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본 고구려, 고구려사

평안도 지역의 고구려 고분벽화Ⅰ

강서삼묘, 江西三墓 (Gangseosammyo / Gangseo Three Tombs)


평안남도 대안시 삼묘리(옛 이름은 강서군 강서면 삼묘리(三墓里))에 있는 고구려시대 벽화고분으로 고구려 고분벽화의 절정기 작품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강서대묘, 장서중묘, 강서소묘를 합쳐서 강서삼묘(江西三墓)라고 부르기도 한다.

◆ 강서큰무덤/강서대묘 (Gangseodaemyo-Large)


◆ 강서중묘,강서중무덤 (Gangseojungmyo, Gangseo Jungmudeom)


◆ 강서작은무덤/강서소묘 (Gangseosomyo-Small)

강서소묘는 현실에 벽화나 장식무늬 등이 없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덕화리고분 (Deokhwa-ri Tombs)

평안남도 대동군 덕화리에서 서쪽으로 약 1킬로지점인 야산에 위치한 2기의 고분. 6세기 초에 제작됐으며 2기의 고분이 나란히 있어 덕화리 쌍고분이라고도 한다.

◆ 덕화리 1, 2호분, 德花里 1,2號墳 (Deokhwa-ri Tomb No. 1 & 2)


천장에 그려진 천체는 해·달·은하수· 북두칠성이며, 달 속에는 두꺼비를 그려넣었다. 천장의 장식무늬는 직선과 곡선이 잘 배합되어 있고, 색상이 다양하며 아름답다. 색은 주로 붉은색·밤색·황색·검은색 등을 썼는데, 지금까지도 그 색깔이 변하지 않고 있다.

덕흥리고분 (Deokheung-ri Tombs)

평안남도 대안시 덕흥리에 위치한 고분으로 앞방 북벽 천장에 남아 있는 명문의 내용을 보면 무덤의 주인공은 하북성일대인 유주에서 자사를 지낸 뒤 고구려로 들어와서 408년에 이 무덤에 안장된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절대연대가 명문으로 남아있어 5세기 초 고구려 고분의 구조나 벽화양식을 알게 해주는 매우 중요한 고분이다.




13군 태수들이 유주 자사에게 인사드리는 모습이다. 13군이 유주에 속하며 거느리는 현은 75개이고,주의 소재지는 광계이며, 지금의 소재지는 연국인데, 덕양으로부터 200∼300리 떨어져 있다. 이 벽화를 통해 당시 광개토대왕때 일시적이나마 고구려가 중국 화북 지방까지 점령했음을 증명하고 있다.

평안도 지역의 고구려 고분벽화Ⅱ
쌍영총

남포시 용강군 용강읍에 위치한 5세기 말엽의 벽화고분으로 아름답게 장식된 두개의 팔각기둥이 있어 무덤이름을 쌍기둥 무덤이라고도 한다.

분구는 간신히 원형을 나타내고 있으며 널방의 구조는 전실의 남벽 중앙에 달린 널길, 방형의 앞방, 앞방과 널방 사이의 통로, 방형에 가까운 널방으로 이루어진 두방무덤이다. 특히 통로의 좌우에는 8각돌기둥이 하나씩 세워져 있으므로 이 벽화고분을 쌍영총이라고 이름지었다. 천장가구는 전실,현실 모두 평행3각굄 천장이다.





◆ 약수리 고분 (Yaksuri Tomb)

남포직할시 강서구역 약수리에 위치해있으며 5세기 무렵의 고구려벽화고분으로 1958년 발굴됐다. 고분은 인물풍속도와 사신도가 그려져 있는 감실분으로 귀족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평양 지역의 고구려 고분벽화Ⅲ

진파리1호분 (Jinpari Tomb No. 1)

평양시 역포구역 무진리
사신도를 그린 외간 무덤으로 벽화는 사신도를 비롯해서 벽화 전체에 생동감이 넘쳐 자유 분방하고 극히 화려한 모습을 보여준다  축조는 6세기 후반, 귀족의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다.






