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수교 12년, 달라진 중국

1992년 8월 24일 오전 9시, 우리나라 이상옥 외교부장과 중국 쳰치천(錢其琛) 외교부장이 중국 조어대 국빈관에서 정식으로 한중수교에 서명했다. 수교 당시 중국의 리펑(李鵬)총리는 ‘물이 흐르면 곧 도랑이 될 것이다’는 말로 양국교류에 대한 기대를 표시했는데 12년이 지난 지금, 한중관계는 도랑을 넘어 대해(大海)를 이루고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활발한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

◆ 최대 교역국이자 최대 문화교류국

한중수교 당시 64억 달러에 불과했던 교역량은 2003년 670억 달러로 9배로 늘었으며 대중국 수출은 357억 달러로 13.2배나 증가했다. 우리나라 무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15.2%로 미국을 제치고 우리의 최대 수출시장이자 최대 무역흑자국으로 부상했고 작년 한 해 대중국 투자액도 40억 달러를 넘어서며 50%의 빠른 증가세를 보였다.

한 해 중국을 다녀가는 한국인이 300만 명에 달하고 중국에서 체류하는 한국인도 2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공식 등록된 유학생만도 3만 6000여 명, 집계되지 않은 연수생과 중고생을 포함하면 5만 명을 넘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1992년 수교 이후 보따리 장사부터 시작하여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도 현재 1만여 개가 넘고, 약 100만 명의 중국인 근로자들을 고용하고 있는 상태다. 문화적으로는 더 말할 나위 없이 ‘한류다, 중국열풍이다’ 양국 모두에서 그 열기가 뜨겁다.

◆ 목소리 키우며 패권주의 냄새 풍기는 중국

한중수교 이후 12년 동안 우리가 경제적 위상을 바탕으로 우위를 지켜왔다면 앞으로는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결코 우위를 장담할 수 없는 입장으로 변화되고 있다. 오히려 경제성장에 고무된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키워가면서 슬슬 패권주의의 냄새를 풍기고 있는 것을 우려해야 할 상황이다.

고구려역사 왜곡 사건을 통해 드러났듯이 중국은 동북공정 등의 철저한 국가적 전략에 의해 그들의 목표를 관철시키는 반면 우리의 연구와 대처는 대단히 열악하고 미흡했다. 중국은 자국 시장이 한국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무기로 하여 협상의 주도권을 장악하려 할 것이며 언제라도 제2, 제3의 고구려사 왜곡과 같은 사건을 카드로 꺼내들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충분한 대비가 필요하다.

중국경제의 성장축이 전통산업에서 IT산업을 포함한 첨단산업으로 이동하면서 통상마찰과 중국과의 시장경쟁도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범용기술, 중저가 분야에서 중국은 이미 한국을 추월했고 일부 중화학 공업과 고부가가치 분야는 2-3년 내에 한국 수준에 도달할 것이며 대부분 주력산업에서도 5년 내에 한국과 대등한 수준에 이를 전망이다.

또한 중국이 아세안 자유무역지역 설립과 같은 경제주도권을 장악하면서 중국 중심으로 동북아 경제 질서가 재편되고 있다. 중국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중국과 바람직한 관계를 설정하지 못할 경우, 아시아 주류로부터 고립된 주변국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 경제의존도 극복할 장기적인 국가 전략 시급

한국경제의 중국의존도가 커지면서 중국이 이상공정(以商攻政, 경제를 통해 정치적 목표를 공략한다)을 할 가능성도 대단히 높은 상황이다. 중국시장을 공략하면서도 동시에 수출시장을 다변화하는 노력이 절실하며 국내 제조업의 효율화, 고도화 및 중국과 차별화된 고부가가치의 산업을 육성하는 등의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고구려역사 왜곡으로 인해 한중수교 이래로 최악의 한중관계를 맞고 있다고는 하지만 한중 양국의 하루 교역액만 2억3000만 달러에 달하고, 이 가운데 한국의 흑자 규모는 9400만 달러나 된다. 감정적인 대응보다는 챙길 것은 챙기고 따질 것은 따지면서 보다 냉철하게 한중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동북공정에서 나타났듯이 중국은 이미 한반도통일 이후를 내다보는 장기적인 외교 전략을 갖고 한중관계에 접근하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국정브리핑 / 김대오 특파원 2004-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