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中日 역사 공동기술 오류 바로잡아야"

◆중국 고구려사 왜곡 대처 이렇게◆

지난달 24일 한ㆍ중 양국이 고구려사 문제와 관련해 '구두양해'에 합의하며 외교적 갈등은 진정시켰지만 여전히 학계와 시민단체에서는 합의 형식과 내용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구두합의는 중국의 역사왜곡 방지를 강제할 만한 수준의 법적 효력이 없고, 합의내용 가운데 '동북공정(東北工程)'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어 앞으로도 중국이 언제든지 고구려사를 왜곡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회 교육위 소속으로 최근 중국을 방문해 고구려사 왜곡 실태를 조사하고 온 열린우리당 유기홍 의원, 고구려사연구재단에 참여하고 있는 전호태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교수와 최종택 고려대 고고미술 사학과 교수 3명 전문가들에게서 의견을 들어봤다.

- 이번에 한국과 중국간에 합의된 구두양해를 어떻게 평가하나.

▶유기홍 의원=미봉책이라고 본다. 사과의 내용이 전혀 없다.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의 역사기술에서 고구려사 부분을 원상회복하라는 우리측 요구도 받아들 여지지 않았다.

학술교류를 계속하자면서 동북공정에 대해서도 전혀 언급이 없었다. 중국은 한국이 갑자기 외교적으로 강경하게 나오니까 잠시 미봉하려는 의도인 것 같다. 다만 중국측이 지방정부까지 포함해서 앞으로 교과서 왜곡을 하지 않겠다는 말 한 것은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

▶최종택 교수=이번 구두양해를 비롯해 모든 논란이 중국 입장에선 이미 준비 된 과정이라 생각한다. 중국은 이미 수년 전부터 준비를 거쳐 이번 파문도 거쳐야 할 과정으로 예상하고, 또 대응한 것으로 보여진다. 최근 중국을 방문해 학자들을 만났는데, 한결같이 "이것은 학술적 문제다”라는 논리를 편다. 중국 정부와 학계가 일사불란하게 "중앙이 아니고 지방이다, 정치가 아니라 학술이다”라는 주장을 한다.

▶전호태 교수=동북공정 자체도 대형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다. 역사에 한정된 게 아니라 중국이 21세기 국제사회를 주도한다는 가정 하에 패권을 어떤 식으로 운영해 나갈 것인가 하는 구도 아래서 중국 자체의 취약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살리는 세부 프로젝트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조차 중국의 전략과 전술 속에 포함돼 있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유 의원=이번 국회 교육위의 중국방문 때 보니 고구려사 왜곡이 이미 일반 관광객들에 대한 홍보차원에까지 심화되고 있다. 간단한 홍보자료에까지 이미 그런 기술들이 이뤄지고 있다. 큰 흐름은 정해진 것이고, 이번 구두양해는 외교적 전술 차원에 불과하다.

- 고구려사 왜곡 문제가 중국 내부 소수민족 관리 차원이라는 의견도 있다.

▶전 교수=중국과 미국은 다민족 국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미국은 모든 지역에서 다양한 민족이 완전히 섞여 있고 중국은 소수민족과 지역이 일치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중국으로선 아주 취약점이다. 특히 해안의 한족 중심 지역과 내륙의 소수민족 지역 간에 경제발전 속도가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균열이 올 수도 있는 위험요인이다.

동북공정이 빠르게 진행되는 이유는 다른 소수민족은 중앙정부에 원심력을 발휘할 힘이 부족하고 주변에 같은 민족이 주류를 이루는 독립국도 없다. 이에 반해 조선족은 지적 수준과 중국 건국에의 기여도가 높다는 점이 다른 소수민족과 다르다. 무엇보다도 한국이 바로 옆에 독립국가로 존재한다.

▶유 의원=중국으로선 구 소련의 해체를 지켜보면서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전체 영토 가운데 소수민족 지역이 60%에 달한다. 천연자원은 대개 소수민족 주거지역에 매장돼 있다.

동북공정도 그런 관점에서 봐야 한다. 현재도 동북3성에서의 조선족과 한국인의 경제적 활동이 아주 활발한데 중국은 한국과 조선족의 위상이 계속 높아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최 교수=조선족은 국적은 중국이지만 모국은 경제적으로 성장한 한국이다. 중국 내 소수민족 가운데 이런 사례가 없다. 중국으로선 한반도 통일을 염두에 둔다면 그냥 방치할 수 없는 문제일 수밖에 없다.

- 일각에서는 최근 한미동맹이 다소 소원해지는 틈을 중국이 파고든 게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유 의원=그건 아니라고 본다. 총선 직후 열린우리당 워크숍에서 대중 외교관계를 강조한 것은 지나친 대미의존 외교에서 다변화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었다.

오히려 중국은 이번에 손해를 봤다. 한국에서 대중외교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흐름이 있었는데, 다시 중국의 대국주의를 느낀 것이다. 이번에 중국에 가서 " 한중 외교를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전통적 한미관계 강화로 돌아가야 할 지 모른다”고 말했다. 중국이 화급하게 외교부 부부장을 보낸 것도 이런 외교적 득실을 계산한 결과일 것이다.

▶전 교수=어쨌든 중국은 동북공정과 역사왜곡을 끝까지 진행할 것이다. 중국이 한미관계의 틈을 파고들었다기 보다 중국의 기본전략 자체가 한국과 베트남을 포함한 100년 전 청나라 영향권에서 다시 힘을 발휘하겠다는 것이고, 고구려사 왜곡은 역사적으로 근거를 마련해 놓자는 차원에서 시작된 것이다.

