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학신문] 신동하 교수가 본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의 본질과 대책

중국의 고구려사 왜국문제가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또 시시각각 그 갈등수위가 변화하며 고도의 국가심리전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세계강대국으로 변모한 중국 패권주의의 일환으로 이해되는 동북공정(東北工程:동북 변경지역 역사를 중국 역사로 편입하려는 연구 프로젝트)으로 불거진 이번 사태는, 우리 역사를 지켜나가야 하는 대학인에게도 발등의 불이 되고 있다. 고구려사를 중심으로 한 고대사 권위자로서 지난 동덕여대 사태시 교수협의회장으로 대학민주화 중심에 섰던 신동하 교수를 통해 이번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편집자주

- 먼저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과정에서 느끼신 소회는.

△ 신교수 = 이는 학술적인 문제이자 결국 정치적인 문제다. 이 문제의 일반론에 앞서 먼저 우리 스스로에게 할 질문이 있다. 왜 과거 고구려사가 한국사에서 중요시되지 못했는가, 전공자는 왜 적고, 신라역사에 비해 고구려사·백제사가 왜 그리 간략하게 다루어졌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신라에 비해 백제와 고구려는 문헌자료가 형편없이 적은 한계는 있다.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유적·유물을 연구하는 방법이다. 남북분단 하에서 영역이 미치지 못했지만, 균형있는 역사 연구를 위해 남북간 학술교류 협조가 진작 있었다면 지금 이런 곤혹스러운 상황을 맞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내가 고구려사 관계 논문을 처음 쓴 80년대 후반만 해도, 일반적으로 북한에서 나온 논문자료 인용은 매우 힘들었다. 국가보안법 등 저촉 여부로 관계당국에 문제가 되는 것을 우려했던 정치적인 이유에서다. 정치논리에서 벗어난 학문의 중요성이 새삼 강조되는 부분이다.

-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의 본질과 그 배경은.

△ 신교수 = 고구려 역사의 본질은 명확하다. 고려에 온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이 본국에 돌아가 황제에 보고한 보고서인 ‘고려도경(高麗圖經)''이라는 역사책에서도,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소위 동북공정이라는 것이 일어나기 전까지 중국도 고구려는 고려·조선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맥락에서 그 영역을 인정했었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중국 사회과학원은 ‘왜곡된 것을 이제 바로잡는다’며 고구려 역사를 도려가 중국지방정권으로 하고 있다.

그 배경은 이른바 중국의 ‘동북공정’ 일련의 다른 작업들과 함께 이해된다. 중국은 1996년부터 동북공정을 준비해 1999년에 정식 발족시키고, 2002년도부터 구체적으로 프로젝트로 연구했다. 또 1996년부터 베트남 등이 연결된 운남지역 연구, 2002년에는 신강지역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를 하고 있다. 이 지역들은 중국으로서는 아주 중요한 외곽의 소수민족 분포지로 독립운동과 영토분쟁이 있는 곳이다.

중국의 개혁개방으로 지역 빈부차이가 심해지고 소수민족의 독립운동 가능성, 이탈가능성도 우려되고 있다. 아울러 조선족의 한국방문이 많아지고, 남북한 관계가 상당히 유동적이 되며 만주지역의 조선족에 대한 동향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또 향후 북한 몰락이나 남북통일 때 적어도 미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국가경계선 또는 북한지역에 대한 연고권 등을 주장할 근거를 만들기 위한 포석도 필요했다. 이것이 구체적인 역사귀속성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90년도에 구체화됐고, 결국 동북공정으로 나타났다.

- 중국은 이런 주장이 세계적인 보편성을 가질 수 있다고 보는가.

△ 신교수 = 보편적인 역사인식에 맞지 않는 이야기지만 거대한 중국의 국력을 등에 업고 있기 때문에 외국에서는 더 관심을 보인다. 또 절대적으로 많은 분량의 연구 저술들이 중국에서 나오고 있어 한국의 주장이 아무리 객관적 사실에 토대한다고 해도 그 쪽을 더 관심있게 본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런 현실적 문제를 정부나 국민이 절실히 깨달아야 한다.

한 예로, 아주 오래되고 해묵은 문제로 학계에서는 이미 정리된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도, 여전히 한반도 남쪽은 고대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식으로 동남아 역사책이나 교과서에 실려있다. 이처럼 그간 체계적인 역사적 대응을 못해왔고, 심지어 외국공관에 배포되는 우리 홍보물에도 역사지식이 제대로 있다고 보여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우리 스스로 우리 것에 대한 소홀함을 반성해야 한다.

- 중국 주장에 대해 우리가 대응논리를 더 개발해야 될 부분이 있다면.

△ 신교수 = 세계인에게 논리적으로 대응하기 곤란한 부분이 있다면 ‘책봉’ 문제다. 이는 과거 전통적인 외교의 한 형식이고, 전반적으로는 과거 중국 주변나라들이 거의 조공을 바치고 책봉을 받았었고, 중국도 한때 그런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사실을 연장해서, 바로 ‘종속국’이라는 논리를 지금 중국이 우리에게 적용시키려 하고 있다.

전통시대 외교의 축이었던 형식논리를 근대적인 외교 관념으로 역사인식이 없는 많은 일반인과 서양인을 어떻게 이해시키느냐가 항상 간단치 않았다. 또 전통적인 책봉체제는 근대국가 이후에도 그 설 땅을 일정부분 가지고 있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 논리를 어떤 때는 제국주의자들이 일정부분 활용했지만, 근대 초기 역사에서 중국은 오히려 우리와 함께 이에 저항하는 역할을 취해왔었다. 그런데 이제는 중국이 세계제패의 축으로 그 논리를 확대해 스스로에게 적용시키려 하고 있다.

