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사, 이제 지켜졌나

‘한국 국민 달래기’ ‘역사전쟁 휴전’ ‘미봉책’ ‘여론 잠재우기’…. 신문마다 이런 제목의 큰 활자로 넘쳐났던 것이 엊그제 일이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양, 신문과 방송에서 고구려사 왜곡문제는 사라져 갔다. 한중 양국이 그 문제를 정치문제화 하지 않기로 양해했으니 이제 됐다는 것인가. 중국에게 왜 그리 저자세인지 정말 모를 일이다.

이러니 중국은 안심하고 동북공정이란 이름의 고구려 말살 작전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이다. 양해한다는 중국 외교부 차관의 말 한마디로 들끓던 여론이 잠잠해졌으니 얼마나 쉬운 일인가. 중국 중앙정부의 외교적 약속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양, 해당 지방정부와 업자들이 고구려 유적 팔아먹기에 혈안이 된 나머지, ‘고려공’(高麗貢)이란 술까지 만들어 파는 현지 사정을 우리 정부가 파악이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고려공이란 고구려에서 공물로 바친 술이란 뜻이라 한다.

정말 모를 것은 중국에 저자세인 한국인 마음

한국통이라는 중국 외교부 차관이 급히 달려와 우리 외교 당국자들과 마주 앉았을 때, 우리는 중국이 급하긴 급했구나 했다. 한중수교 12주년을 앞두고 한국을 방문해 우의를 다지고 싶어 한다는 중국 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이란 사람의 방한 길 닦기가 목적이라 했지만, 가장 급한 양국 현안 때문에 온다는 것을 모를 사람은 없었다. 9시간이 넘는 마라톤회담의 결론이 궁금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결론은 알맹이 없는 5개항의 합의사항이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조용해지다니, 정말 모를 것은 한국인 마음이다.

중국이 고구려사 문제에 유념한다는 1항과 양국 우호관계 손상 방지라는 2항, 중국 정부는 고구려사 왜곡에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는 4항, 학술교류를 조속히 실현한다는 5항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고구려사 문제의 정치문제화 방지라는 3항은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우리 정부 당국자는 “중국정부 차원에서 고구려사 왜곡을 시도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도 말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는 아닌가. 결국 정치문제가 아니라 학술문제로 풀자는 지난 2월 양국간의 합의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한 셈이다.

그렇다면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한국역사 복원은 관철했어야 옳다. 중국이 지난 4월 외교부 홈페이지 ‘한국’ 란에서 고구려 역사를 삭제한데 이어, 8월 광복 이전의 한국역사를 통째로 들어내 버린 것은 명명백백한 정치문제화가 아니고 무언가. 이에 대한 질문에 외교부 당국자는 “중국 측이 한번 취한 조치를 되돌리기 어렵다고 했다”는 말 한마디로 넘어갔다.

그나마 합의사항을 문서화하지 못하고 구두 양해사항으로 해 구속력을 갖지 못하게 된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중국이 내년 초·중·고교 교과서 개정 때 고구려 역사를 자국 역사에 포함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했다지만, 그 때 가서 국내사정 등을 이유로 그렇게 해버리면 우리는 아무런 수단이 없지 않은가.

고구려는 눈을 부릅뜨고 지켜야 할 우리 몸통

중국 사회과학원이 동북공정을 핵심 연구과제로 지정한 1996년 이후, 중국 정부는 차근차근 그 작전을 추진해 왔다. 연변 조선족자치주의 문화와 정책 브레인 역할을 해온 연변 사회과학원을 해체하고, 연변대학을 국가 중점육성 대학으로 지정해 조선족 대학을 없앤 것도 같은 맥락에서 취해진 일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나 학계 어디도 문제를 제기한 일이 없다. 모든 문서와 간판에 한글과 한자를 병기하되 한글이 우선한다는 규정도 언제 없어질지 모를 일이고, 조선족 자치제도의 앞날도 낙관할 수 없다.

연변 사회과학원은 조선족 문화와 역사와 교육의 진흥을 총괄하는 민족사회 중추기관이었는데, 중국 정부는 지난해 4월 이를 없애버렸다. 연변대학을 중국의 100대 중점육성 대학으로 지정한 것도 민족교육을 없애려는 저의로 볼 수밖에 없다. 겉으로는 좋은 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민족성 물타기 작전이다. 종전의 연변대학은 학생과 교수가 모두 조선족인 어문학부 중심의 민족대학이었다. 그런데 중국정부는 한족(漢族) 학생이 많은 농과대학 의과대학 경영대학 등을 연변대학에 통합해 한족학생이 더 많은 대학으로 만들어 버렸다.

중국이 이렇게 주도면밀하게 조선족의 중국인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고구려 역사왜곡을 하지 않겠다는 말 한마디에 우리는 그럼 됐소, 하고 말았다. 고구려는 ‘코리아’의 연원이다. 눈을 부릅뜨고 지켜야 할 우리의 몸통 그 자체다.

<문창재 객원 논설위원>

(내일신문 2004-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