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양해’해결책 공염불

중국이 일부 교과서와 교사지침서에서 고구려역사를 자국사로 편입시킨 것은 이미 중국이 교과서를 왜곡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 지도출판사가 펴낸 ‘중학 교사용 지도집’(2001년8월 3판 출판)은 교사들이 학생들을 가르칠 때 지침이 되는 책이다. 그런데 이 책 61쪽에 고구려를 발해와 함께 ‘중국 역사상 일부 소국’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중학교 교과서 ‘중국역사지도책’(2002년 출판·제1책 원시사회~남북조)은 29쪽에 실린 ‘삼국시대 정립’이라는 항목의 지도에서 한반도 절반을 위나라(魏)에 편입시켰다. 삼국시대를 통일한 서진(西晋·서기 265~316년) 시대 지도(31쪽)도 마찬가지. 고구려를 표기하지도 않은 채 당시 유명무실했던 부여(扶餘·기원전 2세기~서기 494년)가 중국 동북 지방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표시하고 있다. 부여는 당시 거의 멸망 위기에 있었으며 결국 고구려에 병합되었다.

뿐만 아니라 고려 시대를 조선(朝鮮)으로 혼용하는 경우도 눈에 많이 띄었다. 인민교육출판사가 펴낸 중학교 중국역사 교과서(제2책·2004년1월 3판)는 58쪽에서 송나라 시기, ‘동쪽으로는 조선(사실은 고려), 일본, 남쪽으로는 남해 각국, 서쪽으로는 아라비아 반도와 아프리카 동해안까지 중국 어선이 다녔다’고 적고 있다.

물론 대다수 교과서는 아직 고구려사를 세계사로 다루고 있다. 인민교육출판사가 펴낸 중학교 세계역사(2003년 출간)는 제10과 동아시아 봉건국가편(48쪽)에서 ‘조선 민족은 예로부터 조선반도에 거주했다. 기원전후 조선반도 북부를 통치한 것은 고구려라는 노예제 국가였다. 나중에 반도의 서남부와 동남부에 백제, 신라라는 2개의 노예제 국가가 출현했다. 이후 수백년 동안 반도에는 삼국이 정립하는 국면을 맞게 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인민교육출판사가 펴낸 중학교 중국역사 제2책은 돌궐과 회흘, 그리고 남소와 토번을 한 집안으로 다루고 있으나 고구려는 이 대목에서 제외했다. 이 책은 제1과 ‘번성기의 수나라 왕조’(1쪽)에서 한반도에 고려(고구려의 줄임말)를 표기해 일단 고구려가 중국과는 다른 존재임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발해는 중국 교과서 전부가 중국의 고대 소수민족국가 중 하나로 설명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 정부가 중국 교과서를 입수해 검토하고도 역사 왜곡 사실을 확인하지 못한 것은 정부의 대응이 얼마나 피상적으로 이루어졌는지를 여실히 나타낸다. 한국이 ‘향후 교과서를 개정하지 않겠다’는 중국의 구두 약속에 만족하기에 앞서 이미 왜곡된 부분들에 대한 시정작업에 나서지 않으면 안될 것으로 보인다.

(경향신문 / 홍인표 특파원 2004-8-26)