이에서 보듯, 역사는 모순의 완전한 정리가 아니라 반복되는 양상도 보여주고 있다. 이를 깨뜨리기 위해서는 세계의 보편적인 역사 이해를 확대시켜 나가는 일, 특히 같은 처지의 나라들이 서로 공조해 강대국 중심의 역사관에 저항해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힘의 논리가 세계질서를 지배하는 한, 중국의 이같은 공격성을 대응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 통일 한국시대에 맞이하는데 동북공정이라는 변수는 어떻게 작용하나.

△ 신교수 = 물론 관련 전문가들이 분석할 부분으로, 북한의 운명이 상당히 유동적이고 그런 만큼 다양한 전망치가 가능하다. 다만 그 시나리오들이 절대로 우리 역사에 유리하게 흐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역사공동체, 민족이라는 정체성이 향후 변화과정에 따라서는 그 절반이 떨어져 나갈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의 정체성에서 고조선·발해와 연결되며 고대국가로서 처음으로 강력한 국가를 이룬 고구려의 위치는 너무나도 중차대하다. 중국도 이를 너무 잘 알고 있다. 이것이 정치적인 논리에서 역사가 증발되어 버리면 절대 안된다. 역사적 정체성을 확보하면서 새로운 정세변동에 대응해 나가는 지혜를 얻어야 한다.

특히 남북관계가 극단적인 대립을 하면서 민족정체성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서로 협조하고 연대해서 국제경쟁력을 가져야 하고, 그 연대의 가장 강한 끈은 바로 역사다. 이를 상실하고서는 무엇을 가지고 북한과 통일하자는 이야기를 할 수 있나. 지금 이런 사태도 북한과 과거 그런 역사적 연대의식 없이 연구를 통한 논리개발이나 실력을 닦는 일에 방해를 받아왔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 역대 대외교섭사를 통해 이번 사태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 신교수 = 우리 대외교섭사에서, 과거 아주 형편없는 국제관계 속에서 살아왔다고 이해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오히려 국제관계 속에서의 강대국에 대한 의존성이나 예속성은 과거보다 지금 남한이 미국에 가지는 예속성이 훨씬 더 크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번 문제가 된 고구려는 거의 중국과 국제사회에서 거의 대등하게 축을 이루었던 나라였다. 종속주의 사대주의 등의 단어로 전통시대 우리 삶을 아주 냉소적 즉흥적으로 보는 자세는 탈피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예를 되짚어볼 필요는 있다. 명나라가 건국 후, 주변 국가에 대해 강력한 통제정책을 펼치던 때에 ‘종계변무(宗系辨誣)’문제가 불거진 일이 있다. 명나라 ‘대명회전(大明會典)’에 태조 이성계가 고려의 권신(權臣) 이인임(李仁任)의 아들로 되어 있는 것을 처음 안 것은 1394년(태조 3)이었다. 이인임은 우왕 때 이성계의 정적이었는데, 이성계를 그의 아들이라 한 것은 조선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모욕이었다. 고려 권신을 치고 나라를 세운 이성계를 무고한 이 내용은 명분을 중요시하는 조선으로서는 국가근본이 흔들리는 문제였다. 하지만 명나라는 법전에 해당되는 이 책의 내용을 고쳐달라고 조선측 요구에 ‘알아보자’ ‘고쳐준다’는 식으로 대응하면서 명나라 망할 때까지도 이를 해결해주지 않았다.

자기 정체성을 상실당한채 이런저런 이유로 시정되지 않고, 그때그때 정치적 필요성에 의해 이용되고 외교적으로 조정되는 사례였다. 결국 이 종계변무 문제로 조선시대에 근원적인 발목잡힘이 되어 외교적으로 많은 손해를 입게 된다. 국가의 명분, 대의성, 정체성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국제사회에서 당당한 국제평화를 이루는 명분을 지켜나가는 것이 향후 닥칠 외교적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 대학인들이 이 문제를 바라보고 대처해야 하는지

△ 신교수 = 이번 일로 당장 한국고대사 문제를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연구해야 한다고는 보지 않는다. 또 국사 만이 갑자기 중요시되어야 한다고 보지 않는다. 고구려사 문제는 바로 현대사의 문제다. 고대사 문제가 홀로 고립된 적이 없고 현대사 문제가 되고 또 고대사 문제로 되돌아가곤 한다. 역시 국사 문제도 세계사 문제다. 중국이 저러한 것도 결국 세계사 문제다. 따라서 단순히 국사 시간을 늘린다 하는 것보다 역사에 대한 문제인식을 갖추는 방향으로 우리 교육 체계를 재점검해야 할 것이다.

젊은 대학생들도 역사에 대한 자신감과 자기정체성 확보에 대한 의지로써 이번 사태에서 자기들이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시도할 수 있고 또 해야 된다고 본다. 다만 스스로 잘 모르면서 흐름에 휩쓸려 감정적으로 대처할 문제는 아니다. 워낙 취업 등이 어려운 때에 학생들이 의지를 제대로 펼 수 없는 환경이지만, ‘나는 누구이냐’라는 성찰과정에서 그 해답이 나오는 것이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현재 대학생들이 많은 부담을 안고 살고 있지만, 건강하게 이런 엄연한 역사적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당당하게 맞서기 주기를 바란다.

■ 신동하 교수 프로필

1952년생, 서울대 문리과대학 국사학과 졸업(1975). 동 대학원 졸업. 1980∼현재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2002∼2004.2 동덕여대 교수협의회장 역임. 논저: 고구려의 사원조성과 그 의미(1988),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의 인용자료에 대한 일고(1995),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분주의 연구(1995), 역주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1999) 등.

(세계일보 / 송용필 기자 2004-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