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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베트남·소련·티베트·일본·대만 등과 줄줄이 ‘땅싸움’
중국의 국경은 2만280㎞에 걸쳐 러시아·인도·베트남 등 14개국과 접해 있다. 그만큼 접경 국가와 영토 분쟁도 잦다. 중국은 1949년
건국 이후 1959·1962년 인도, 1969년 옛 소련, 1979년 베트남과 국경 분쟁을 벌였다. 중국은 1974년 남중국해 서사(西沙)군도를
점령하는 등 영토 분쟁을 바다로 확장했다. 현재 중국이 이웃 국가와 첨예한 영토 다툼을 벌이고 있는 곳도 대만섬과 일본 오키나와 사이에 있는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열도)와 남중국해의 난사군도다.
지난 3월 중국과 일본의 영유권 분쟁 도서(島嶼)인 댜오위다오에 중국 영유권을 주장하는 중국 민간 단체 회원 7명이 상륙, 불법 입국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돼 강제 추방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댜오위다오는 5개의 섬으로 구성된 무인도로, 인근 수역에 석유 등 자원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이 섬을 점유하고 있는 일본은 1978년 이곳에 등대를 세우는 등 자신들의 영유권을 구체화하고 있어 중국과 대만의 강력한
반발을 사왔다. 중국 민간단체의 댜오위다오 상륙 사건으로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후 냉랭해진 양국 관계가 더욱 악화됐다.
중국은 지난 7~8월 지난(濟南)에서 벌어진 아시안컵 축구대회에서 일본의 경기가 있을 때면 ‘댜오위다오는 중국의 것’이라는 현수막을 내거는 등
양국 국민의 감정의 골도 깊어지고 있다.
중국·대만·베트남·필리핀·말레이시아·브루나이 등 6개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난사군도에서는 최근 중국과 베트남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베트남이 올해 들어 난사군도에 대한 관광객들의 방문을 허용한 데 이어 난사군도의 난웨이다오(南威島)에 600m 길이의 활주로를 갖춘 소규모
비행장을 건설하자 중국이 “주권을 침범하는 행위”라며 반발하고 있는 것. 난사군도는 남중국해 최대 분쟁 도서로 80만㎢ 해역에 100여개의
암초·산호초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 지역에는 약 300억t의 원유와 450억t의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으며 서태평양과 인도양을 연결하는 해상
요충지다.
인도와의 경제 협력을 중시하는 중국은 한때 앙숙이었던 인도와 국경선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며 관계 개선에 힘쓰고 있다. 인도와는 영토
분쟁으로 1959·1962년 두 차례에 걸쳐 전쟁까지 치렀으며 15차례의 국경선 확정 회담에도 불구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특히
인도가 1959년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에게 북부 다람살라 지역에 망명 정부를 구성하는 것을 허용하면서 국경분쟁이 악화됐다.
하지만 지난해 6월 바지파이 전(前) 인도 총리가 인도 총리로서는 10년 만에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티베트를 중국 영토의 일부로
간주한다고 밝히는 등 양국간에 화해 무드가 조성됐다.
1350㎞에 걸친 국경선을 놓고 1979년 전쟁까지 치른 베트남과는 난사군도 문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지만 1999년 국경 협정에 서명하고
2000년 어업협정 등을 통해 관계 개선이 진행되고 있는 상태다.
티베트·신장위구르 등 중국 건국 이후 중국에 병합된 지역에서는 독립을 요구하는 소수민족들에 의한 ‘영토 분쟁’의 불씨가 남아 있어 중국
당국이 감시를 늦추지 않고 있다.
티베트는 1950년 중국의 무력 침공으로 중국 영토가 됐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이 무너지고 중화민국이 들어서자 티베트는 독립을
선언했다. 1950년 중국은 “역사적으로 티베트는 중국의 속국”이라며 티베트를 무력 침공, 병합했다.
이슬람 문명의 영향을 받으며 여러 형태의 나라로 존재해왔던 신장위구르가 중국의 통치 아래 들어간 것은 청나라 때였다. 청이 무너진 이후
여러 세력으로 나뉘었지만 통합 세력을 이루지 못하다가 1955년 중국이 이 지역을 신장위구르 자치구로 선포했다.
몽골은 1911년 청나라로부터 분리돼 독립국가가 되었지만 당시 중화민국은 2차대전이 끝난 1945년까지 34년 동안이나 몽골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다가 1946년에 이르러서야 소련의 영향 아래 있던 몽골의 독립을 인정했다.
(주간조선 / 김승범 기자
2004-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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