-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최 교수=중국의 행태에 답이 있다. 중국이 중앙에서 지방으로, 정치권에서 학계로 책임을 미루면 우리도 그런 역할 분담하에 구체적 방안을 만들어 대응해야 한다.

중국 학계에서는 동북공정을 진행하는 논리가 몇 가지 있다. 첫째는 고구려 건국을 중국이 주도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고구려가 중국 왕조에 조공을 바쳤다는 것이다. 학술적으로 볼 때는 이런 논리에 대응하는 데 문제가 없다. 조공은 고대 외교관계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고, 중국의 고구려 건국 주장은 유치한 논리일 뿐이다. 문제는 중국 학자들이 세계적으로 전파할 때 우리는 학계 영향력이 거기에 뒤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유 의원=사료를 보면 학술적으로 밀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연구대상이랄 수 있는 유적이 거의 중국에 있고 우리에게는 전혀 공개 안하는 것도 한계다.

정치권이 할 일은 학술활동에 대한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교과과정 개정 등을 통해 역사교육을 강화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외교적 대응에 대해선 앞으로도 계속 강경하게 나가고 국회가 뒷받침해야 한다.

시민사회와의 협조도 긴밀히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인터넷사이트인 '반크'가 해외 교과서 왜곡 사례를 찾아내는 데 대해 도움과 관심을 줘야 한다.

- 야스쿠니 참배를 강행하고 왜곡 교과사를 채택하는 일본이나 역사를 왜곡하는 중국 모두 극우 민족주의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이 많다. 우리 외교당국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유 의원=한ㆍ중ㆍ일 3국 공동의 역사기술을 추진하고 우리가 국제적으로 주도할 필요가 있다.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로 비춰보면 고구려사는 한국 역사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는 독일과 폴란드가 역사를 공동 연구하고 교과서를 공동 기술한 적이 있다.

▶전 교수=우리도 전략을 다양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중국 '포위전략'을 되새겨볼 수 있다. 수나라 등장 후 고구려는 수와 평화조약을 맺는 것과 동시에 돌궐,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외교네트워크를 결성해 수나라의 전력을 분산시켰다. 우리도 몽골 러시아 베트남 등 중국 접경국들과 국제학술교류를 진행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유 의원=실제로 베트남 몽골 학자들과는 학술교류를 위한 작업이 진행중이다 . 이르면 하반기에 성과가 있을 것 같다.

▶최 교수=우리가 이런 문제에 대해 꾸준히 준비해 왔어야 하는데, 이번 사건에서 정부의 대책이 대증적이고 국내적인 것을 보고 실망했다.

▶유 의원=정부가 반성해야 한다. 고구려사 문제는 학자들이 이미 몇 년 전부터 경고해왔다. 당국자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꼭 문제가 터져야 대응하는 방식은 개선돼야 한다.

- 역사지키기 관점에서 볼 때 이번 사건이 오히려 전화외복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전 교수=글로벌라이제이션의 개념이 뭔가 생각해봐야 한다. 국제사회에서는 고유문화를 버리는 게 아니라 민족의 특성을 살릴수록 인정을 받는다.

중국의 세계화 방식을 참고해야 한다. 미국 대학마다 화교자본이 돈을 댄 중국 관련 연구소가 있다. 화교들은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어딜 가나 중국을 심는다. 친중ㆍ지중파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 기반에서 동북공정같은 프로젝트가 진행 되면 파급효과가 크다.

역사주권을 논하자면 외국 학계에서 중국과 일본은 있지만 우리는 없다고 봐야 한다. 중국이나 일본에서 새로운 이론이 나오면 인정을 받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그럴 기반조차 없다. 오히려 중국이 만들어준 이 기회에 자극받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유 의원=국사편찬위 내년 예산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도대체 이 정도 예산으로 업무를 할 수 있나 싶었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는 말이 있다. 동북아시대를 열어나가는 미래지향적 토대를 만들기 위해 우리 역사를 어떻게 지켜나가느냐가 중요하다. 정치인으로서 책임을 느낀다. 하지만 다른 사안들처럼 정치권의 관심과 열정이 금방 식어버리면 어쩌나 걱정도 된다 .

<사회 = 조경엽 정치부장 / 박만원 기자 정리>

유적 발굴ㆍ보존 남북 공조 시급

◆중국 고구려사 왜곡 대처 이렇게◆

- 북한에는 고구려 유적이 꽤 남아있는 걸로 안다. 북한은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문제에 대해 거의 침묵했다. 남북이 역사 지키기에 공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

→ 전=정부나 정치권의 인식이 남북공조를 생각할 만큼 심각하지 않은 것 같다. 중국의 역사왜곡은 작게는 동아시아, 크게는 세계패권 전략에서 나온 것이다. 정부는 국민여론이 들끓고 있다고 임시방편으로 대책을 내놓을 게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구를 만들어 동아시아 전략을 강구해야 한다.

역사문제에서는 중국이 이미 이니셔티브를 쥐고 있다. 미국 역사학계의 동양사는 중국 교수들이 지배하고 있다. 국내 학술기관에 대한 전면적 평가와 새로운 역할 분담과 같은 대응책이 필요하다.

→ 최=고구려사연구재단을 구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연구성과가 나오기도 부족한 기간이었다. 정부 내 상설기구가 있다면 정부와 사회 분야를 동시에 모니터링하다 대응방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연구 파트와 다른 기능을 하는 조직이 꼭 있어야 한다. 북한의 경우 여전히 인적 교류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고구려사도 인적 교류가 가장 중요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나마 쉬운 것이 유적의 보존과 발굴조사다. 이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매일경제 2004-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