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앞서 ''구려국'' 존재했다

역사가 짧고 힘이 없었던 나라는 왕왕 기록에서 삭제되거나 소홀히 다뤄지는 경우가 있다.
구려국이 고구려보다 앞서 생긴 우리나라 고대국가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적은 이유도 다 이 같은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주몽이 졸본부여에 이르렀을 때 그곳에 있던 왕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왕은 주몽을 보고 보통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그의 딸과 결혼시켰다.
왕이 죽은 후 주몽이 그 뒤를 이어 왕으로 됐다는 한 전설은 고주몽 집단이 고구려를 건국하기 전에 이미 졸본부여땅에 나라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광개토왕릉비문’에는 광개토왕을 추모(주몽)왕의 17세손이라고 했고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서도 시조 주몽왕 이래 그 후손들에 의해 왕위가 계승됐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고구려본기 시조 동명성왕조의 고구려건국전설에 의하면 주몽이 ‘국호를 고구려라고 하고 <고>로써 성을 삼았다’라고 했다.
이는 국호 ‘고구려’의 ‘고’에서 주몽의 성 ‘고’가 고구려 국호의 유래로 보인다.
따라서 구려는 고구려의 전신이며 고구려는 구려를 뒤이은 국가인 만큼 구려의 영역은 초기 고구려의 영역범위 안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구려의 영역은 대체로 오늘의 혼강을 중심으로 압록강 중상류, 태자하 상류, 혼하 상류, 이통하 유역을 포괄하는 지금의 중국 요령성 환인현, 신빈현, 청원현과 길림성 유화현, 통하현, 집안현, 임강현, 우리나라 자강도 지역에 해당된다.
구려국의 중심지였던 흘성골성(졸본)은 훗날 고구려의 발생지로 됐던 오늘의 환인일대에 있었다.
집안에 있는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 국내성은 지금까지 석성으로만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발굴한 결과 그 석성 밑에 토성벽이 있다는 것이 새로 밝혀졌다.
국내성의 성벽은 이 토성벽 위에 쌓은 것이며 따라서 토성의 규모는 현재 국내성 규모와 거의 같다.
따라서 구려국의 건국시기는 기원전 5세기 이전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구려국에는 중앙통치기구의 하나로서 ‘제가평의회’가 있었다.
‘삼국지’ 위서 고구려전에서는 고구려의 제가평의회에 대하여 전하면서 감옥이 없으며 죄를 진 사람은 여러 ‘가’들이 모여 평의하고 그 자리에서 이를 죽였으며 그의 처자들을 노비로 삼았다고 전한다.
제가평의회는 10월에 열리는 ‘국중대회’를 계기로 진행됐는데 이 국중대회의 기본의식이 하늘신을 제사하는데 있었기 때문에 ‘제천대회’라고도 했으며 고구려 사람들은 그것을 간단히 ‘동맹’이라 불렀다.
제천행사(하늘신에 제사를 지내는 행사)는 원시사회에서 발생한 것이며 제가평의회 이전 형식은 씨족 또는 종족의 원시적 평의회였다.
그러므로 고구려의 ‘동맹’이나 이를 계기로 열린 제가평의회는 그 뿌리가 원시사회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국가성립 후 이러한 원시적인 평의기구는 지배계급의 요구에 맞게 개편돼 계급적 지배를 위한 도구로 전환됐다.
고구려에 앞서 구려국이 존재했던 만큼 제가평의회는 이미 구려국시대부터 있었다고 볼 수 있으며 매년 여러 차례 열린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제가평의회가 일종의 정치기구였던 만큼 범죄자에 대한 형벌뿐만 아니라 왕위계승문제, 전쟁과 관련된 문제, 대외관계 등 국가의 중요정사들이 논의되었을 것이다.
구려국은 왕 밑에 전국을 통치하기 위한 중앙관리들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며 군대 또한 꾸렸을 가능성이 높다.
구려 군대의 병종구성은 보명과 기병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가운데 기병이 군대의 주력을 이루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구려국의 경제를 살펴보면 철기의 보급으로 농업의 발전을 촉진시켰다.
쇠도끼는 산비탈과 야산 경사지의 산림채벌을 대규모로 벌여 여러 가지 곡식을 심는데 중요한 도구였다.
구려에서는 상업도 발전했다.
기원전 4~3세기에 우리나라 서북부로부터 중국의 하북성, 하남성에 이르는 지역에서 널리 유통된 ‘명도전’이 압록강 중류의 구려국 지역에서 많이 드러나 상거래가 활발했음을 알 수 있다.

(세계일보 / 남창룡 기자 2004-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