다. 그러나 중국의 동북공정은 미래의 중화제국주의를 건설하기 위한 중국 정부의 단호한 의지가 깃들어 있는 마스터플랜이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은 우리 민족 정체성의 약화와 장차 우리의 국토 침탈을 위한 수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동북공정은 우리의 내부적인 분열 에너지를 통합에너지로 결속, 미래의 강국 코리아를 건설하기 위한 역동적인 민족통합, 사회통합의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

문화는 에너지다. 중국의 고구려사 침탈과 관련 우리는 가장 고구려적인 문화상징물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진파리 금구의 세발까마귀야말로 가장 고구려적인, 가장 코리아적인 상징물이 아닌가. 우리의 민족 상징물을 문화적인 유형으로 다양화시켜 티셔츠로, 모자로, 펜던트로, 뱃지로, 반지로, 액세서리로 세계적인 명품화로 발전, 보급시킨다면 그리고 이러한 문화상징물을 세계인들에게 입히고 차게 한다면 코리아를 세계 속에 각인시키는 중요한 작업, 즉 문화공정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우리의 자라나는 고구려 청소년들에게 고구려적 요소를 각인시키고, 고구려 광개토대제의 웅지와 포부를 교육시킨다면 이보다 중요한 미래의 투자가 어디 있을까? 덧붙여서 남북당국에서 이미 국호를 COREA로 사용하기로 합의한 것에 대응해 대표적인 고구려적 문화상징물인 진파리 금구의 세발까마귀와 COREA를 결합한 엠블렘을 국제적으로 보급한다면 고구려와 COREA의 발흥은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고구려는 당대의 문화유산을 통해 한 개의 제국이 아니라 여러 민족, 여러 부족국가들이 함께 했던 대연방국가였던 흔적이 나타나고 있다. 고구려사는 중화제국주의의 성에 갇힐 점유물이 아니라는 게 명백해지고 있다. 특히 고구려사는 그 당시 관련된 나라와 민족들의 후예들이 함께 공유해야 할 역사이며, 고구려는 중국과 북한, 남한, 일본, 몽골 등 아시아지역의 국가와 모든 민족이 함께 해석하고 풀어가야 할 소중한 꿈이며 미래다.

(국정브리핑 / 정민수 넷포터 2004-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