◆ 진파리4호분 (Jinpari Tomb No. 1)

평양시 역포구역 무진리고분은 진파리 고분군의 제일 북쪽 경사진 곳에 위치
6세기 전반기에 만든 고구려 귀족의 무덤 이다.


 

황해도 지역의 고구려 고분벽화

안악1호분 (Anak Tomb #1)




◆ 안악2호분 (Anak Tomb #1)



◆ 안악3호분 (Anak Tomb #1)




 

중국 집안 지역의 고구려 고분벽화

무용총, 춤무덤 (Muyongchong-Chummudeom, 舞踊塚)

중국 길림성(吉林省) 집안시(集安縣). 광개토태왕비의 북서쪽 약 1km 지점에 각저총(角抵塚)과 나란히 있다.  이 고분은 묘실의 동쪽 벽에 14명이나 되는 남녀가 대열을 지어 노래를 부르고 춤추는 무희들의 모습이 그려진 벽화로 인해 무용총이란 이름이 붙여졌으며, 춤무덤이라고도 한다.




◆ 각저총-씨름무덤 (Gakjeochong-Ssireummudeom, 角抵塚)

광개토태왕릉의 북서쪽 약 1km 지점에 무용총과 나란히 있다. 각저총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이 무덤 현실의 동쪽 벽에 고구려의 전형적인 씨름그림이 그려져 있기 때문. 5세기말 6세기초의 고분으로 추정된다.



◆ 오회분 4호묘 (Ohoe Tomb No. 4)

중국 길림성 집안시 우산하 고분군에 속하며, 6세기 중반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오회분이란 이름은 그 곳 사람들이 5기의 거대한 봉토분이 마치 투구와 같이 생겼다고 해서 부른 이름이다. 오회 4호분은 고구려 후기 무덤으로서 고도의 건축 기술 및 발전된 벽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집안 20기 벽화 고분 중에서 가장 뛰어난 예술적 가치를 지닌 고분으로 평가받고 있다.

 

고구려 유물

유물이 출토되는 고구려의 고분은 구조상 도굴이 쉬운 탓에 많은 유물이 남아있지 않으며, 일제 강점기 동안에는 발굴을 명분으로 많은 유적이 파괴됐다. 고구려 유물은 다양한 종류의 금동공예품과 토기를 비롯한 기와·벽돌 등 소조품, 각종 철기 및 청동기 등으로 나눠볼 수 있다.



토기는 고구려 유물 중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데, 시간적·공간적인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고구려 토기는 바닥이 납작한 평저기(平底器)가 많고, 고운 점토로 된 니질(泥質) 태토가 많으며, 표면색조는 황색·흑색·회색이 주를 이룬다.


철기는 무기류와 마구류, 농공구류 및 용기류로 구분되는데 각각의 기능에 따라 서로 다른 재질의 철기를 사용하였으며, 제작 기법도 다양하다. 철제 무기와 마구의 발달은 전력의 향상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기병전술의 발달을 가져왔다.


금동공예의 대표적인 것으로 금동관(金銅冠) 및 관장식을 들 수 있다. 불꽃무늬맞새김금동관(火焰文透彫金銅冠)은 인동(忍冬)무늬를 맞새김한 테두리 위에 아홉 개의 불꽃무늬를 세워 장식하였으며, 테두리의 양쪽에는 옷고름과 같은 모양의 드리개 장식을 두 개 늘어뜨렸다.


고구려의 불상은 5~6점에 불과하지만 제작 연대와 제작 동기 등을 기록한 명문이 남아있는 예가 많아 중요하다.


뜷음무늬 금동판과 함께 나온 종이는 삼섬유로 만들어진 것으로 매우 고르고 치밀하게 만들어졌다.





고구려는 백제나 신라보다 먼저 기와를 사용하였는데, 국내성(國內城) 도읍기에 이미 기와제작기술을 받아들여 기와를 얹은 목조건물을 축조했다. 기와의 종류는 암키와, 수키와, 그리고 막새기와(瓦當)·반쪽막새기와(半瓦當)·치미기와(鴟尾) 등 다양하다.
 

(국정브리핑 2004-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