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史’,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한국과 중국 간의 고구려사 갈등이 중국 외교부 우다웨이(武大偉) 아시아담당 부부장의 방한을 계기로 일단 겉보기로는 전환점을 맞은 듯이 보인다. 중국은 각급 학교의 역사 교과서에 고구려사 왜곡 내용을 싣지 않고 지방정부의 홍보도 중단하겠다고 약속했다는데, 과연 지킬지는 두고볼 일이다.

그러나 고구려사 갈등이 완전 해소된 것은 아니다. 동북 지방의 개발과 통합이라는 큰 과제를 안고 있는 중국이 ‘고구려사의 흡수’라는 목표를 포기할 리 없기 때문이다. 당장은 한국의 반발이 생각보다 거세기 때문에 한발 물러섰지만 ‘동북공정(東北工程)’을 비롯한 관련 움직임은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고구려사 갈등의 장기화에 대비하여 그동안의 열기를 지속적으로 이어갈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가장 큰 과제는 물론 연구다. 국내의 고구려 연구자들은 몇 년 전부터 중국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낯선 중국 연구기관에서 자신의 연구에 대해 문의하는 전화를 걸어오곤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백제사 연구자까지 중국의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그 결과 중국은 동북공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고구려사와 직·간접으로 관련된 한국의 주요 연구성과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반면 한국은 이제야 연구자들이 중국을 드나들며 장님 코끼리 만지듯이 그들의 움직임을 파악하느라 부산하다. 우리는 이미 중국에 한참 뒤떨어져 있고, 양국의 연구인력을 감안할 때 그 간격을 좁히는 것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이런 점에서 관련 학술기관들과 단체·학회 등의 유기적 협조 체제가 필수적이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학계 일각에서는 언론에 이름이 날 수 있는 보도자료를 만드는 데 더 열심이다.

연구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우리 연구성과를 세계에 알리는 홍보다. 고구려사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이 앞으로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쪽도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우리의 고구려사 연구성과를 영어를 비롯한 주요 외국어로 번역·배포하는 데는 학계의 역량만으론 한계가 있다.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국제교류재단이나 한국문학번역원 등 유관기관들이 적극 나서주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 이들이 고구려사 국제 홍보를 자기 일로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다.

고구려사 문제가 워낙 뜨겁게 달아오르다 보니까 힘있는 사람들도 잇달아 관심을 표시한다. 외교통상부·교육부·동북아시대위원회 등 정부 부처는 물론 국회에서도 움직임이 부산하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실태를 확인한다며 삼삼오오 만주의 고구려 유적을 찾는 국회의원들이 줄을 잇는다. 하지만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방안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은 눈에 띄지 않는다. 외교통상부 차관이 주재하는 정부 대책회의가 있다지만 중·장기적 방안 마련과는 거리가 먼 듯하다. 고구려사를 전공하는 한 학자는 “요즘 오라는 곳은 많지만 가서 보면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에만 관심을 쏟아서 답답하다”고 말했다.

우리 민족의 단점으로 ‘냄비 기질’과 ‘한건주의’를 꼽는다. 급속히 달아올랐다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갑자기 식어버리고, 전체 시스템을 강화하기보다는 각자가 자기 업적을 남기려고 애쓰는 우리의 약점을, 중국이 꿰뚫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다.

(조선일보 / 이선민 문화부 차장대우 2004-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