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북한의 지배권을 원한다”

한반도에 세워진 가장 큰 왕조인 고구려는 한국 정체성의 기둥인가, 아니면 중국 왕조가 한국을 지배했다는 상징과 그 확장인가? 고구려와 그 고분에 대한 한국 정부의 항의에 대해 중국 외교부는 홈페이지에서 한국의 정부 수립 이전 역사를 전부 삭제해 버렸다. 중국은 왜 그렇게 심각한 반응을 보이는가?

언어학자·인류학자·고고학자 사이에서나 복잡한 논쟁이 이루어질 법한 기원전 1세기~서기 7세기까지 동북아시아의 역사 문제는 현재 국제적 위기 상황으로 변하고 있다. 문화적 헤게모니에 대한 중국의 잠재 의식과 국경 문제에 대한 중국의 예민함을 보여주는 역사 쓰기와 해석은 한국과 중국 간 관계를 교착 상태에 빠져들게 하고 있다.

이 논쟁은 중국의 경제 성장, 군사력, 중국의 세계 시장 진입이 지역 내 국가들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최근에는 중국이 한국 학자들에게 압록강 인근에 위치한 고구려의 수도였던 국내성으로 가는 비자를 내주지 않은 데에서 양국 간의 의견 차이를 잘 드러낸다. 유네스코(UNESCO)는 북한과 중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고구려 고분을 세계 문화 유산으로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한국의 유산인지 중국의 유산인지에 대해서는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중국은 급기야 정부 공식 사이트에서 한국의 역사 부분을 삭제하고, 한국학자들의 유적지 방문을 금지하고 있다.

수 세기 동안, 중국 왕조는 정기적으로 이웃 국가를 침략해 자신의 지배권을 확인했다. 한국과 베트남 왕조와 국경 분쟁도 벌였다. 또한 한족 입장에서는 외세(外勢)인 몽골족과 만주족이 수 세기 동안 중국을 지배했다. 일단 약소국들이 조공을 바치고 중국에 충성을 바칠 것을 맹세하기만 하면 그 나라에 영토 지배를 허락했다. 중국 왕조는 한반도의 북쪽 부분에서 고구려의 독립을 인정했고 한국 고유 역사로 받아들여지기까지 했다.

근대에 이르러 중국 공산당 정부는 영토 문제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다. 중국은 1962년 인도와 전쟁을 벌였던 1979년에는 베트남, 1969년에는 소련과 아무르강의 섬을 놓고 다퉜으며 1974년과 1975년 남중국해의 섬을 장악하기도 했다. 베이징은 천수이볜 정부가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는 중국의 정의를 거부할 경우, 전쟁도 불사할 것이라고 위협하고 있다. 동중국해에서는 분쟁 도서(島嶼)를 놓고 한국·일본과 다툼을 벌이고 있다. 베이징은 민족주의적인 영유권 주장을 위해 기꺼이 군사력을 사용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평양에 간접적 메시지 전달

고구려 고분과 고구려 정체성에 대한 논쟁에서 중국은 평양에 간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은 북한에서 쓰이는 기름의 70~80%를 공급하고 있으며, 필요한 식량의 30~40%를 공급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이 한국·미국·일본·북한·중국·러시아가 참여하는 6자 회담에 응하는 태도에 대해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 중국은 고구려 시대 북한과 중국 간 주종 관계를 주지함으로써 핵 문제에 있어 북한이 중국의 말을 들으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중국의 민족주의적 주장은 공산당 내부에서 중국이 세계 파워로서의 등장을 어떻게 개념지을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논쟁을 반영하고 있다. 중국 지도자들은 세계 권력 균형을 깨뜨리지 않으면서 국제 사회에서 주요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화평굴기(和平堀起)’라는 말을 만들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장쩌민 중앙군사위원회 주석과 권력 다툼을 하고 있다. 장쩌민은 국가 주석과 공산당 총서기직에서 물러났지만 당과 군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장쩌민은 ‘평화로운 성장’에 의문을 제기하고, 대신 강력한 군사력이 중국의 정치·경제적 성장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중국 내 민족주의에 대한 호소는 고구려 역사가 중요하다는 주장에 힘을 불어넣고 있다.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가 쇠퇴하면서 중국 지도자들은 강력한 정치·경제·군사력을 권력 유지의 근원으로서 강조하고 있다. 민족주의는 2001년 중국 연안에서 벌어진 미국 EP-3 정찰기의 활동과 관련해 미국과의 마찰로 이어졌다. 2001년 4월 1일에는 중국 전투기와 미국 정찰기가 충돌함으로써 주 베이징 미국 대사관 앞에서의 시위를 촉발하기도 했다. 베이징은 미군 정찰기가 중국의 배타적 경제 수역을 통과할 권리가 없음을 주장하는 동시에 중국 선박은 일본 영해를 통해 일본 연안의 분쟁 지역에서 군사 훈련을 했다. 몇 주 전에도 중국 축구팀이 일본팀에 패하자 베이징에서는 반일(反日) 시위가 일어났다. 중국 민족주의 정서의 깊이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중국의 국제적 행동을 바라보는 우리 모두는 베이징의 문화적 헤게모니 장악이 안보 분야에서의 헤게모니로까지 나아갈 것인지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게 된다. 분쟁을 진행하는 방식은 중국이 이웃 국가와의 관계에 있어 군사력과 문화적 헤게모니를 강조할 것인지 여부를 보여줄 것이다.

래리 워첼(Larry Wortzel) 헤리티지 연구재단 부회장

(주간조선 2004-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