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고구려가 서럽다

지난달 31일 오후 경기 구리시 아천동과 서울 광진구 구의동 접경의 아차산. 산책에 나선 인근 주민들이 등산로를 꽉꽉 메우고 있다.

아차산은 해발 285㎙의 야트막한 야산에 불과하지만 고구려가 축조한 17개의 보루(堡壘; 소규모 요새)가 현존하는 중요 유적지다.

그러나 현장에서 고구려 유적의 흔적을 발견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방치된 도내 고구려 유적지

경기도내에 산재한 고구려 관련 유적들이 그대로 방치되거나 허물어져 가고 있다.

‘고구려 지키기’의 구호가 무색할 정도다.

아차산 진입부인 서울 광장동 아차산 공원에서 아차산 4보루까지는 대략 40분 정도 거리. 이곳 등산로를 따라 아차산 1~4보루 등 고구려 남하기의 군사유적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러나 고구려유적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설치된 곳은 1998년 발굴조사가 이뤄진 아차산 4보루 한군데 뿐. 아차산 1보루는 성벽 일부가 허물어져 있고 아차산 3보루는 철봉 벤치 그네 등 체육시설에 가려져 위치 확인조차 쉽지 않다.

헬기장과 인접한 아차산 4보루는 등산객들의 발길로 유적지 인근 토사가 흘러내려 병영의 굴뚝과 집수시설 등 발굴조사 이후 복토(覆土)해둔 땅속 유적이 상당수 드러나 있었다.

한탄강~임진강을 끼고 있는 연천 일대 고구려 유적들도 농지로 개발되거나 발굴이 중단돼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는 곳이 태반이다.

연천군 장남면의 호로고루성은 발굴이 중단된 뒤 성내에 버섯재배시설이 들어서 있고, 연천군 전곡읍에 소재한 은대리성도 성벽 일부가 민가의 담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아차산, 연천, 파주 등 경기도 일원에는 60곳 가량의 고구려 유적이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도내 고구려 유적지중 사적지 지정을 앞두고 있는 아차산과 연천 유적들의 보존상태는 그나마 양호한 편이다.

최근 경기도가 발표한 ‘경기도 소재 고구려 유적 보존현황’ 에 따르면 ‘이동통신기지국 건설과정에서 훼손’(의정부 천보산 2보루), ‘군용도로 개설로 인한 성벽 일부 훼손’(파주 덕진산성) ‘성 내부에 묘역조성으로 내부시설 훼손’(연천 무등리 1보루) 등이 드러나 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에 의한 유적 훼손도 심각한 상황이다.

사적지정 등 종합대책 마련시급

중국이 고구려사의 자국사 편입을 노골화하고 있는 것과 관련, 지자체들의 고구려 유적 보존사업에 최근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지자체의 예산으로는 토지수용조차 여의치 않은 것이 현실. 연천 일대 유적지의 경우 토지수용에만 95억원 이상 필요하지만 도에는 ‘고구려 유적’관련 예산이 전무하다.

도 전체의 연간 발굴관련 예산은 20억원도 안되는 실정이다.

사적지로 지정되면 관련 예산의 50%가 국비로 지원되지만 그나마 ‘그림의 떡’이다.

해당 시ㆍ군의 관계자들은 열악한 지자체의 재정상태를 감안하면 이를 70%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는 요구하고 있다.

최종택 고려대 교수(40ㆍ고고미술사학)는 “경기도 일대의 고구려 유적들의 규모는 작지만 학계에 보고가 제대로 돼있지 않은 북한ㆍ중국의 유적보다 오히려 가치가 높다”며 “유적 인근에 우선 우회등산로와 목책등산로 개설 등 보호시설을 설치하고, 사적 지적 등 장기적인 종합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일보 / 이왕구 기자 2004-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